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노안 월정마을을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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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나주 노안 월정마을을 지켜주세요"
태양광 공사, 주민들 강력 반발 ||“설치 막기 위해 어떤 일도 할것” ||市 “적법한 절차… 취소 불가능” ||환경청 “오염·침수 가능성” 발표
  • 입력 : 2022. 01.19(수) 17:24
  • 정성현 기자

지난 11일 나주 노안면 월정마을 인근 도로에서 바라본 태양광 부지 모습

"태양광이 설치되면 이 마을 자체가 죽는다고 봐야죠. 농사 망치는 건 물론이고, 고개만 살짝 돌려도 까만 패널 밭인데 누가 이 마을에 오고 싶어 할까요."

나주의 평화로운 한 농촌 마을의 주민들이 생사를 건 투쟁을 하겠다고 나섰다. 다름 아닌 대규모 태양광 발전 시설 설치 때문이다.

주민들은 무분별한 산림 훼손으로 주변 경관을 망가뜨리고 생활환경 등 기본권마저 무시당할 수 있다며 나주시에 즉각적인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지자체는 현행법상 개발을 막을 방법이 없다며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겠다"면서 마을 어귀에 수백장의 현수막을 걸고 집단 항의 중이다.

해당 장소는 나주시 노안면의 월정마을로 나주IC를 통과하고 얼마 안 가 도착할수 있는 곳이다. 넓은 밭과 푸른 나무들이 즐비한데다, 눈앞에 펼쳐진 수백 그루의 배나무들과 셀 수 없이 많은 배추들은 이 마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한적한 마을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마을 곳곳에는 '태양광 발전소 건설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빨간 현수막들이 걸려있다.

지난 11일 월정마을 입구에 주민들이 '태양광 발전소 설치 결사반대!' 현수막을 걸고 있다.

인근에서 밭일을 하던 주민 김연식(50) 씨는 태양광 사업이 주민들의 의견은 무시한 채 진행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평소와 같이 밭에 나와 일을 하고 있는데, 이웃이 대뜸 '몇 달 뒤 이 마을 대부분 부지가 태양광 단지로 바뀐다는데 알고 있었느냐'는 얘기를 했다"면서 "놀라서 알아보니, 사전에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미 모든 절차가 진행돼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고 반문했다.

이어 "태양광이 설치되는 장소는 인근 문중 땅"이라며 "'친환경 에너지'라는 이름 아래 조용한 시골마을 사람들의 삶을 이렇게 앗아가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김씨가 말한 태양광 발전소는 약 8천400kW급 규모로, 10만2000여㎡ 부지에 지어질 예정이다. 발전소 인근에는 월정마을을 비롯해 한옥마을·석정마을 두 곳이 인접해 있고, 상황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한옥마을 주민 강기홍(57) 씨는 "이곳 인근 마을들은 경사가 있는 산지에 있어 산사태나 우수에 의한 피해가 많다"며 "(공사가 진행되면) 침출수라든지 비가 와서 만들어지는 웅덩이들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지역 농사를 망치는 것은 물론, (태양광으로 인한) 전자파·중금속·지하수 오염 등 앞으로 평생 이 마을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다"고 성토했다.

월정·석정·한옥마을 인근에 지어질 태양광 부지 모습

이에 세 마을 주민들은 허가 사실을 전해 들은 작년 8월부터 최근까지 관할 지자체인 나주시에 수차례 민원·탄원서를 제기한 상태다.

전력 생산을 명분으로 태양광 시설이 들어선다면 마을 생태환경을 파괴하고, 각종 유해 물질이 농경지로 유입돼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민·탄원서의 주요 내용이다.

나주시는 '개발행위 허가 운영지침'에 따라 해당 태양광 설비 설치는 적법하다며 진행을 취소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나주시 도시과 관계자는 "해당 시설은 주거 밀집 지역과 주요 도로에서 100m 이상 이격 거리가 되는 점 등 지침에 준수해 허가했다"며 "이미 승인이 떨어진 이상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한 취소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영산강유역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에 따라 여러 위험이 제기된 만큼, 안전성 검사 등을 통해 충분히 설치를 보류·취소할 수 있다며 나주시에 주민설명회 등을 요구하고 있다.

환경청은 지난해 이 부지의 환경영향평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하 오염·침수 피해 등의 이유로 '공사 전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수렴할 수 있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 결과서는 지난해 7월 나주시청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주 도시계획 조례 제21조 개발행위허가에는 '개발행위 허가·신청 지역의 환경오염·주변 생태계 파괴·위해 발생 등이 예상된다면, 환경오염의 방지·조경·녹지의 조성 등 필요한 조치를 조건으로 하는 경우 외에는 개발을 허가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김용준 금성산 태양광발전소 반대추진위원장은 "시공사나 나주시는 사업이 계획·진행되는 동안 주민들의 의견은 단 한 번도 듣지 않았다. 환경영향평가 결과서를 받고 나서도 대화는 없었다"며 "나주시는 '주민 의견 수렴은 승인 과정의 참고용일 뿐이다', '신청자에게 주민설명회를 강요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우리는 그러면 어디에 목소리를 내야 하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어 "환경영향평가나 주민들을 통해 여러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시는 안정성 검사를 재실시하고 도시개발행위허가 조례 등을 통해 설치 승인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재검토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고 촉구했다.

환경단체 또한 태양광 농지 설치나 경관 등의 문제에 공감대를 보였다.

김종필 광주환경운동연합 국장은 "임야나 산·농지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것은 나무를 베는 등 1차적으로 환경 문제를 야기한다"며 "특히, 농민의 생계와 전원 생활을 위해 귀농·귀촌한 지역민들의 거부감 등 여러 사회적 문제와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에 무분별한 허가는 이뤄져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와 관련 시행사 측의 입장을 듣고자 여러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한편, 논란이 된 태양광 발전소의 관련 사업 허가 신청은 모두 10건으로, 5건에 해당하는 4984kW 급 발전소는 이미 승인됐으며 그보다 작은 3496kW 급 발전소에 대한 허가 5건은 현재 심사 중에 있다.

나주시 노안면 월정마을의 한 주민이 태양광 발전 부지로 허가된 배추밭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다.

정성현 기자 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