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 이야기 >온갖 시름 다 잊게~ 대나무 숲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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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 이야기 >온갖 시름 다 잊게~ 대나무 숲서 놀자
담양 향교마을
공원으로 꾸며진 대숲 '죽녹원'
죽마고우길 등 대숲 산책길
참빗 주산지 담양 향교리
소수 참빗장이 명맥 이어
  • 입력 : 2024. 07.25(목) 18:44
  •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담양군 향교리에 위치한 죽녹원 대나무숲
‘담양’하면 대나무, ‘대나무’하면 죽녹원이 먼저 떠오른다. 죽녹원은 공원으로 꾸며진 대숲이다. 하늘이라도 찌를 것처럼 쭈욱- 뻗은 대나무를 보면 눈이 후련해진다. 대나무의 맑고 청신한 기운도 마음속까지 상쾌하게 해준다. 댓잎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나직하게 들려주는 연주음도 감미롭다.

대숲에서 즐기는 죽림욕도 좋다. 온갖 시름 다 잊게 한다. 피를 맑게 하고, 공기를 정화시켜주는 음이온 덕분이다. 실제 대숲의 체감온도가 숲밖보다 4∼7℃ 낮다. 대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한 것도 이런 연유다.

대숲에서 이슬을 먹고 자라는 죽로차도 호사를 안겨준다. 운수대통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죽마고우길로 이름 붙은 대숲 산책길도 호젓하다. 언제라도, 누구랑 가더라도 좋은 대숲이다. 혼자 사색하기에도 그만이다.

‘대숲으로 간다/ 대숲으로 간다/ 한사코 성근 대숲으로 간다// 자욱한 밤안개에 벌레소리 젖어 흐르고/ 벌레소리에 푸른 달빛이 베어 흐르고// 대숲은 좋아라/ 싱글어 좋더라/ 한사코 서러워 대숲은 좋더라// 꽃가루 날리듯 흥근히 드는 달빛에/ 기척 없이 서서 나도 대같이 살거나’

신석정의 시 ‘대숲에 서서’다. 달 밝은 날, 벌레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대숲으로 부르는 글이다.

그대(竹)를 품은 마을이 향교리(鄕校里)다. 죽녹원을 가운데에 두고 마을이 양쪽으로 자리하고 있다. 전남도 담양군 담양읍에 속한다. 짐작대로 향교가 자리한 마을이다. 의암서원이 있었고, 지금도 담양향교가 있다.

향교리는 광동, 취영, 향교 등으로 이뤄져 있다. 취영의 본디 지명은 ‘서원내’였다. 옛 의암서원이 있던 곳이다. 1607년 들어선 의암서원은 미암 유희춘의 위패를 모셨다. 사액서원이 됐지만,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헐렸다. ‘취영(取英)’에는 서원에서 많은 인재가 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아낙네들이 두레박으로 물을 긷고 빨래하던 공동우물도 마을에 있었다.

서원과 우물은 사라졌지만, 향교리엔 보고 즐길거리가 많다. 죽녹원 외에 담양향교, 대담미술관, 전남도립대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담양향교는 1398년 처음 세워졌다고 전한다. 경사가 심한 산자락을 5단으로 다듬어 건축물을 배치했다. 명륜당을 앞에, 대성전을 뒤에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를 하고 있다.

학문을 장려한 옛 부사, 군수 등 수령을 기리는 흥학비(興學碑)도 줄지어 있다. 진분홍 배롱나무꽃과 어우러진 비석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부용화, 무궁화가 한데 버무려진 돌담과 집도 아름답다.

향교리는 참빗 주산지였다. 참빗을 구하려는 행상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중국, 몽고까지 판매가 이뤄졌다. 남북 분단으로 판로가 줄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플라스틱 빗이 나오면서 시나브로 자취를 감췄다.

참빗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생필품이었다. 집집마다 몇 개씩 두고 살았다. 누이의 혼수품에도 포함됐다. 지금은 국가무
담양군 향교리는 참빗 주산지로 1970년대 까지 생필품에 해당됐다
형유산으로 지정된 참빗장이 명맥을 잇고 있다.

교육프로그램 부문 ‘올해의 박물관·미술관상’을 받은 대담미술관도 마을에 있다. 숲과 교육을 버무린 ‘포레듀케이션(Forest+Education)’으로 상을 받았다. 죽녹원과 공예품, 건축, 디자인을 접목한 프로그램이다. 미술관은 레지던시 창작활동, 유명작가 초청 전시, 담양의 사계 파사드 전시 등을 해오고 있다. 2010년 문을 열었다.

마을의 담장벽화는 ‘지붕 없는 미술관’이다. 요즘 흔히 만나는 벽화가 아니다. 담장 지형과 지물을 그대로 활용했다. 그림이 작고, 귀엽고, 앙증맞다. 그림도 부러 숨겨놓은 것처럼, 뜻밖의 장소에 그려져 있다.

지붕을 타고 내려온 빗물관에 개구리 한 마리가 달라붙어 있다. 그 앞으로 거미가 줄을 타고 내려온다. 거미한테 말풍선 하나 달려있다. OMG, 오마이갓이다. 거미의 절규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벽에 붙은 전기계량기엔 번개와 부엉이가 그려져 있다. 전봇대에는 개미가 기어오르는 모습이 그려졌다. 담장 아래 배수로 구멍은 고양이의 입이 됐다. 입 벌린 고양이를 향해 가는 쥐 무리가 웃음 짓게 한다. 담 아래 작은 돌을 이용한 등산 풍경도 재밌다. 국수 그림과 함께 쓴 시 ‘국수가 먹고 싶다’도 정겹다. 몽당연필 그림과 함께 쓴 이해인의 시 ‘몽당연필’도 애틋하다.

하나같이 유머와 재치가 묻어난다. 그림으로 표현된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구성이 기발하고,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무심코 걷다 보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숨은 그림 찾듯이 봐야 한다.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우리 마을만의 벽화를 그리고 싶었고, 포인트를 찾은 거죠. 지형지물을 그대로 이용한, 이른바 포인트 벽화입니다.”

벽화를 기획한 당시 이장 강기섭 씨의 말이다. 강 씨는 광주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향교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마을이 단장되자 외지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화가, 도예가, 공예가 등이 터를 잡고 둥지를 틀었다. 죽녹원을 찾은 여행객들 발길도 마을로 이어지고 있다. 죽순빵, 죽순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도 생겨났다.

죽순빵은 현미에다 죽순과 댓잎 분말, 흑임자를 반죽해 굽는다. 밀가루는 일절 넣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은 국산쌀가루와 댓잎 추출물, 블루베리 원액을 넣어 만든다. 여행객들이 좋아한다. 담양 농산물 소비에도 다소 보탬이 된다. 주민들이 반기는
공원형태로 꾸며진 담양 죽녹원
건 당연한 일. 마을도 덩달아 활기를 띠고 있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