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광역시 동구가 주최한 ‘광주 국가유산 야행’이 열린 25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개막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윤준명 기자 |
고대부터 현대까지, 광주의 시간과 기억을 따라 걷는 특별한 야간 여행이 펼쳐졌다. 시민들은 원도심 속 골목마다 깃들어 있는 이야기들을 마주하며,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인문도시의 정취를 만끽했다.
지난 25일 찾은 동구 5·18민주광장 일원에서는 ‘광주 국가유산 야행’ 프로그램 진행이 한창이었다. 이는 동구가 9년째 주최하는 야간문화 향유 축제로, 올해는 지역 석조유산과 의로움의 이야기를 담는 ‘돌의(義) 시간’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33개 프로그램이 26일까지 양일간 펼쳐졌다.
개막공연과 함께 ‘돌의 광장’으로 변신한 민주광장에는 고대사 속 백제의 석실 고분부터 현대사의 전남도청까지, 돌을 주제로 한 전시 주제관이 마련돼 관심을 끌었다. 또 광주 5개 자치구에서는 ‘의병 활쏘기’와 ‘김덕령 장군 뱃지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형 부스를 설치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며 돌탑을 쌓는 VR 체험인 ‘돌탑 멜로디’ 역시 참여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 광주광역시 동구가 주최한 ‘광주 국가유산 야행’이 열린 25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힌츠페터 기록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태일(8)군이 ‘호외 신문’을 제작하고 있다. 윤준명 기자 |
김태일(경남 영주 풍기초교 2년)군은 “힌츠페터 기자가 기사를 작성할 때 얼마나 많은 난관을 마주하고, 고뇌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며 “5·18민주화운동의 의미와 당시 기자들의 사명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광주읍성을 미디어아트로 재구성한 조형물인 빛의읍성에서는 당시 고을의 모습을 생생히 탐색할 기회가 제공됐다. 훈장님과 함께하는 ‘광주읍성 유람기’와 소리꾼들의 공연 등은 옛 광주읍성의 모습을 눈앞에 재현하고, 전통 문화체험을 제공하며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 광주광역시 동구가 주최한 ‘광주 국가유산 야행’이 열린 25일, 동구 빛의읍성 앞에서 시민들이 소리꾼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윤준명 기자 |
민주광장 한켠에 설치된 광주역 부스에서 표를 받고 서석초교 앞의 나주역 부스로 이동하자 일제강점기 광주의 모습이 펼쳐졌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관객 참여형 연극 ‘학생 독립 기억학교’와 태극기 만들기, 장재성 선생 그리기 체험 등은 많은 학생의 발길을 이끌었다. 이들은 조국 독립을 위한 선배들의 피 끓는 희생과 헌신을 상기하며, 광주 학생으로서의 자긍심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박주은·전예랑(금당중 3년)양은 “역사적 인물들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자유롭게 공부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며 “이번 체험을 통해 학생독립운동의 가치를 깨닫고, 그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상평통보 등 ‘야행 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광주 큰장과 작은 장에서는 소상공인들이 직접 만든 식음료와 잡화 등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했다. 기후활동가들은 ‘아나바다’ 부스를 운영하면서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도모하고, 자원순환의 가치를 알렸다.
전남대 학생 서예찬(23)씨는 “환경동아리 활동의 일환으로 종이봉투 재활용하기 부스를 운영하게 됐다”며 “시민들의 인식 개선을 통해 자원을 보존하고 재활용하는 움직임이 점차 확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행사장 주변으로는 전통 의상을 맞춰 입은 ‘꼬마 의병단’이 순찰을 돌며 안전한 축제 분위기 조성에 나섰고, 동구 지역 초등학생으로 구성된 ‘어린이 해설사’들이 곳곳에 배치돼 관람객들에게 문화 관광자원 해설을 제공했다.
주지연(용산초교 6년)양은 “해설사 활동을 하기 위해 한동안 역사 공부에 몰두했다”며 “덕분에 국난이 닥칠 때마다 위기를 극복하려 힘을 모았던 호남인들의 의로운 역사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됐다”고 귀띔했다.
관람객들은 지역 역사 문화자원을 품은 도심 야간 축제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신선아(43)씨는 “자녀에게 체험형 역사 교육을 해주고자 광장을 찾았는데 행사 규모도 크고 볼거리도 많았다”며 “원도심을 관통하는 기억과 시간을 올곧게 바라보고, 애향심을 키울 수 있는 뜻깊은 축제”라고 강조했다.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