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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민주주의의 슬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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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민주주의의 슬픈 자화상

게재 2022-06-23 16:40:23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를 대표하는 용어다. 지난 1991년 재출범된 이래로 31년이 지났다. 그동안 광주에서만 9차례 지방의원을 선출했다.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며, 지역일꾼을 자처하며 나선 이들이다. 9차례에 걸쳐 선출했으니 그동안 배출된 지방의원의 숫자도 어마어마할 터다.

현실은 암담하다. 광주시민 10명 중 7명이 지방의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현실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이 내놓은 '지방의회에 대한 광주시 유권자 인식 조사 결과'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엠브레인퍼블릭'이 광주 거주 18세 이상 남여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 조사는 지방선거가 직후인 6월2일부터 4일까지 3일 동안 이뤄졌다.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지방의원의 의정활동 내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10명 중 7명이 '지방의회 의원 활동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52.6%가 '별로 알지 못한다'고 답했고, 17.3%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알지 못한다'고 답한 이들이 꼽은 이유는 '의정활동에 대한 뚜렷한 성과가 없어서(26.4%)'와 '시민들이 의정활동 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워서(25.6%)' 등이 많았다.

지방의원들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이다. '청렴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40.2%가 '전혀 청렴하지 못하다'거나 '청렴하지 않은 편'이라고 답했다. 34.8%가 '역량과 자질'이 매우 낮거나 낮다고 답하기도 했다. 27.7%는 지방의원이 '권력화돼 있다'고도 했다.

시민들이 지방의원에 던지는 메시지도 아프다. "하나같이 자리 꿰차고 각종 비리와 축재에 연루되는 모습을 번번이 접하면서 한숨만 나온다"다는 이도 있었고, "의원들은 결코 벼슬이 아니다. 그저 주민을 대표하는 한 지역민일 뿐이라는 걸 명심해 달라"고 한 이도 있었다. 시민들 눈에 비친 지방의원들 모습이다.

"많이 실망스럽고 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찍은 느낌. 자질은 아예 없는 듯하다"는 이의 말도 가슴 아프다. "투표할 때만 입에 바른 소리 하고 당선 후엔 망나니로 변할 때 후회한다"고도 했고, "공약이 부실하거나 현실성 없는 경우가 많아서 아쉬웠다. 지역사회의 현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는 지적도 있다.

지방자치 부활 31년, 우리의 슬픈 현주소다.

아픈 현실이 또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후배의 이야기다. 녹색당 간판을 달고 광주 남구의원에 도전했던 박고형준이다. 그는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상임활동가이기도 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후배지만, 그를 안 지도 벌써 15년이 훌쩍 넘었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녹색당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지켰다. 출마를 알리는 기자회견장에는 재활용 천에 실로 한땀 한땀 글을 떠 만든 펼침막을 내걸었다. 흔한 유세 자동차도 그에게는 없었다. 텃밭을 실은 전기자전거를 타고 그는 주민들을 만났다. '미니 텃밭 친환경 유세 자전거'다. '자꾸 미니 텃밭 식물들이 없어져 고민이다'는 그의 마음이 담겼다. 선거운동원들과 함께 푸른길 공원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유세 활동을 했다. 재활용이 어려운 비닐 용지 대신 재생 용지 공보물을 만들었고, 자원순환 물품으로 선거사무소를 만드는 등 '쓰레기 최소화'를 했다. 출마한 지역에 비록 100명에 불과한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 공보물도 만들었다. 선거운동 기간 정치개혁을 위한 단식도 벌였고, 지역 현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정말 지역에 필요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참 일꾼'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가 받은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는 출마한 5명 중 가장 적은 표를 받았다. 득표율 '5.17%', 유효표 2만2065표 중 그는 고작 1098표를 받았다. 그의 열정적인 선거운동을 생각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성적표였다. 그의 지역구 당선인은 더불어민주당 가, 나, 다를 단 세 후보였다.

다소 충격이었다. 선거 다음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뜻한 위로의 말이라도 전하고픈 마음에서였다. 몇 번씩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할 수 없었다. 무의미한 신호음만 전해질 뿐이었다. 서너 시간 후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전에 약간 힘들었어요. 제 성격이 금방 터는 편이라 3시간이 지나니까 괜찮네요." 웃으면 건넨 말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거대 정당이 독점한 현실정치의 높은 벽이 그를 힘들게 했을 터다. "넌 충분히 멋진 모습을 보여줬어. 힘내라"며 전화를 끊었다. 마음은 불편했다. 아니 지역의 암담한 현실이 답답했다. 만약 박고형준이 더불어민주당 간판을 달고 선거에 출마했더라면, 그는 분명 최고의 득표율로 당선되지 않았을까. 그가 선거운동 기간 보여줬던 모습은 우리가 바라던 진정한 지역일꾼의 모습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질없는 상상일 뿐이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도 한 달이 돼 간다. 그러나 그 답답함은 여전하다. '10명 중 7명이 지방의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는 암담한 현실, 능력과 됨됨이보다 정당의 깃발이 당선의 기준이 돼 버린 듯한 현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탓이다. 이젠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우리가 바꿔야 하지 않을까. '헛된 꿈'이 아니길 바라는 것 뿐 할 게 별로 없다. 모두 변화를 바라는 것 같지만, 변화는 더딘 현실이다.

"정치권력은 얻지 못했지만, 늘 그래왔듯이 시민의 힘으로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현장'으로 돌아간 박고형준의 다짐,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