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폭력 가담자들의 공동 변론을 과학으로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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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폭력 가담자들의 공동 변론을 과학으로 파헤치다
[신간]명령에 따랐을 뿐!?
에밀리 A. 캐스파│동아시아│2만원
  • 입력 : 2025. 01.16(목) 13:08
  •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
명령에 따랐을 뿐!?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최근 여러 국면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다. 이는 국가적 폭력 사태나 집단학살이 일어났을 때 사건의 책임자들을 포함해 모든 가담자에게서 들을 수 있는 책임 회피성 진술이다.

‘복종하는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원론적 질문에서 시작해 명령에 따르는 인간에 대한 인지신경과학 연구를 거쳐 해답을 거론하는 책이 출간됐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경고와 과학적 해답을 고찰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책의 저자인 에밀리 A. 캐스파 박사는 심리학계와 과학계에 선세이션을 일으키며 주목받고 있다. 그는 집단학살과 국가적 폭력에 가담한 이들이 재판 과정에서 하나같이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단순히 명령에 따르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부당하고 잔혹한 행위를 할 수 있는지 되짚는다.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 행동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 명령에 따르는 이들의 뇌에서 일어나는 인지신경학적 과정을 파헤친다. 복종의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연구들과 함께 방대한 인지신경과학 자료를 분석해 집단학살, 폭력 사태에 대한 종합적 지식을 제공한다.

저자는 집단학살이 발생했던 르완다, 캄보디아 등을 방문해 실제 학살의 가해자들을 인터뷰하고 실험 결과로 종합해 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의 책임을 물었던 1차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기소된 24인의 지도자 대다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론했다. 이 중 3명을 제외한 모두가 유죄 판결을 선고받고 12명은 사형에 처해졌다. 그럼에도 당시 지시체계 최하단에서 명령에 따라 잔혹한 행위를 수행한 사병들과 부사관을 어떻게 처벌해야 할지 논쟁이 일었다. 강압적 상황에서 명령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일시적으로 자유의지가 없어지는 것인지 저자는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개인의 신경과학적 데이터로 집단적 폭력 현상을 설명하는 책. 이 책을 정독하기에 그 어느 때보다 시의적절한 시기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