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정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조교수가 ‘생성형 AI와 리걸테크’ 강의를 진행 중이다. 박찬 기자 |
●AI가 적용된 법률의 미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지난 8월30일부터 ‘생성형 AI와 리걸테크’ 과목을 공식 신설해 법률에 AI가 도입되면 불거질 윤리적 문제와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기술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하는지 탐구하고 있다. 생성형 AI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인공지능 기술을 의미하고 리걸테크는 법률 서비스에 기술을 접목한다는 뜻이다.
‘생성형 AI와 리걸테크’는 AI 기술의 발전이 법률 분야에 미칠 영향을 이해하고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마련됐다. 학생들은 해당 과목을 통해 △컴퓨테이션 법률학 △법률 AI 시스템 △거대언어모델 이론과 생성형 AI의 법적 이슈 △AI 윤리 등을 배운다.
해당 과목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주제 중 하나는 AI의 등장으로 인한 저작권법 논쟁이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AI 산출물에 관한 저작권 부여 여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기존 저작권법 체계가 창작의 주체를 인간으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AI의 발전이 결국 법률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란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박성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은 “이번 과목의 핵심은 없던 것을 새로 창조하는 게 아닌 기존에 존재했던 ‘법률’과 ‘AI’ 융합에 따른 법과 기술의 충돌이 핵심”이라며 “그동안 ‘리걸테크’는 기존의 포렌식 프로파일링, 소프트웨어 등을 활용한 수사업무를 의미했지만, 최근 ‘리걸테크’의 의미는 더 넓어졌고 변화했다. 특히 AI를 접목한 용어로 널리 사용된다”고 말했다.
● ‘TDM’ 면책 규정 도입 논쟁
AI 산출물의 저작권법상 ‘저작물성’ 인정 여부를 두고 관련 사항에 대한 연구가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다. AI 학습을 위해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과정이 필수적인데 이 과정에서 저작권 침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국내 저작권법 제2조 제1호에 따르면 ‘저작물’이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제2호는 ‘저작물을 창작한 자’를 저작자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과 창작성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러한 저작권법 규정에 따르면 인간의 창작 행위에 중점을 두며 창작물에 대한 보호방법과 범위 등을 규정하고 있어 현행법 체계에서는 생성형 AI에 의한 산출물에 대해 저작권법 규정을 적용하기 어렵다.
학계 측은 비상업·비영리적 목적에 한해 ‘TDM’(Text and Data Mining) 면책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TDM 면책 규정’은 쉽게 말해 AI가 저작물에 쉽게 접근해 자유롭게 학습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을 뜻한다. 학계 측은 저작권이 보호되는 저작물을 AI의 학습데이터로 활용하고 공정이용을 통한 법적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구체적인 법 규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또 데이터분석 또는 저작물의 비표현적 이용 등에 국한된 별도의 저작권 제한 사유를 추가로 도입해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AI 기술의 자유로운 발달을 위해서 저작물 수집을 위한 유연한 법적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AI 시스템이 저작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콘텐츠를 흡수해 훈련할 수 있게 되면 국내 AI 혁신을 촉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 학습 과정에서의 저작권 침해 문제에 과도한 제재가 AI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학계 측의 설명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AI 기업을 상대로 한 저작권 침해 소송이 다수 제기되고 있다. 반면 영국, EU, 일본 등에서는 TDM 면책 규정을 도입해 일부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이용을 허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제21대 국회에서 TDM 면책규정 도입을 골자로 한 저작권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하지만 이를 두고 ‘AI의 무단학습’이란 지적도 나온다.
반대 측 입장은 AI 학습 과정에 대한 저작권 규율은 기술혁신과 창작자 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데 결국 TDM 면책규정이 국내 도입되기에는 여전히 ‘사생활 침해’ 논란을 야기할 문제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 정책·법제적 상황에 적합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타국 입법의 ‘결과’만이 아닌 그 과정의 배경을 살펴보고 차이점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창작물 독점에 따른 시장 왜곡, 인간 창작 동기의 왜소화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AI 산출물에 저작권을 인정한다면, 특정 기업이 인공지능을 통해 대량의 저작물을 생산하며 저작물 시장을 독점하는 부작용도 낳을 수 있다.
결국 TDM 면책 규정 도입을 위해서는 이 같은 문제점을 방지할 수 있는 규제 법안도 함께 마련되는 게 중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5일 박성필(왼쪽)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과 전우정(오른쪽)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조교수가 AI가 투입될 법률의 미래와 국내 라지 랭귀지 모델 자체 개발의 필요성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박찬 기자 |
AI 기술의 실제 법률 적용에 앞서 국내에서도 챗GPT와 같은 라지 랭귀지 모델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생성형 AI와 리걸테크’ 과목의 주임교수를 맡은 전우정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조교수는 “현재 항공, 의료, 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AI를 성공적으로 접목했지만, 리걸테크 분야에서는 여전히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며 “생성형 AI를 중점으로 한 라지 랭귀지 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기업은 국내에 네이버, 카카오, 삼성 등이다. 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훨씬 정확한 판결문 해독과 해석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세계적 공통 용어가 사용되는 항공, 의료와는 달리 영미법과 대륙법의 차이가 있는 법률의 특수성과 국가마다 다른 법에 따른 챗GPT 인용의 한계 때문에 더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챗GPT에 소송 사건이나 판례에 관한 질문을 하면 미국 법에 따라 답변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대한민국 헌법이 적용된 자체 라지 랭귀지 개발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리걸테크 모델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학습데이터양을 최대한 끌어내는 게 중요한데 TDM 면책규정을 통한 웹 스크래핑 허용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전 교수의 설명이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