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윤승태>해양학자의 환경일기 ‘서른세 번째 기록-폭염과 극한 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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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유전자·윤승태>해양학자의 환경일기 ‘서른세 번째 기록-폭염과 극한 호우’
윤승태 경북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부 해양학전공 조교수
  • 입력 : 2024. 10.01(화) 18:13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한 시민이 양산을 쓰고 부채질을 하고 있다. 뉴시스
24절기 가운데 처서(處暑)는 ‘더위가 그친다’는 뜻으로, 여름이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는 시기다. 보통 처서는 양력으로 8월23일 경에 해당하고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도 비뚤어진다’, ‘처서 매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실제 처서가 지나면 여름 더위가 사라지고 가을 바람이 불어 선선한 날씨가 된다.

올해 처서는 8월22일이었다. 이제는 처서를 지나 가을의 3번째 절기인 백로(9월 7일)도 지났지만 올해 더위는 아직 우리를 떠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올해 처서에는 우리나라에 강한 비가 쏟아졌고 그 영향으로 덥고 습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체감온도 30도 이상의 폭염과 열대야가 며칠간 계속되었다. 심한 폭염으로 ‘최악의 여름’이라 기억되는 1994년, 2018년에도 처서 이후에는 기온이 30도 이하로 내려가면서 더위가 한풀 꺾였는데 올해는 정말 역대급이라 할 만하다. 칼럼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9월 초)도 부산 진주, 서울 등에서는 폭염주의보가 발효 중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8월 전국적으로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웃돈 평균 폭염일수는 16.9일로 가장 많았고 전국 평균 열대야 일수도 11.3일로 근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러한 역대급 폭염은 북태평양 고기압(상공 5km)과 티베트고기압(상공 12km)의 확장으로 인해 우리나라 상공을 두 고기압이 이중으로 덮은 상태로 강한 햇볕이 내리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확장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올해 여름철 강수 총량은 적었지만, 한반도에 발달하는 비구름대가 평년보다 매우 좁고 얇은 띠 형태로 발달해 일명 ‘압축 비구름대’에 의한 집중 폭우가 많이 발생했다. 시간당 100㎜ 넘는 집중 호우가 총 9건이나 보고되었고 건물 및 주택 침수 피해와 사망, 실종 사건 등도 다수 발생하였다. 기상청에서는 작년부터 1시간 누적 강수량이 50㎜ 이상이면서 동시에 3시간 누적 강수량이 90㎜ 이상인 비 또는 1시간 누적 강수량이 72㎜ 이상인 비를 ‘극한호우’로 따로 분류하고 있는데, 올해부터는 극한 호우가 우리나라 여름철 강수의 일상적인 모습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고기압 영향으로 7-8월 동안 태풍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처럼 느껴진다.

작년 네이처(Nature) 저널에 출판된 연구를 통해 최근 발생하고 있는 폭우의 증가가 지구온난화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음이 밝혀졌다. 그동안 지구온난화로 인해 바다에서의 증발 및 대기 내 포화수증기량의 증가로 강수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여겨져왔지만 이를 실제로 증명한 연구는 없었다. 그런데 딥러닝(Deep-learning) 기술을 활용해 1980-2020년 기간 전지구 강수 자료를 바탕으로 전(全)지구 기온 변화를 추정해 보니, 위 기간 동안 지구 전체의 기온이 약 1℃ 상승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시 말해, 지구온난화 때문에 전지구 강수 특성이 바뀌었고 전지구 강수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높은 기온이 강수가 많이 내리는 현상뿐 아니라 강수가 매우 적게 내리는 현상과도 10일 이내 주기에서 높은 상관성을 보임을 확인하였다. 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폭우와 폭염이 10일 이내에 반복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의미한다. 이 결과는 올 여름 발생한 폭염과 ‘압축 비구름대’에 의한 극한 폭우 현상이 가까운 미래에는 더욱 심화되고 일상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해가 거듭될수록 전례 없는 이상 기후 현상의 발생 빈도는 더 높아질 것이며 그 피해 규모 또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 여름 폭염과 극한 호우를 견뎌낸 우리들은 당장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극한 한파와 폭설에 다시 대비해야 한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기후 위기는 현세대보다는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일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현세대도 기후 위기 속에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올해 여름 많은 독자분들도 깨달았을 것이다.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올해 겨울은 적은 기후변화 영향 속에 무사히 지나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