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유공자법 제정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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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민주유공자법 제정 서둘러야
  • 입력 : 2022. 01.20(목) 13:14
  • 홍성장 기자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강경대, 박승희…. 수없이 많은 이들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쓰러져 갔다. 현재 그들에게 국가가 부여한 지위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심의·의결된 이들이다. 모두 9844명이다. 민주화운동은 1964년 한일회담반대운동, 1969년 삼선개헌반대운동, 1979년 부마항쟁, 1987년 민주화운동, 1989년 전교조 해직사건 등이다. 법은 2000년 1월 제정됐다. 법에 따라 보상도 이뤄졌고, 명예회복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라는 호칭 부여다.

그런데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명예회복이다. 법안 역시 국가의 '자발적' 제정은 아니었다. 1998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가 국회 앞에서 422일간 농성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다.

'애매한' 명예회복에 대한 비판이 적잖다. 지난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내놓은 성명서 일부다. "지금까지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해 개인의 안위와 생명까지도 포기한 이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회피해왔다." "역사를 제대로 명명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미래도 기대할 수 없다"고도 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도 지난해 6월부터 국회 앞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7개월 넘게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엄동설한에 천막농성도 벌이고 있다. 그들이 1인 시위에 나선 이유 역시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희생된 이들이 국가유공자로 정당하게 인정받는 것'이다.

법 제정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20년의 세월이다. 16대(2000년 5월~2004년 5월29일) 국회 때부터 꾸준히 관련 법안이 제출됐다.

16대 때 당시 새천년민주당 이훈평 의원이 '민주유공자 예우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민주유공자가 광범위하다''민주화운동 보상은 국민적 합의가 중요하다' '기존 국가유공자나 단체의 반발도 고려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광주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로 수정 가결됐다.

17대 때는 당시 민주당 정봉주, 이호웅 의원이 각각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공청회만 개최됐을 뿐 그 이상의 성과는 없었다. 18대 국회에서는 유선호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민주화보상법에 의해 보상받는 것으로 국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등의 반대의견으로 법 제정은 무산됐다 19대와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상정됐지만 역시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 법안소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 들어서도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과 설훈 의원이 관련 법안을 각각 제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운동권 셀프보상'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설훈 의원은 제출한 법안을 철회했고, 우원식 의원이 제출한 법안만이 현재 소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그런데 계류 중인 법안을 살펴보면 '운동권 셀프보상'과는 거리가 멀다. 법안에 명시된 '적용 대상자'다. '민주화운동 사망자 또는 행방불명자'와 '민주화운동 부상자'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심의·결정된 이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9844명 중 829명이 대상이다. 민주유공자법이 제정되더라도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해직 등을 당한 9015명은 '민주유공자법'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럼에도 보수 진영에서는 운동권 출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들을 위한 '셀프법안'이라며 법 제정을 가로막고 있다. 그 탓에 민주유공자법은 '셀프 보상법'이라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은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이한열 열사 어머님이신 배은심 여사가 영면에 들면서 '민주유공자법'은 다시 관심을 받는다. 고인이 지난해 12월 말까지 국회의사당 앞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한 1인 시위는 물론 천막농성에 함께 했다는 소식 등이 알려지면서다. 정치권에서도 모처럼 한목소리로 '고인의 뜻'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험칙상 '반짝 관심'에 머물 공산이 크고, '의례적인' 정치 행보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지금껏 우리는 그렇게 민주주의가 빚진 고귀한 희생을 내버려 둬왔다. 그러는 사이 박종철 열사의 아버님도, 이한열 열사의 어머님도 자식의 명예회복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으셨다. 늦어도 한참이 늦었다. 더 늦기 전에 '민주화운동 관련자'라는 애매한 호칭이 아니라 '민주유공자'로 예우해야 한다. 살아남은 자,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희생되신 분들이 국가유공자로 정당하게 인정받는 것이 유가족들의 마지막 바람이다. 지금이라도 국가는 희생자들에 대한 법적, 역사적 책임을 다해 국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미래세대에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 다시금 되새겨야 할 '외침'이지 않을까. 어깨가 무거워진다.

홍성장 기자 seongjang.h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