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분류 인건비를 택배기사가 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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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택배 분류 인건비를 택배기사가 낸다고?
분류인력 투입 등 택배업계 사회적 합의||대리점 "투입구조·비용 원점 재논의" 반박||인력 제공한 인력사무소 돈 못 받아 '울상'||노조없는 대리점 택배기사에 비용 전가도
  • 입력 : 2021. 02.21(일) 17:11
  • 최원우 기자
광주의 한 택배 분류현장에 투입된 분류인력이 택배를 분류하고 있다.
택배업계가 노사간 사회적 합의에 따라 택배 현장에 분류인력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현장은 변한 것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합의에서 '분류인력 인건비 지급에 대해 정확한 주체'가 없다 보니 택배사들이 현장 대리점에게 인건비 지급을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택배노조가 없는 지방의 몇몇 대리점은 인건비 자체를 택배기사에게 떠넘기고 있으며, 인력을 투입하며 인건비를 선지급한 인력사무소는 현장대리점이 인건비를 정산해주지 않아 자금난 발생 등 운영에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21일 택배업계와 택배기사 등에 따르면 지난 1월 생활물류발전법(이하, 생물법)이 국회에 통과됨에 따라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택배 분류작업(공짜노동)에 대한 책임을 택배사가 지고 분류인력을 추가 투입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현재 택배업계가 분류인력에 지급하는 돈은 시간 당 1만원 정도인데, 분류작업에 드는 시간을 평균 6시간이라고 보면 하루 인건비는 약 6만원이며 주 6일 근무, 4주로 계산 시 144만원의 임금이 발생한다.

합의안에는 '분류인력에 대한 인건비는 택배사가 지급하는 것'으로 돼 있다. 허나 현실은 택배사가 분류인력 인건비 전부를 지급하지 않고 대리점과 나눠서 분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CJ대한통운은 분류인력 투입으로 예상했던 비용의 50%를 대리점에 전가했다.

일부는 한술 더 떠 택배사가 30%, 대리점이 70%를 부담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이는 일선 대리점이 택배사의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을 악용한 것으로, 당연히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은 거세게 반발했고 결국 '분류인력 투입구조와 비용'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다.

한 택배 대리점 관계자는 "CJ대한통운이 분류인력을 투입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대리점에게 인력과 인건비마저 전가하고 있다. 대리점이 분류인력 비용까지 책임지게 되면 사무실 운영비, 산재보험 및 고용보험 등으로 남는 것이 없어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는 택배사와 대리점의 싸움에서 애꿎은 지역 인력사무소와 택배기사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택배사의 분류인력 대부분은 인력사무소에서 지원해준 인원들이다. 인력사무소의 경우 일용직 노동자들의 하루 인건비를 선지급하며,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선 지급된 금액을 관련 업계로부터 한꺼번에 지급 받는다.

그런데 현재 분류인력에 대한 비용 지급을 택배사와 대리점이 서로 미루는 바람에 난데없이 적자가 나고 있는 것이다.

광주지역 한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분류작업에 투입될 인력이 당장 필요하대서 일용직 노동자들을 투입 시켰고, 이들에 대한 일당을 우리가 선지급했다. 하지만 정산일 때마다 택배사에서는 자신들이 뽑은 것이 아니기에 모르쇠를 주장하고 있고, 대리점 등에서는 합의에 따라 택배사가 지급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지급을 미룰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10명만 투입해도 하루 60여 만원, 한달 1440만원이 나가는데 받아야 될 돈을 서로 미루다 보니 자금난이 발생한 상태"라며 "우리는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택배기사의 부담도 여전하다. 택배노조가 없는 일부 대리점에서는 분류인력 인건비를 택배기사들이 지급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분류작업을 마쳐야 택배기사들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어쩔 수 없이 돈을 내고 있는 것이다.

한 택배노조 간부는 취재과정에서 "광주의 경우 택배노조 활성화가 잘돼있는 편이지만, 전남 지방 곳곳의 작은 규모의 대리점에선 현재 상황을 잘 모르는 택배기사들에게 분류작업에 투입된 인원들의 인건비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며 "분류작업이 택배기사의 몫이 아닌데 월급에서 제외해 인력을 충당하라는 이 상황은 합의문과는 전혀 다른 최악의 상황이다. 이 상황에 대한 수치 등을 파악해 다음 합의에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는 지난 17일 국회에서 2차 합의를 위한 첫 회의를 열었다. '백마진' 근절과 택배요금 인상 등 거래구조 개선, 택배사와 대리점 간 분류인력 투입비용 분담 등을 논의해 오는 5월 말까지 추가 합의안을 내놓는 게 목표다.

분류작업 분과는 국토부가 실시한 연구용역 결과가 3월 23일에 나올 예정이며, 결과를 보고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최원우 기자 wonwoo.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