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 이야기>“겉모습보다 속살이 더 정겨운 산골 조경(造景)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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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 이야기>“겉모습보다 속살이 더 정겨운 산골 조경(造景)의 마을”
●순천 학구마을
‘푸른꽃농원’·‘남산식물원’ 등 조경업
승주·순천·구례 만나는 거점 요충지
순천부 가던 이순신도 2차례 거쳐가
여순사건 봉기군-토벌군 첫 전투도
  • 입력 : 2025. 01.09(목) 17:07
  •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학구마을 풍경. 산골에 사철나무, 산다화, 남천 등 많은 나무가 자라 식물원을 연상케 한다.
학구삼거리에 세워진 여순사건 사적지 표지판. 학구마을에선 봉기군과 토벌군 사이 첫 전투가 벌어졌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노란 열매가 하나둘 달려 있다. 생김새가 울퉁불퉁하다. 열매는 땅에도 떨어져 있다. 여름 햇볕과 가을바람을 머금은 향이 짙다. 매혹적이다. 나무도 굵고 크다. 나무 자체로 풍경이 되는 모과나무다. 열매 하나 주워 자동차 안에 둘까? 잠깐 생각한다.

큰 분재처럼 다듬어진 팽나무도 멋스럽다.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산골의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를 다 이겨낸 나무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당산나무여서 더 정겹다. 이야깃거리 많고 전설까지 간직한 팽나무다. 여름날 풍성한 초록 열매는 새들이 좋아한다.

빨갛게 물든 남천도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가을날 단풍 같다. 남천은 겨울에 붉게 물들고, 삭풍이 강할수록 더욱 아름답다. 알알이 맺힌 열매도 탐스럽다. 악귀는 쫓고 행운을 부르는 나무다. 꽃말도 전화위복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분노와 슬픔도 조만간 복으로 돌아오길 소망한다.

나무와 어우러진 조각작품도 품격을 더해준다. 입맞춤하는 남녀, 단란한 가족에서 돼지, 돌고래, 학까지 다양하다. 볼거리 많고 공간도 넓다. 차분히 돌아보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리겠다.

순천 학구삼거리에 있는 ‘푸른꽃농원’이다. 농원엔 팽나무, 모과나무, 남천 외에 소나무, 배롱나무, 동백, 주목, 단풍나무, 철쭉 등 수십여 종의 나무와 꽃이 있다. 오길용 대표는 조경업과 정원 설계·관리를 주업으로 삼고 있다.

마을에 크고 작은 농원이 더 있다. 철쭉, 사철나무, 산다화 등 갖가지 묘목을 키우고 나무를 가꾸는 ‘남산식물원’ 김용주 대표도 있다. 그는 조경업을 일찍 시작한 ‘1세대’에 속한다.

“동백 종류가 정말 많아요. 개량종도 많고, 색깔도 다양합니다. 홍백과 동백 있고 분홍동백, 줄무늬동백도 있어요. 꽃도 홑꽃, 겹꽃, 무늬꽃으로 나뉘고.” “종류를 다 구분하십니까? 꽃 없는 상태에서도.” “당연하제. 내가 나무를 키운 지 50년 됐소.”

김 대표와 주고받은 말이다. 그는 빨간 남천 열매도 말리고 있다. 새봄에 파종해 묘목으로 키울 것이라고 한다. 김 대표는 자신의 땅이 남승룡 생가라는 말도 귀띔했다. 남승룡(1912∼2001)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 손기정과 함께 출전, 동메달을 땄다. 순천에선 이를 기리는 ‘남승룡 마라톤대회’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올해 25회째다.

나무와 식물을 많이 가꾸는 학구마을은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학구리에 속한다. 바랑산(620m)과 용암산(410m) 등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이 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서천을 만든다. 서천은 학구리에서 남쪽으로 흘러 선평리에서 동천과 몸을 섞는다.

학구리(鶴口里)는 학구, 신촌, 장척 등 3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마을 뒤 산세가 날개를 편 학 형상이라고 ‘학구’다. 임야가 마을 면적의 90%에 이른다. 집은 학구천을 따라 모여 있다. 주민은 100여 가구 산다. 오래전엔 천수답에 의지해 살았다. 한때 다른 동네 사람들이 ‘학구쟁이’라 부르며 비하했다. 지금은 조경이 주된 소득원이다.

학구마을은 예부터 요충지였다. 승주와 순천, 구례가 만나는 거점이 학구삼거리다. 관리들이 쉬어가는 객관 ‘송원(松院)’이 들어선 이유다. 학구에서 구례로 통하는 고갯길 송치(松峙) 부근이 ‘원터’다.

이순신도 임진왜란 때 학구마을에 들렀다. 1597년 8월 석곡과 주암을 거쳐 순천부로 가는 길이었다. 이순신은 학구에서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관리들에게 소집 전령을 보냈다. 전령을 받은 광양현감 구덕령, 나주판관 원종의, 옥구군수 김희온, 조방장 배경남이 달려왔다.

이순신은 백의종군 명을 받고 순천부로 향하던 4월에도 학구마을을 지났다. ‘남도 이순신길-백의종군로’가 학구마을을 지나고, 학구삼거리에 ‘남도 이순신길-조선수군재건로’ 안내판이 세워진 이유다.

1948년 여순사건 땐 봉기군과 토벌군의 첫 전투가 학구에서 펼쳐졌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있던 제14연대 군인들이 제주 4·3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일어났다. 봉기군은 20일 새벽 여수를 장악하고 순천으로 향했다.

학구전투는 21일 새벽 일어났다. 학구전투에서 밀리고, 연달아 순천에서 패한 봉기군은 백운산과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순천을 점령한 토벌군은 봉기군 가담자와 민간인 협력자 색출에 나섰다. 이른바 ‘손가락 총’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다.

학구마을이 또 한 번 세간의 관심을 받은 건 2014년 7월이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체가 학구삼거리 인근 매실밭에서 발견되면서다. 유병언은 참사를 낸 ‘세월호’의 실소유주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돼 검찰의 추적을 받아왔다.

학구마을은 산골이지만, 지금도 길목이다. 마을 앞으로 순천-구례를 잇는 17번 국도와 전라선 철길이 지난다. 수릿재를 넘어 승주와 이어주는 22번 국도도 학구삼거리에서 17번 국도와 만난다. 학구교회의 유서도 깊다. 일제강점 때인 1930년 4월 변요한(1875~1975) 선교사에 의해 시작됐다. 현 예배당은 2016년 지어졌다.

산골마을 풍경도 애틋하다. 까치가 다 먹기엔 많은 감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나무에서 찬바람과 눈비를 맞으며 익은 홍시가 후부드럽다. 멧돼지로부터 텃밭을 지키는 허수아비도 눈길을 끈다. 겉모습보다도 속살이 더 정겨운 산골 마을이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