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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평생 삼베만 짰지만 후회 없어… 전수자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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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평생 삼베만 짰지만 후회 없어… 전수자 나왔으면"

보성읍 방축마을서 3대째 삼베·수의 제작 박영남 명인
보성삼베·수의 제작만 50년째
국내 유일 ‘보성포’ 기술 보유
저가 중국산 밀려 명맥만 유지
“보성삼베 활성화·대중화 절실”
전남여성가족재단 프로젝트
여성생애구술사 내달 마무리

게재 2022-09-07 11:26:20
삼베명인 박영남씨가 전통방식으로 수의를 만들고 있다.
삼베명인 박영남씨가 전통방식으로 수의를 만들고 있다.

"평생 삼베만 짰지만 후회되는 순간은 없지요. 삼베가 아들, 딸 대학도 다 보내줬고 빚으로 힘들었던 시절도 삼베로 일어설 수 있었으니께."

보성군 보성읍 방축마을. 보성삼베특산단지이기도 한 이 곳에서 50년째 삼베 원단과 수의를 만드는 박영남씨(69)를 만났다.

●3대 걸쳐 삼베·수의제작 배워

삼베의 고장인 보성에서 태어난 박씨는 증조할머니부터 할머니, 어머니까지 3대에 걸쳐 어깨너머로 삼베 원단과 수의를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결혼 후 시어머니로부터 삼베는 물론 수의도 옛 방식 그대로 만드는 법까지 이어받은 그는 어느새 50년째 보성삼베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유일한 기술자가 됐다.

박씨는 "과거에는 대부분 삼베의 원료가 되는 마를 파종하고 수확해 삼베를 만드는 모든 과정을 직접 했다"며 "제가 보고자란 세 분도 그렇게 했고 시어머니의 경우 베틀을 이용해 삼베 짜는 기술과 수의제작에 탁월한 기술을 갖고 있어서 상인들도 삼베는 아예 보지도 않고 시어머니 이름만 듣고도 물건을 구입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 명성은 며느리인 내가 이어 받았다. 삼베가 팔리지 않아 고민인 주민들의 물건을 시장에 들고나가 내가 만든 것이라고 하면 보지도 않고 사가는 사람도 많았다. 물론 보성삼베만이 갖고 있는 높은 품질도 한몫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박영남씨는 친정과 시가에서 이어받은 전통기술을 통해 각종 베짜기 경연대회와 삼베 품평회 등을 휩쓸었다.
박영남씨는 친정과 시가에서 이어받은 전통기술을 통해 각종 베짜기 경연대회와 삼베 품평회 등을 휩쓸었다.

●베짜기 경연·삼베품평회 수상 석권

박씨는 친정과 시가에서 이어받은 전통기술을 통해 각종 베짜기 경연대회와 삼베 품평회 등을 휩쓸었다. 생계를 위해 학업도 포기한 채 베틀을 잡았지만 단 한순간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어릴 적 가난 때문에 잡게 된 베틀이었지만 아쉬움은 있어도 원망은 없다. 삼베를 한 덕에 자식들 대학 등록금도 마련했고 빚보증으로 넘어졌던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며 "삼베가 없던 삶은 어땠을까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이제는 삼베가 곧 나이며 내가 곧 삼베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보성삼베는 박씨가 처음 베를 짜기 시작했던 시기인 1960~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보성에서만 1000여 농가가 삼베 제작에 나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화학섬유 등장과 고령화, 고된 작업으로 명성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박씨가 사는 방축마을 역시 20~30년 전만 해도 주민 80%가 삼베를 제작했지만 지금은 박씨가 유일한 전수자다.

보성삼베는 다른 삼베와 달리 마가 사람 키보다 훨씬 크게 자라 실을 만들 때 매듭이 줄어 더 촘촘하게 짤 수 있고 실도 굵어 통풍이 잘되고 땀을 흘려도 달라붙지 않으며 강도도 10배 이상 강해 '명품 삼베'로 알려졌다.

명품 삼베로 짜여진 수의는 전국적인 명성을 타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문이 쇄도했으나 지금은 저가 중국산 삼베에 밀려 명맥만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박영남씨. 전남여성가족재단 제공
박영남씨. 전남여성가족재단 제공

박씨는 "보성은 옛날부터 전국 대표 삼베의 고장으로 품질 또한 뛰어나 조선시대 때 '보성포'로 불릴 만큼 유명했다"며 "보성삼베는 100년이 지나도 특유의 노란빛이 안 변할 정도로 내구성이 좋다. 하지만 절반도 못 미치는 가격에 팔리는 중국산이 들어오면서 판매량이 뚝 떨어졌다"고 아쉬워 했다.

●남해포·안동포 견주는 '보성포' 전승 했으면

보성삼베 한 벌을 만들기까지는 고된 작업이 이어진다. 대마(삼)를 수확해 실을 만들고 베를 짜는 과정 전체가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있다. 베를 세는 단위는 '필'인데 보성삼베는 보통 폭 34~35㎝, 길이 12m를 한필로 친다. 이 한필을 짓는 데 5시간이 소요된다. 한 벌의 수의에 들어가는 원단이 8필 정도니 원단 만드는 데만 꼬박 40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이후 재단·바느질 등으로 10시간 이상 한자리에서 일한다. 수의 한 벌을 만드는 데만 꼬박 이틀의 시간이 들어간다.

시쳇말로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 들어가는 희생도나 위험에 비해 적은 성과 때문에 삼베를 제작하려는 사람도 이를 배우려는 사람도 없는 실정이다.

박씨는 "보성삼베 짜는 법과 수의(壽衣) 만드는 전통기술 전승의 맥이 끊길까 봐 걱정 된다"며 "보성포와 견주는 남해포와 안동포만 해도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그 명맥을 유지시켜주고 있는데 보성군은 아직까지 그런 움직임은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지원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명맥을 이어 갈, 보성삼베와 수의 제작 전체 과정을 이해하고 전수할 수 있는 이가 한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램 뿐"이라며 "전통 삼베·수의 제작 기술이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책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박영남씨가 완성된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보성군 제공
박영남씨가 완성된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보성군 제공

●후진 양성·명맥유지에 관심 가져주길

보성삼베는 조선시대부터 보성포라 불렸을 만큼 지역을 대표하는 토산품이다. 지리적 표시 제45호로 등록돼 있다.

하지만 명성에 비해 후진 양성을 위한 지원과 명맥 유지를 위한 사업은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경북 안동군만 하더라도 지난 2005년 안동포타운을 조성한 바 있다. 안동군은 안동포타운을 통해 디자인 전문 인력 양성을 이어가고 있다. 안동포타운 체험관을 운영해 전통 직조 삼베실 만들기, 미니 베틀 체험 등 안동포의 보편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영남씨는 "안동군이나 경남 남해시 수준의 지원을 바라지는 않는다. 한 때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보성포가 현재진행형이 아닌 과거형으로, 내 대에서 끝나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라며 "보성삼베의 명맥이 이어나갈 수만 있다면 나 역시 당장 발벗고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남여성가족재단은 박영남씨를 비롯한 송순남씨, 박종례씨 등 보성지역 여성들의 기록되지 못한 삶을 조명하고 역사로 남긴다. 전남여성생애구술사 스토리북과 영상생애구술사는 10월 말 전남여성가족재단 홈페이지와 유튜브 공식 채널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