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해고도에 갇힌 육체, 진리 통한 정신으로 풀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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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해고도에 갇힌 육체, 진리 통한 정신으로 풀어내다
[신간]흑산도 하늘길
한승원│문이당│1만6000원
  • 입력 : 2024. 11.21(목) 14:33
  •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
흑산도 하늘길.
신화와 샤머니즘을 통해 독특한 문학 세계를 그려 온 한승원 작가.

그의 대표적인 장편소설 ‘흑산도 하늘 길’이 출간 20여년 만에 개정판으로 찾아왔다. 정약전의 유배 생활을 배경으로 육체를 가두고 정신을 풀어 놓는 자유자재의 지혜를 통한 본질적 삶과 치열한 고뇌와 역경을 다룬다. 정약전이 유배됐던 흑산도 현장을 서정적인 문체로 묘사하며 궁극에 이루고자 한 인물의 삶을 그려낸다.

정조의 서거 후 순조가 즉위하고 소론과 남인의 당쟁이 신유박해라는 천주교 탄압으로 비화하면서 정약전은 천주교인으로 지목받아 신지도로 유배된다. 이후 황사영의 백서사건이 일자 유배지를 흑산도로 옮기게 된다. 그에게 흑산행은 나락의 끝장이자 지옥행이었다.

공포와 절망에 휩싸이며 소흑산도에 당도하자 그는 간섭과 감시를 피해 대흑산도로 들어가라는 아전의 권유를 뿌리친고 소흑산에 머물기로 결심한다. 그곳에서 강진으로 유배된 정약용과 서간을 주고받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활한다.

작품은 본인의 이름보다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더 알려진 손암 정약전을 주인공으로 그가 유배지에서 겪는 한 인간의 고독, 슬픔, 좌절, 불안, 기다림, 인내를 다루며 희망과 사랑, 믿음의 가치를 작가 특유의 절제되고 깊이 있는 필치로 구현했다.

특히 정약전의 상징이자 삶인 ‘승률조개’는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다. 한 인간을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 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공포스러운 공간 흑산도. 그는 그곳에서 혼돈과 분열 속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갱신시켜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고뇌한다.

흑산도라는 절해고도에 육체가 갇히고 진리에 도달함으로써 자유자재하고자 한 정약전의 치열한 몸부림은 소설을 통해 본질적 궁극에 이르고자 한 저자의 삶과 그 궤적을 같이한다. 장흥 율산에서 해산토굴을 짓고 스스로 갇혀 살았던 한 작가가 ‘소설가로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담론을 제기한다. 동시에 한과 애환이 절절히 끓는 토속적 공간에서 사족사와 인간의 욕망이 뒤엉키는 현장 묘사는 그가 왜 한국 문단의 거장인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