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보호 5법 시행’ 1년… 여전한 교사들의 ‘참아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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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교권보호 5법 시행’ 1년… 여전한 교사들의 ‘참아내기’
‘서이초 교사 사망’ 계기로 제정
‘학생 분리 조치’ 활용사례 전무
교장 등 책임자 ‘민원대응’ 미흡
교사 명예퇴직·교대생 자퇴 증가
  • 입력 : 2024. 09.03(화) 18:23
  • 민현기 기자 hyunki.min@jnilbo.com
극단적 선택으로 눈을 감은 서울 서이초 교사의 49재였던 지난해 9월 4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49재 광주 추모의 날’ 추모 행사에 참석한 광주지역 교사들이 서이초 교사 죽음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피켓을 손에 들고 있다. 민현기 기자.
#광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전모(29·여)씨는 최근 휴직계를 제출했다. 방학기간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2학기를 준비해야 했던 전씨는 끝내 학교로 돌아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올해로 초등교사 2년차로 담임교사를 맡고 있던 전씨는 지난 5월 받아쓰기 지도를 하면서 학생이 틀린 문제에 빗금을 쳤다가 퇴근 후 학부모로부터 민원 전화를 받았다. ‘아이의 마음이 상할 수 있어 빗금이 아닌 별이나 다른 모양을 써도 되는데 교사가 그것조차 고려하지 않았냐’는 내용이었다.

또 아침에 학생이 등교하지 않아 학부모에게 연락했더니 ‘일찍 출근하는 맞벌이 부모이니, 모닝콜을 해 아이를 깨워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전씨는 “이런 내용의 전화를 학부모로부터 적어도 1주일에 한 번 이상, 많게는 2~3번씩 받다보니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아 내가 계속 교직 생활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처음으로 돌아가 고민해보려고 한다”고 휴직 이유를 밝혔다.

#전남에서 5년째 초등교사를 맡고있는 박모(35)씨가 바라본 교육현장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더 차가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해 박씨는 수업 중에 교과서를 놓고 온 한 학생에게 교실 뒷편으로 가서 서 있으라고 지시했는데 그날 오후 학부모로부터 ‘학생의 학습권’을 생각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지난 4월에는 수업시간이 시작됐음에도 사용을 멈추지 않고 있는 학생의 휴대전화를 뺏었다가 수업이 끝난 뒤 돌려줬고, 그날도 어김없이 학부모로부터 ‘학생의 인권’을 생각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박씨는 “날이 갈수록 교사로서 교실의 수업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며 “과연 내가 이 교실에 필요한 존재인가 싶다”고 호소했다.

● “제도 마련됐지만 조치 어려워”

지난해 7월 발생한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교권보호 5법’이 만들어져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현장 교사들은 여전히 교육활동 침해를 겪고 있다며 분노와 설움을 호소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부터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하고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제정하며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국회에서는 교권보호 5법(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교원지위법·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을 지난해 9월 1일 통과시켰다.

교권보호 5법이 생기면서 교육현장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됐던 것은 ‘학생 분리’ 조치가 가능해진 것과 ‘민원대응팀’이 생긴다는 것이다.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교사가 판단할 경우, 수업 방해 학생을 교실 안팎으로 분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교육현장은 아무런 변화나 개선 없이 ‘참아내기’를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 교사들은 제도는 만들어졌지만 현실에서 이를 적용할 여건은 마련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3일 광주·전남 지역 초등교사 10명에게 물어본 결과, 이들 모두 지난해부터 학생 분리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직 활용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답했다. 분리하면 학생을 어디로 보낼 지, 따로 나와있는 학생을 누가 맡을지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적도 없고, 분리 조치를 할 경우 보호자에게 통보해야 하는데 이후에 쏟아질 민원이 두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 교사 상대 흉기난동 속수무책

새롭게 생긴 민원대응팀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교육부는 학교 대부분에 민원대응팀이 마련됐다는 취지로 발표했지만, 민원에 대응할 새로운 인력이 투입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업무를 하는 교사들로 꾸려진 팀이다 보니 이렇다 할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특히 현장의 교사들은 지난 6월 광주 북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교사를 상대로 흉기난동을 벌인 사건을 두고 “여전히 교사의 인권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당시 해당 중학교의 책임자로 현장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할 교장은 “경찰에 신고하라”는 대답만 내놨을 뿐 사건 발생 2시간이 지난뒤에야 나타났고, 2시간여 동안 이 학교 교사들은 아무런 보호조치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교사들은 교장과 교감을 교체해달라는 내용의 연서명을 교육청에 제출했고, 교육청은 9월 인사이동에서 전보발령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청은 지난 1일 해당 학교 교장이 발령된 지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아 규정상 불가하다고 말을 바꿨다.

● 교사 퇴직자·교대생 자퇴 늘어

교사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설문조사에도 반영됐다. 교사노동조합연맹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6개 교원단체와 조국혁신당 강경숙의원실이 교사 59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민원 창구가 일원화 됐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은 29.3%에 그쳤다. 또 교육활동 침해 우려로 분리된 학생에 대해 전문적 지도가 이뤄졌냐는 질문에는 11.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장에서는 ‘교직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최근 5년(2019~2023)간 명예퇴직을 신청한 초등교사는 2019년 18명, 2020년 20명, 2021년 26명, 2022년 29명, 2023년 35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23년에는 전체 퇴직 중 명예퇴직자가 60%를 넘기며 정년퇴직자보다 앞서기도 했다

교권 추락과 낮은 임금 등 ‘교사’의 직업 만족도가 떨어지자 ‘교육대학 인기’도 옛말이 됐다. 광주교대의 중도탈락자(자퇴생)는 2019년과 202년에 32명, 2021년에는 31명에 그쳤지만, 2022년 36명, 2023년에 47명으로 큰폭으로 증가해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박삼원 광주교사노조 위원장은 “일반 회사에서 직원들의 안전이나 인권을 위협받으면 회사 대표나 사장이 처벌받는 것과 달리 교권침해 현장에선 우리의 안전을 스스로 도모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면서 “교권 보호를 위한 법안이 마련돼도 행정이나 학교장의 적극적인 대응이 없다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민현기 기자 hyunki.mi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