동시대미술이 역사를 다루는 두 가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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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한의 동시대미술 수첩
동시대미술이 역사를 다루는 두 가지 방식
'기억되어야 하는 서사'와 '동시대 작가 9명의 서사'||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의 '잊혀진 사람들, 끝나지 않은 이야기'전 (2019.2.23. ~ 4.24.)||산수미술관의 '동시대미술, 역사를 말하다'전 (2019.2.28. ~ 3.29.)
  • 입력 : 2019. 03.19(화) 16:09
  • 편집에디터

하정웅미술관- 다자와 호수 히메관음상의 비밀. 홍윤리 학계사 제공

올해는 3.1절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우리 지역에서는 그 역사를 기리는 전시 몇 개가 개최되었다. 이 전시들 중 동시대미술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두 개의 전시를 통해 오늘날 미술이 역사를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동시대미술은 추상과 같은 미적 전통의 문제부터 낙태, 성소수자의 문제까지 다루지 못하는 주제가 없다. 그 중에서 역사의 문제는 동시대미술이 다루는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역사라는 말에는 기본적으로 '일어난 역사'와 '쓰여진 역사'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역사가들은 '일어난 역사' 자체의 인과관계에 관심을 갖는다면, 동시대 미술가들은 그 역사적 사건들 가운데 특정 사건들을 선별하여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지에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자신이 구성한 '역사 이야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고 한다. 그들은 그 이야기를 통해 관람객들이 세상을 자신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대 미술가의 '역사 이야기'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과거는 무엇인지, 혹은 작가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왜 가치가 있는지 성찰할 기회를 제시한다.

동시대미술이 역사를 다루는 방식은 현대미술과 다르다. 사진기의 발명 이후 새롭게 등장한 현대미술은 '아름다운 자연의 모방'을 대체할 만한 미술만의 고유한 목표를 찾으려고 했고, 그것을 다양한 매체와 양식으로 나타내려고 했다. 이 과정이 바로 19세기말 20세기 중반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등장한 다양한 미술 사조들이다. 이 사조들의 목표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현대미술의 목표를 심미적인 양식의 발견에서 찾는 형식주의적 모더니즘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 전통의 부정을 통해 역사와 사회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서 현대미술의 사명을 찾는 아방가르드 경향이다. 후자 경향의 현대미술은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데, 이 경우 역사에 대한 관심은 개인, 특정 집단의 관심에서 비롯된 '개별 서사'가 아닌 인류나 민족 등의 보편적인 발전과 관련된 '거대 서사'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동시대미술은 개인 혹은 집단의 사적인 '개별 서사'에 관심을 갖는다. 그 이유는 동시대미술의 가치는 타자와의 진정한 소통에 있고, 이것은 추상적인 거대 담론이 아니라 작가 개인의 직접적인 경험과 기억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개념적 방식이 아닌 정서적 방식으로 세계 혹은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의 획득할 수 있다.

동시대미술은 한마디로 '예술' 패러다임의 종말 이후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은 미술만의 고유한 목표가 따로 있다는 믿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만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시대다. 이제 순수미술과 응용미술, 고급미술과 저급미술의 구분은 무의미하게 된다. 동시대 미술가는 자신이 원하는 어떠한 목표도 설정할 수 있고 그 목표를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다. 예컨대, 그 목표가 색면 추상이라면 그는 추상화가가 될 수 있고, 그 목표가 페미니즘 주장이라면 페미니스트 작가가 될 수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없는 시대이다. 이제는 무엇이든지 제작할 수 있는 시대, 즉 어떤 사조가 다른 사조보다 더 가치 있다고 할 수 없는 뜻에서 다원주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무엇이든지 미술이 되는 자유로운 시대에 관람자에게 가치 있는 작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작품들이다. 관람객들에게 세상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작가 자신만의 '개별 서사' 구성과 그것을 구현하는 매체와 양식의 연구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3월에 하정웅미술관에서 개최된 '잊혀진 사람들, 끝나지 않은 이야기'전과 동구 산수동에 위치하고 있는 산수미술관에서 개최된 '동시대미술, 역사를 말하다'전은 전시 내용이나 규모는 전혀 다르나, 두 전시 모두 동시대미술이 실제로 역사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잊혀진 사람들, 끝나지 않은 이야기'전에서는 일본 제국주의 전쟁의 도구로 징용되어서 일본 다자와 호수의 수로 공사에서 희생당한 조선인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일본 하나오카 구리광산에서 가혹한 노동과 학대에 항거하다가 죽음에 이른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사진, 판화, 회화, 기록 등을 이용해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전시는 다자와 호수 공사에서 희생된 조선인의 이야기와 하나오카에서 처형된 중국 노동자의 이야기에 관람객이 몰입할 수 있도록 당시의 회화, 판화와 사진, 다큐멘타리 등 다양한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전시는 전화황, 박병희, 하정웅, 지바 카츠스케, 지바 카즈히코, 박철의 작품과 하나오카 판화 57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안해룡의 징용의 역사를 추적한 추모비 시리즈, 현대미술가 김주영의 "어느 조센징 농사꾼 이야기" 프로젝트 설치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이 전시의 기획자는 다양한 매체와 텍스트의 설치 작업을 통해 이 전시에서 제시된 두 서사에 관람객이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 이 사건이 8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하고 기억해야할 서사라는 점을 각인시킨다. 이 전시는 우리에게 강제 이주된 노동자들의 아픔을 체득할 수 있고 야만의 역사와 인간의 존엄을 새롭게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동시대미술, 역사를 말하다'전은 추상, 구상, 민중미술, 극사실, 설치, 개념, 웹툰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고 있는 동시대 미술가 9명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역사를 어떻게 시각화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전시이다. 강운, 김상연, 김유섭, 송필용, 이매리, 정광희, 정영창, 조정태, 황중환, 9명의 작가는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거나 자연 대상에 빗대어서 우리 역사가 무엇인지에 대해 작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자적인 개별 서사를 만들고 있다. 예컨대 송필용 작가는 역사라는 거대한 폭포수를 견뎌냈던 민중의 견고한 존재를 두터운 마티에르의 바위로 표현했고, 황중환 작가는 결정적 순간마다 빛났던 민중의 힘을 투명한 푸른색 하늘과 도도히 흐르는 강물로 묘사하고 있다. 민중미술 진영에서 활동해온 조정태 작가는 검은색 태극기와 플라스틱 의자를 병렬 배치함으로써 박제화 되어버린 국가 기념일과 아직 청산되지 않은 식민 잔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다양한 서사를 담고 있는 동시대미술이 우리에게 가치가 있는 이유는 작품이 자신만의 주장을 담고 있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그 서사가 효과적으로 전달되어서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주었다는 점 때문이다. 역사를 주제로 삼고 있는 동시대미술이 가치가 있다면, 역사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주장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정웅미술관- 다자와 호수 히메관음상의 비밀. 홍윤리 학계사 제공

하정웅미술관- 다자와 호수 히메관음상의 비밀. 홍윤리 학계사 제공

자바 카츠스케 다자와 호수 히메관음상, 사진, 2002. 홍윤리 학예사 제공

박철_히메관음상, 2007, 디지털 프린트, 105cmX70cm_개인소장

강운 작 '철책 단상, 에스킷'

김상연 작 '영웅시리즈'

김유섭 작 '두 빛 '

송필용 작 '역사'

정영창 작 '김재규'

조정태 작 '검은깃발'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