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역사관’ 논란…사상 초유 광복절 기념식 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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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친일 역사관’ 논란…사상 초유 광복절 기념식 파행
독립기념관장·한국학연구원장 등
‘친일성향’ 뉴라이트계 임명 반발
항일단체연합회·야당 불참 선언
“민족 자주·독립정신 훼손 우려”
  • 입력 : 2024. 08.13(화) 18:30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 광주·전남지역 103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13일 제7회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을 앞두고 광주시의회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대일본 저자세 외교 중단 및 친일 역사 쿠데타 등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나건호 기자
제79주년 광복절을 이틀 앞둔 가운데, 정부가 인선한 3대 역사기관장을 둘러싸고 친일 사대성향을 가진 ‘뉴라이트 논란’이 일면서 사상 초유의 ‘반쪽짜리 기념식’ 등 파행이 일고 있다. 야당·광복회 등은 ‘뉴라이트 계열 인사 임명 철회’를 촉구하고 있지만, 해당 기관장들은 “‘마녀사냥 인민재판’을 멈추라”며 사퇴 불가 입장을 밝혔다.

13일 국가보훈부 등에 따르면 김형석 대한민국역사와미래재단 이사장이 지난 8일 독립기념관장에 취임했다. 후보 심사에 참여한 이종찬 광복회장이 김 관장의 ‘뉴라이트 역사관’을 지적하며 임명 중단을 촉구한 지 사흘 만이다.

앞서 김 관장은 지난해 12월 ‘자유민주를 위한 국민운동’ 행사에서 “대한민국 광복절이 1945년 8월 15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역사를 잘 모르는 것”이라며 “진정한 광복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라고 밝혀 비판을 받았다.

이에 광복회와 25개 독립운동가 선양단체로 구성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회(항단연)는 즉각 반박문을 내고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독립기념관이 독립운동 역사를 감추고 부정하는 곳인가”라며 “15일 기념식은 자체적으로 거행할 것”이라고 강경대응했다.

민주당·조국혁신당 등 야권도 지난 12일 같은 이유로 기념식 불참을 선언했다. 이들은 “역사와 정체성을 부정하는 종일주의자에게 단 한 푼의 국민 혈세도 지원할 수 없다”며 “‘친일파로 매도된 인사들의 명예회복에 앞장서겠다’, ‘1945년 8월 15일은 광복절이 아니다’, ‘일제시대에 우리 국민은 일본 신민이었다’고 한 사람이 어떻게 독립기념관장이 될 수 있나”고 비판했다.

3·1절, 제헌절, 개천절, 한글날과 함께 5대 국경일로 꼽히는 광복절 행사에 독립유공자·야당 등이 참여하지 않는 것은 사상 최초다. 이같은 전대미문 사태가 발생한 까닭은 정부가 독립기념관장 인선 이전부터 역사·교육 기관에 뉴라이트 인사를 꾸준히 기용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항일 독립운동 역사를 부정하고, 이승만 독재를 미화하며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는 단체를 뜻한다. 2005년 창립된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대표적이다.

논란의 신호탄을 쏜 건 2022년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이 임명되면서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기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집필에 참여하고,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이 한창이던 2013년 국정원을 지지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해 비판을 받았다.

이어 △김주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박근혜 정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참여) △허동현 국사편찬위원장(박근혜 정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참여)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반일 종족주의’ 공저자) 등도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 임명 사례로 꼽힌다.

지난 1월 취임한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일본이 과거에 대해 사죄하지 않는다’는 기성세대의 인식을 젊은 세대에 강요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뉴라이트 성향의 책 ‘해방전후사의 재인식(2006)’의 공동 저자다.

이런 가운데 집단 반발의 촉매제가 됐던 독립기념관이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기념관에서 개최하지 않는다”고 밝혀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독립기념관은 그동안 정부 주관 광복절 경축식과 별도로 매년 자체 경축식을 해왔다. 코로나19가 확산되던 2021년에도 광복절 경축식은 비대면 행사로 진행됐다. 행사가 아예 개최되지 않는 건 1987년 개관 이래 올해가 처음이다. 취소된 광복절 경축식은 충남 홍성 내포 신도시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김형석 관장은 “올해 기념행사는 충남도에서 하겠다고 해 취소했다. 나와 관련된 바 없다”며 “광복회·야당에서 ‘친일’ 등으로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데, 살면서 한 번도 독립운동을 폄훼·비방한 적 없다. 스스로 사퇴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사회·역사학자들은 ‘임명된 기관장들은 학자로서 양심을 버렸다’며 편향적 사고를 가진 인선에 우려를 표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사편찬의 의미·역할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이 국사편찬위원장을 맡고, 독립운동을 부정했던 인물이 독립기념관장을 맡았다. 이들은 학자로서 양심을 잃은 것인가”라며 “뉴라이트들이 자신의 학문적 소신과 무관한 국가기관을 평정했다. 전문성이 없는 인물로 인해 민족 자주·독립 정신의 근간이 흔들릴까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독립기념관 광복절 경축식 취소 안내문.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갈무리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