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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실 없으니 건물 밖 벤치에 앉아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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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실 없으니 건물 밖 벤치에 앉아 쉽니다"

사업장 휴게실 의무화 사각지대
20인 미만 사업장은 대상 제외
광주·전남 20인 미만인 곳 97%
노동자들 휴게권 보장 못 받아
민노총 “현실성 없는 정부 정책”

게재 2022-08-18 16:01:44
18일 오전 광주 광산구 오선동 금속 제조업 작업장에서 근로자들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민주노총 광주본부 금속노동조합 제공
18일 오전 광주 광산구 오선동 금속 제조업 작업장에서 근로자들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민주노총 광주본부 금속노동조합 제공

광주에서 일하는 금속 제조 노동자 A씨는 쉬는 시간이 되자 밖으로 향했다.

그가 찾은 곳은 건물 외곽에 놓여 있는 '벤치'. 조금이라도 걸음을 늦추는 날에는 어김없이 자리가 다 찬다.

"직원이 27명인데 휴게 공간이라고는 4인용 벤치 4개가 전부입니다. 절반 가까이는 벤치에 앉지도 못해서 자재나 파레트 위에 앉아서 쉽니다. 사실 '쉰다'기 보단 '잠깐 앉아 있는다'는 표현이 적절하죠."

A씨는 광주 대부분의 공장 노동 현장이 '건물 밖 벤치'로 휴게실을 대신하고 있으며, 다른 지역도 비슷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노동자의 열악한 휴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18일부터 사업장에 휴게실 설치를 의무화하기로 했지만 갈길이 멀어도 너무 멀다는 지적이다.

18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이날부터 모든 사업장에 대한 휴게시설 설치가 의무화된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상시근로자 20인 이상 사업장과 △전화 상담원 △돌봄서비스 종사원 △텔레마케터 △배달원 △청소원·환경미화원 △아파트경비원 △건물경비원 등 7개 직종의 근로자를 2인 이상 사용하는 10인 이상 사업장의 사업주는 휴게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상시근로자 20명 이상 50명 미만 사업장은 1년 유예) 휴게시설 미설치 시에는 1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20인 이상'이라는 조건이다. 국내 사업체의 대부분이 2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적용 대상이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광주 광산구 오선동에 위치한 금속 제조 작업장 구석에 휴게용 벤치가 설치돼 있다. 민주노총 광주본부 금속노동조합 제공
광주 광산구 오선동에 위치한 금속 제조 작업장 구석에 휴게용 벤치가 설치돼 있다. 민주노총 광주본부 금속노동조합 제공

통계청의 '사업장 규모별 적용인구 현황'에 따르면 2020년 기준 20인 미만 사업장은 약 180만개로 전체 사업장의 93%에 달한다. 광주·전남의 경우 2020년 기준 전체 사업장 17만85개 중 20인 미만 사업장이 16만5988개로 무려 97%를 차지한다. 사업장 10개 중 9개가 의무 적용 대상에서 벗어난 셈이다.

이러한 제도의 허점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지난 6월 발표한 '전국 산업단지 노동자 휴게권 실태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해당 조사에서 2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58.2%가 '휴게실이 없다'고 응답한 반면, 300명 이상 사업장은 23.6%만이 '휴게시설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는 사업장의 규모가 작을수록 노동자의 휴게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제도는 오히려 소규모 사업장을 배제하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박성진 민주노총 광주본부 부본부장은 "의무 적용 대상을 사업장 규모로 차등을 두는 것은 소규모 사업장을 차별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노동자의 쉴 권리를 보장한다'는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18일 오전 광주 광산구 오선동 금속 제조업 작업장에서 근로자들이 자재 운반 카트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민주노총 광주본부 금속노동조합 제공
18일 오전 광주 광산구 오선동 금속 제조업 작업장에서 근로자들이 자재 운반 카트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민주노총 광주본부 금속노동조합 제공

설치 기준도 논란이다. 개정안은 휴게실의 최소 면적, 위치 등을 '휴게시설 설치·관리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휴게실 최소 면적은 6㎡ 이상이어야 하는데, 평수로 따지면 2평도 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엔 턱없이 작다.

위치 또한 '근로자가 이용하기 편리하고 가까운 곳'이라고만 명시돼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모든 것을 '노·사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박 부본부장은 "규모가 작은 사업장은 노동자들이 사측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라 최소 면적도 보장할 수 없다. 2평이 아닌 1평으로 만들어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라면서 "적용 대상 및 최소 면적을 늘리고 남녀 휴게실 구분 등 노동자들의 쉴 권리를 확실히 보장할 수 있게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선익 노무사는 "광주·전남은 다른 지역에 비해 영세업자가 많다. 지금도 '사업주가 휴게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신고가 많이 들어오는데, (휴게실 의무화) 법이 시행되고 나면 이러한 신고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광주·전남은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생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조 노무사는 이어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재정, 공간 등 휴게실 설치에 대한 현실적 한계들이 많은데 이 부분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면서 "정부가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설치 비용 등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