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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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리더의 품격
  • 입력 : 2021. 10.12(화) 17:00
  • 박간재 기자
박간재 전남취재부장
#흔히 칭기즈칸을 800년전 21세기를 살다간 인물로 평가한다. 그의 지도력과 리더십은 후세의 지도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어서다. 병졸들을 친혈육처럼 대했으며 자신의 가족은 전면에 나서지 못하게 했다. 적과 동지에 대한 철저한 구분과 배신자에 대한 대물림의 복수로 응징했으며 신속한 결정을 통해 실행에 옮겼다. 전쟁이건 일상이건 모범이 되고자 했다. 싸움은 이기기 위한 것이며 이기는 싸움은 시간과의 싸움으로 봤다. 병사들에게 개별 약탈을 못하게 했으며 승리 후엔 전리품을 공평하게 분배했다.

점령방식은 가혹했지만 통치는 비교적 너그러웠다. 성과와 능력중시의 분위기를 통해 유목민들을 결집시켰다. 종교와 인종을 불문하고 하나의 제국 아래 어울려 사는 진정한 지구촌의 길을 제시한 인류 최초의 인물이었다.

#예루살렘 성지탈환을 목적으로 200년 간 벌인 '십자군 전쟁(1096~1291).' 그 중 3차 전쟁에서 격돌한 두 장군의 얘기도 후세에 귀감이 되고 있다. 십자군을 이끈 영웅은 '사자왕(Lion heart·사자심왕-사자처럼 용맹함을 뜻함)'으로 불린 잉글랜드 리처드 왕(1137~1193)이었고 이슬람군을 이끈 술탄(이슬람 군주)은 살라흐 앗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 이른바 살라딘( 1138~1193년)이었다.

두 간판 스타는 적군으로 만났지만 상대를 인정하고 예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투 중 날렵하게 뛰어다니는 십자군인이 살라딘의 눈에 띄었다. 부하에게 물었다. "용맹하게 칼을 휘두르는 저 장수는 누구인가" "사자왕 리처드입니다." 리처드왕의 용맹함을 높이 산 살라딘은 그에게 명마 두마리를 보냈다. "품위를 지키면서 말 위에서 싸우십시오."

리처드 왕이 한동안 전투에서 보이지 않았다. 스파이를 보내 정탐해 보니 열병에 걸려 누워 있었다. 살라딘은 기꺼이 자신의 주치의를 보냈다. 배, 복숭아, 눈(雪)을 끊임없이 전했다. 리처드 왕의 품위를 지켜주기 위한 살라딘의 배려였다. 연일 전투에서 패배한 리처드 왕은 깨달았다. 살라딘이 있는 한 예루살렘은 절대 점령할 수 없음을. 그가 살라딘에 편지를 보냈다. "이 정도 싸움에서 타협을 합시다. 예루살렘은 당신이 지배하고 있지만 우리는 평화롭게 성지순례를 하고 싶습니다."

리처드 왕은 살라딘에 협상을 간청했고 그 결과 1192년 9월2일 양측은 3년간의 강화 조약을 체결했다. "첫째, 아크레에서 야파까지 영국 왕이 정복한 해안가 도시들은 그에게 돌아가고 아스칼론은 파괴시킨다. 둘째 무슬림과 기독교도들은 양측 영토를 자유롭게 왕래하고, 순례자들도 예루살렘 성묘를 방문할 수 있다."

살라딘은 복수하지 않고 그의 간청을 들어줬다. 살라딘은 '이슬람은 너희들과 격이 다르다'는 점을 각인 시켜줬다. 살라딘은 협상을 마친 뒤 "참으로 즐거운 날이었다. 두 백성의 헤아릴 길 없는 기쁨은 오직 신만이 아실 뿐"이라고 기뻐했다.

영국으로 돌아가던 리처드 왕은 살라딘에게 "3년 조약이 끝나면 다시 돌아와 예루살렘을 되찾고 말리라"는 전갈을 보냈다. 살라딘은 "만의 하나 그 땅을 잃게 된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리처드에게 기꺼이 잃겠노라"고 답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헤어졌고 마침내 그 땅에 평화가 찾아왔다. 이슬람군에 포로가 됐던 십자군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살라딘이 보여준 영웅담을 들려줬다. 서구에서 살라딘의 팬클럽까지 만들어졌다.

신사적인 태도로 서구 유럽에 깊은 인상을 남긴 살라딘. 리처드 왕과 살라딘의 영웅적 면모는 이후 '아이반호' '로빈후드' 등 수많은 작품으로 재탄생 했다.

역사적 사실을 따지자는 건 아니다. 전쟁 중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통큰 배짱의 지도자들의 위대함을 말하고자 함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의 난타전이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지난 10일 마침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여당 대통령 후보로 선정됐다. 탈락한 이낙연 후보측은 경선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며 반발하고 있다. 야당 역시 오는 11월5일이면 대선후보가 최종 선정된다. 여야는 물론 여여, 야야 대표간 신경전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날선 비판도 좋지만 품격을 지키며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없어 아쉽다. 그럴수록 유권자인 국민들의 냉철한 판단이 중요하다. 적어도 내 아들, 딸, 내 손자, 손녀들에게는 제대로 된 세상을 물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1973년3월21일 당시 김대중 정치인이 일본에서 행한 연설을 새겨 들었으면 한다. "후손들이 우리들의 무덤을 보고 '당신들은 왜 그렇게 못난 선조였느냐'고 하는 원망을 받지 않기 위해 내 목숨과 가족과 모든 것을 바쳐 여러분과 더불어 싸우려고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박간재 기자 kanjae.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