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농담(濃淡)이 있었지만 단군 의식이 최고조를 맞았던 때는 일제 강점기였다. 당시 등장했던 대종교는 단군 사상을 중심으로 근대적 민족 정체성을 완성했다. 일제는 조선의 정체성 말살을 위해 '국사에 열등의식 심어주기'를 가장 먼저 했다. 고대사 관련 서적을 소각시켰고, 단군사화는 단군신화로 변조시켜 조선 민족을 조상과 역사가 없는 민족으로 몰아갔다.
안타깝게도 일제의 민족혼 말살 정책에 의해 폄하된 단군의 위상은 지금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단군사화를 '단군신화'로 변조시키는데 동참했던 이병도 전 서울대 사학과 교수가 1986년 중앙지를 통해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실존이며, 우리의 국조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라는 내용의 회개문을 실었지만, 여전히 우리 국민의 대부분은 단군을 신화적 내용으로만 기억한다.
5000년간 한반도의 정신적 지주였던 단군을 단지 환인(桓因)의 서자 웅(雄)과, 짐승의 자손으로 변조한 시간은 겨우 35년에 불과했다. 그리고 일제 식민사학자와 그들 앞잡이들이 왜곡한 역사는 반세기가 훨씬 지났음에도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다.
최근 역사왜곡으로 시청자들의 뭇매를 맞고 있는 드라마 '조선구마사'와 '설강화'는 민족의 뿌리와 근간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제의 정체성 말살정책과 닮았다. '조선구마사'는 조선 태종의 시대를 '괴력난신'의 시대로, '설강화'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남자주인공을 남파된 간첩으로 설정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논란이 일자 '조선구마사'는 85% 이상 촬영이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방영 2회만에 '폐지'됐고, '설강화'는 촬영 중단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9만명이 참여했다. 일각에선 '예술적 표현의 자유 침해' 혹은 '한국 콘텐츠 산업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우리 역사와 문화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는 가운데 일반적인 문화콘텐츠 기준을 적용해선 안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은 진리이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