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비장애도 아닌 '경계선 지능인' 범죄피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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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장애·비장애도 아닌 '경계선 지능인' 범죄피해 우려
평균보다 낮은 지능…전체 14% ||학습·인지능력 저하 적응 못해 ||성폭행·성매매 등 무방비 노출 ||시·도 ‘교육지원조례’ 유명무실 ||“자립 지원 등 사회 참여 도와야”
  • 입력 : 2022. 10.04(화) 16:36
  • 강주비 인턴기자

조희연(오른쪽) 서울시교육감과 문용린 대교문화재단 이사장이 2020년 7월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경계선 지능 학생의 학습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뉴시스

A(18)씨는 어렸을 땐 그저 '조금 느린 아이'였었다. 그런데 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인생이 달라졌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학습에 뒤처졌고 말과 행동이 둔하다는 이유로 급우들에게 무시당하고 돈까지 빼앗겼다.

타인과의 소통도 갈수록 힘들어졌다. 말의 의도나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어려웠다. 한번은 헬스장에서 본인 것과 비슷한 다른 사람의 운동화를 실수로 가져갔다가 상황 설명을 하지 못해 '도둑'으로 몰린 적도 있었다.

A씨의 어머니는 "지금은 학생이라 친구나 선생님의 배려를 받을 수 있고 훈련도 가능하지만,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울먹였다.

'늦된 아이', '조금 모자란 애', '학습 부진아' A씨처럼 오랜 시간 명확한 이름 없이 사회 한 켠에서 떠돌던 이들이 있다. 바로 '경계선 지능인'이다.

'경계선 지능인'이란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로 지적 장애 수준은 아니지만 평균보다 낮은 지능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보통 지능지수(IQ) 70~85 사이에 있다. 외적으로는 비장애인과 구분되지 않지만, 학습·인지 능력이 떨어지고 사회성이 부족해 장애인 만큼 수많은 '불편'을 겪는다.

전문가들은 지능검사 정규분포 곡선 등을 근거로 전체 인구의 약 14%가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광주 인구 143만여명 중 약 20만명이 경계선 지능인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보호할 방법은 전무하다.

경계선 지능인의 경우 장애인과 달리 발굴이 힘들기 때문이다. 장애 등록이 되지 않으니 현황 파악이 불가능하고, 복지 혜택도 없다.

또 사회적 인식이 높지 않은 탓에 가정이나 학교에서조차 단순 '학습 부진아' 정도로만 치부된다. 결국, 경계선 지능인들 상당수가 보호는커녕 사회 부적응자나 범죄 피해의 대상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여성에게는 더욱 위험한 상황을 유발한다.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경계성 지능인 여성의 성폭력 피해를 연구한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이 2020년 발표한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의 성폭력·성매매 피해 예방방안'에 따르면, 경계성 지능인 여성의 성폭력·성매매 피해는 현실에서 아주 빈번하게 존재하지만 이들에 대한 제도적 보호·지원 장치는 부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예로 5년 전 경계선 지능인 B(13)씨가 가출한 뒤 채팅앱에 '재워주실 분 구한다'는 글을 올렸고, 이를 보고 접근한 남성 7명에게 그루밍 성폭행을 당했다. 그러나 법원은 B씨가 직접 채팅방을 개설하고 남성들에게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성매매' 판결을 냈다.

박현숙 경계선지능연구소장은 "경계선 지능인은 언어 처리 능력이 떨어져 상대방의 말을 오해석하거나 나쁜 의도가 있어도 잘 알아채지 못한다. 때문에 사기, 성폭력 등 다양한 범죄에 노출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자자체의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광주시는 지난해 6월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 조례'를 만들었고, 전남도에서는 2016년 '천천히 배우는 학생 교육지원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조례 문구가 강제성 없는 '~할 수 있다'에 그쳐 실질적인 서비스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인식 확대와 더불어 편부모, 저소득층 등에 속한 경계선 지능인을 고려한 생애주기별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배은경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관련 인식 교육이나 캠페인을 통해 가정·학교 등에서 이들을 조기 발견해 도움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경계선 지능인 중에서도 보육원 등에서 자라 성장기에 적절한 자극이나 관리를 받지 못한 아이들은 지적 장애 수준으로 악화되기도 한다. 따라서 전 생애 주기에 걸친 연령별 구체적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이들을 경계선 지능인의 자립을 위한 센터 등을 설립해 사회 참여를 도와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해 6월 시행된 광주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 조례'.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제공

강주비 인턴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