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열린 광주 중앙초등학교 입학식에는 1명의 신입생이 입학했다. 광주시교육청 제공 |
인구절벽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자체와 기업들이 다양한 제안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제안에 힘입어 2024년은 하락추세에 있던 출산율이 0.03명 증가해 0.75명으로 약간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현재와 같은 인구수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으로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우리나라 경우는 아기를 낳으면 얼마를 더 주겠다는 제안이 생활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일시적 효과를 가져올지 모르나 먼저 아동 인권을 위한 구체적 실행 논의가 필요하다. 현행 아이들을 위한 제도는 무엇을 위한 제안과 제도개편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한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로 시작하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좋아했던 영국시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순수의 전조’라는 132행의 시가 있다. 이 시에 “매일 밤, 매일 아침/어떤 이들은 비참하게 태어난다/매일 아침, 매일 밤/어떤 이들은 달콤한 기쁨으로 태어난다” 라는 구절이 있다. 시인은 이를 입증하듯 다른 시 ‘굴뚝 청소부’라는 시에서는 가난이 몰고 온 어른 세계의 무자비성과 힘없는 아이들의 고통을 보여준다.
“엄마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죽었어요,/ 그리고 아빠는 저를 팔았어요, 제 혀가 아직/ ‘윕! 윕! 윕! 윕!’도 외칠 수 없을 무렵에요./ 그래서 저는 당신들의 굴뚝을 청소하고, 숯검정 속에 잠을 자지요.// 어린 톰 데이커가 있었어요, 양의 등처럼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밀렸을 때 그는 울었어요, 난 말했어요,/ 쉿! 톰! 신경 쓰지마, 머리카락이 없으면,/ 검댕이 너의 흰 머리카락을 더럽힐 일도 없잖아.// 그러자 그는 울음을 그쳤고, 바로 그 날 밤,/ 톰이 잠을 자다가, 놀라운 광경을 보았어요!/ 수천 명의 굴뚝 청소부들, 딕, 조, 네드, 잭이/ 모두 검은 관 안에 갇혀 있었어요.// 그리고 빛나는 열쇠를 가진 한 천사가 다가와,/ 관을 열고 모두를 자유롭게 해주었어요,/ 아이들은 푸른 들판을 뛰고, 소리 내어 웃으며, 달려 내려갔어요,/ 강물에 몸을 씻고, 햇빛을 받아 반짝였어요.//(후략)”
블레이크는 굴뚝 청소하는 아이들의 비참한 상황과 그들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이 시를 쓴 것 같다. 1666년 런던 대화재 이후 각 주택에는 벽난로 화재를 막기 위해 좁은 굴뚝을 설치해야 했다. 4살에서 5살 정도의 아이들이 18인치 굴뚝을 청소하기 위해 팔렸다. 동이 트기 전부터 굴뚝 청소 가방을 메고 “청소하세요(sweep)”를 외치며 다니는 아이들을 ‘작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용인했다. 200여 년 동안 이 일을 했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작업 도중 떨어져 죽거나 성인이 되기 전에 유해물질에 노출돼 암과 폐질환으로 죽었다. 지금은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만 사람들이 현상 유지에 가치를 두고 아이들이 작기 때문에 이 일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을까? 어느 시대이든 힘없는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와 대비적인 어린이의 세계를 갈망하는 워어즈 워드(1770~1850)의 ‘무지개’는 비슷한 시기의 작품이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쉰 예순에도 그렇지 못하다면/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
일반적 탄생이라면 워어즈 워드가 말한 순수한 어린 시절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블레이크의 말처럼 비참함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기쁨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둠 속에서 살아낼 것이다. 타락하지 않은 아이의 순수성이 어른의 경험으로 만들어 놓은 사회와 제도의 위선과 불의에 의해 위험 속으로 던져질 수 있다.
한 달여 전 대전에서 벌어진 초등학교 1학년 살해 사건은 전국민을 고통과 슬픔으로 몰아넣었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근본적인 접근방식을 생각해 보야할 것이다. 사건 전날 우울증이 심한 여교사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학교측에서 알았다면 조사를 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했다. 만약 사람을 보호할 건물 천장이 무너질 조짐을 보인다면 천장 보수를 위한 조사를 먼저 하겠는가? 비상조치를 먼저 취하고 나서 조사를 하겠는가? 아이들을 보호할 학교라는 공간에서 어떤 사태가 벌어진다면 비상사태로 인지하고 일단 자체적으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위험성이나 위급성과 상관없이 당장 눈앞에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체계적으로 보고하고 허락받는 문제해결 방식을 택하고 있다. 어떤 단체나 집단은 사람의 생명보다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단계를 선택한다. 즉 학교는 그 선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생각했지 그가 어떤 일을 벌일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하거나 이에 대한 대응을 선행하지 않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생명보호에 대한 법적 체계적 유연한 접근이다.
지금과 같은 인구절벽의 위기 앞에서는 아이들이 계속해서 태어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성장시킬 것인가의 환경 마련이 더욱 급선무이다. 태어날 때부터 지니게 될 비참함과 기쁨이라는 차이를 국가가 어떻게 극복하게 할 것인지, 힘없는 아이들이 노출될 돌발 위기상황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국민적 지혜와 실행력이 필요하다. 어린이에게서 우리의 미래를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