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황현산 선생의 시에 관한 끝없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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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황현산 선생의 시에 관한 끝없는 이야기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문예중앙' 연재글 한데 모아||이육사, 백석부터 말라르메, 발레리라까지 프랑스 시까지 해석
  • 입력 : 2020. 10.22(목) 11:05
  • 박상지 기자
황현산의 현대시 산고

황현산 | 난다 | 1만4000원





'황현산의 현대시 산고'는 2012년 여름부터 2017년 봄까지 '문예중앙'에 연재했던 글을 한데 모은 책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쓰는 글이 내 희망대로 이어지지는 않으리라는 것" "이 연재에 두서가 없으리라는 생각"부터 털어놓는 목소리는 더할 수 없이 유쾌하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던 그 말쑥한 고백과도 궤가 같다. 그에게 '명랑하기'는 윤리였다. 쓰는 이의 윤리, 선생의 명랑함으로 책머리를 열었다.

안으로는 이육사, 백석, 김수영, 김종삼, 전봉건에 이르는 한국시사의 기둥들, 밖으로는 말라르메, 아폴리네르, 발레리라는 프랑스 시의 면면까지 뻗었으니, 그 품도 폭도 참으로 넓다. 익히 알려진 시인들에게서 미처 발굴되지 못한, 가려져 있던 '비밀의 광맥'을 찾아내는 것이 선생의 특출함이다. 그는 줄곧 시인들의 변호인을 자처해왔다. 삐친 혹을 감싼다는 뜻이 아니라 감춰진 빛을 밝히고 내보이는 일이다.

황현산은 빼어난 비평가인 동시에 가장 믿을 만한 번역가이기도 했다. 아폴리네르, 보들레르, 말라르메 등 걸출한 시편들이 그의 살핌으로 우리말 새 옷을 입었다. 이 책에서도 그 도저한 식견의 한 귀퉁이를 열어보인다. '두 개의 달'에서는 아폴리네르의 '신소리', 말꼬리 하나에서 '말의 내기에 자신의 미래를 모두 걸고 있는' 시인을 발견하며, '미라보 다리의 추억'을 말할 때는 소위 '초월 번역'이라 불리는, '원문보다 더 나은 번역'이 진실된 것인가 의심한다.

한 편의 시를 번역하는 여정을 따라밟아보는 일도 새로운 즐거움이다. '시를 번역하는 일'은 말라르메의 소네트를 번역하며 세 번에 걸쳐 '실패하는' 기록이다. "결국 시는 번역될 수 없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이제까지 쓸데없이 긴 수고를 한 셈"이라며 너스레를 놓지만, 선생은 "이 실패를 통해 원문의 지속적 생명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 번역의 목적지임을 알고 있다. 그는 결코 앎을 뽐내지 않는다. 문학은 '모름'으로 참여하고, 어려움으로 '감동하는' 일이다.

신간의 제목이 '산고(散稿)'인 것은 현대시에 관한 '논문도 비평도 아닌 글'이라는 뜻일 테다. 그러나 '양쪽 모두이면서 어느 쪽도 아닌' 이기도 하다. 그의 평론집으로만 보자면 '말과 시간의 깊이' '잘 표현된 불행'에 이어 세번째에 놓이겠으나, 언제든 비평에 붙은 더께를 벗고 '시를 우리에게서 해방'시킬 태세가 돼 있다. 시의 기쁨을 알게 하고 비평의 즐거움을 깨우치는 선생의 '영검'이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