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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는 1960년 3·15 부정선거 여파로 정권 주도의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제3차 개정헌법에 헌법기관으로 지정됐다. 이후 선관위가 선거, 정당, 정치자금 관련 업무를 독점하고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행사하면서 이 지경까지 타락한 것이다. 게다가 복무 기강 해이도 점입가경이다. 감사에 따르면, 선거 때마다 전국의 지자체 공무원들이 선거사무에 동원되지만, 막상 선거관리가 고유업무인 선관위는 휴직자가 급증하고, 그 결원을 ‘친인척’으로 채우는 비리를 저질러왔다. 대법관이 겸직하는 선관위원장의 궁색한 변명은 참담하다 못해 수치스럽다. 2025년 대한민국 정부의 자화상이다.
1893년 고부군수 조병갑은 모친상을 당하자 주민들로부터 부조금을 강제로 걷었다.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이 가만있지 않았다. 주민 대표로 나서서 항의했지만, 되려 곤장을 맞은 후 후유증으로 숨졌다. 관리의 악행은 그 후에도 계속됐다. 강제 노역, 재산 수탈, 과도한 세금 등이 뒤따랐다. 이듬해 농민들의 분노는 인내를 넘어섰다. 전봉준과 농민들은 고부 관아를 공격했고, 탐관오리 조병갑은 달아났다. 동학농민운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13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모습은 대체 어떤 꼴일까.
동학농민운동과 선관위의 부정부패는 시대와 맥락은 다르지만, 사회 정의와 개혁을 둘러싼 공통의 교훈을 제공한다. 두 사건을 통해 우리는 부패와 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민중의 목소리와 제도적 개혁의 중요성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은 탐관오리의 횡포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일어난 대규모 민중운동이다. 당시 농민들은 세도정치로 인한 부패, 경제적 착취, 그리고 일본과 청의 간섭으로 고통받았다.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농민군은 고부 봉기를 시작으로 전주성을 점령하며 폐정개혁안을 요구했으나, 결국 일본군과 관군의 무력 진압으로 좌절됐다.
동학농민운동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민중이 주체가 되어 부패한 권력 구조에 도전한 최초의 대규모 운동으로 평가된다. 이후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며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선관위의 부정부패는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라 할 수 있다. 2023년부터 드러난 선관위의 채용 비리 의혹은 국가적 분노를 일으켰다. 감사원 조사 결과,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과 조직적 은폐 시도가 밝혀졌으며, 이에 따라 검찰 수사와 국회 차원의 개혁 논의가 진행 중이다. 선관위는 민주주의를 관리하는 핵심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내부 견제와 투명성이 제거됐다. 여야는 특별감사관법 발의와 자정 노력 촉구 등 개선책을 제시했으나 국민의 신뢰 회복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선관위 부패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기관이 스스로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했다는 점이다. 선관위는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핵심 기관이다. 그러나 채용 비리와 관리 부실 등으로 인해 공정성과 중립성이 의심받으면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공정한 선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흔들리는 판이다.
‘현대판 음서제’로 비유되는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은 또한 국민에게 공직자 전반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었다. 공공기관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무참히 파괴한 셈이다.
특히 청년 세대는 공정한 경쟁 기회가 박탈된 현실에 분노한다. 이는 단순히 특정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불공정 구조에 대한 좌절감을 증폭시키는 악영향을 초래한다. 정치적 논란과 사회 분열도 문제다. 선관위 부패 문제는 여야 간 정치적 갈등으로 확대되며, 문제 해결보다 정쟁으로 흐르는 양상을 보인다. 국민의 정치적 피로감을 가중시키고,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만든다.
이러한 신뢰 훼손은 선관위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공공제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철저한 개혁과 투명성 확보가 시급하다.
두 사건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부패에 대한 저항이다. 동학농민군이 탐관오리와 외세에 맞섰듯이, 현대 사회에서도 부패한 권력 구조는 지속적인 도전을 받아야 한다. 제도 개혁의 절대적 필요성이다. 헌법기관 지위를 박탈하라는 목소리도 드세다.
동학농민운동이 제도적 개혁 실패로 좌절된 것처럼, 선관위 문제 역시 실질적 개혁 없이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동학농민운동이 민중이 변화의 주체임을 보여준 것처럼, 오늘날에도 시민 사회와 여론은 권력 견제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동학농민운동의 정신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허울 좋은 말뿐이 아닌, 진실로 정의롭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 ‘민초’의 노력과 실천이 매우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