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서울의 삶 잊고… 곡성에서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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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군
"고된 서울의 삶 잊고… 곡성에서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왜 지역을 떠나고 지역을 찾을까 ||“과잉공급된 서울 벗어나도 살아가기에 충분”||“도시·지역 모두 주거문제 근본적 해결 필요”
  • 입력 : 2020. 07.23(목) 14:26
  • 곡성=박철규 기자

왼쪽부터 신지원, 김수빈씨.

2020년 맞이한 지방소멸 시대. 현재 대한민국은 오래된 지방 청년들의 도시 유출 현상으로 서울·수도권에 인적, 물적 자원 모든 것이 집중돼 과잉공급의 환경이 조성됐다. 도시인들의 삶이 지쳐가는 이유다.

광주전남연구원이 발표한 '청년 인력 유출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석 및 시사점'에 따르면 광주의 청년층 유출률은 21.2%(2019년)로 특·광역시 중 2위다. 전남 청년층 유출률 또한 22.1%(2019년)로 광역도 중 2위로 '강원도' 다음으로 높다. 지역내 청년층 유출 심화로 2018년 기준 지역경제에 미치는 손실규모만 광주는 2150억원, 전남은 1119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지역에 '젊음'이 없는 것일까. 치열한 경쟁, 쏟아지는 정보, 반복된 일과에 산 넘어 농촌의 삶은 청년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됐다. 영화 '리틀포레스트'처럼 말이다. 그리고 여기 서울에서의 삶에 지쳐 자발적으로 농촌에 내려온 청년들이 있다. 지난해 곡성 100일 살기 프로젝트 '청춘작당'을 통해 곡성으로 전입을 결심한 이들. 1기 청춘작당을 통해 13명이 이곳에 남았다.

총인구 3만명에 19~39세 청년의 숫자가 5000명이 채 안 되는 곳, 곡성에서 창업과 프리랜서의 길을 택한 김수빈(28)씨와 신지원(30)씨를 만났다.

○"평생 살아온 서울, 막상 내 공간 없더라"

김수빈씨와 신지원씨는 모두 평생 서울을 벗어나 살아본 적 없는 서울 토박이다. 보통 청년들이 그렇듯,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루에 3개씩 하기도 했고 극단 막내로 지내면서 욕심껏 잠을 줄어가며 일을 했다. 하지만 치열한 생활 만큼 삶은 풍요롭지는 않았다.

교통수단은 꽉 막힌 '지옥철'이었으며 감당이 안 되는 집값은 여전했다. 잠을 줄어가며 일한 댓가도 몸의 무리로 찾아왔다. 김수빈씨는 취업난 속에서도 여행사 취직에 성공했지만, 보수적인 회사 분위기에 지쳐갔다. 신지원씨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재능이 탁월했지만, 정규직이 아니라 프리랜서의 삶을 이어갔다.

결국, 두사람에게 서울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일이 터졌다. 김수빈씨의 아파트 담벼락이 장맛비에 집 무너진 것이다. 관계자들은 안전검사를 이유로 당장 비워달라 했다. 김수빈씨는 "캐리어에 출근할 때 필요한 것들만 싸고 근처 경로당에서 밤을 보내는데 도저히 출근을 못하겠더라"며 "다음날 연차를 내고 집을 구하는데, 터무니없이 높은 집값에 회의감이 왔다. 평생 살아온 서울인데, 완전한 내 공간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일 욕심이 많았던 신지원씨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작정 전국일주를 떠났다. 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한동안은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서 어떻게 사나'하고 생각했지만, 막상 전국을 돌아보니 사람 사는 곳이었다. 신지원씨는 "복잡한 서울로 돌아가기 싫어 부랴부랴 인터넷 검색을 했다"며 "마침 '곡성 100일 살기' 접수 마감날이더라. 신청서와 자기소개서를 준비해 제출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렇게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곡성을 찾았다. 당장 갈곳이 없었던 이들에게는 프로그램을 통해 당분간 머물 곳이 확보됐다. 이후의 삶은 천천히 고민하기로 했다. 어쩌면 도피처와 같았다.

○처음으로 가져본 '아무것도 없는 시간'

100일 동안 머문 곳은 곡성에서도 시골로 꼽히는 '강빛마을'이다. 마당이 딸린 2층 펜션 건물 5채에 2인 1실로 방을 썼다. 차 6대가 지원돼 참여자끼리 하루에 1번 정도 시간을 맞춰 읍내에 나가 일을 보기도 했다.

청춘작당 1기 참여자들이 생활했던 강빛마을.

1인당 하루에 곡성사랑상품권으로 2만원이 지급돼 생필품과 음식을 해결했다. 상품권을 아껴 읍내에 나가 머리를 하는 일도 소소한 행복이었다. '지루하다'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도 있었지만 필요한 시간이었다. 풍족하지 않았지만, 부족하지도 않았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청춘작당 운영팀에서 '곡성 상인들과 협업해 결과물을 만들어라'는 미션을 줬는데, 과정에서 곡성에 애정이 생겼다. 김수빈씨는 "대나무 캠핑장이 있는데 '이정표'를 디자인해 제작했다"며 "현실이었다면, 자격증이나 관련 경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을 이곳에서는 마음만 있으면 하게 해줬다"고 말했다.

곡성에서 '대나무 캠핑장 이정표'를 만드는 미션을 수행 중이다.

신지원씨는 "재능을 살려 '농담'이라는 지역지 1호를 만들었다"며 "계기가 돼 지금까지 한달 한번 지역 잡지가 제작되고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인데 서울에서는 등산모임, 독서모임을 하고 싶어도 다들 바빠 제안조차 미안한 상황이 많고 시간 조율이 어렵다"며 "곡성에서는 할 일이 없다 보니, 모임도 잘 유지되고 사람들과 유대감도 깊어졌다"고 말했다.

신지원씨가 곡성에서 만든 지역지 '농담' 1호. 팜앤디 제공

○연고도 없는 서울 토박이가 곡성에 남겠다고?

이들이 곡성에 남기로 한 이유는 서울로 돌아갈 자신이 없어서였다. 아니 돌아갈 수도 없었다. 김수빈씨는 "무엇보다도 서울에서 터를 잡고 살 돈이 없었다. 귀농·귀촌 박람회도 돌며 정보를 구했다"며 "곡성에 먼저 터를 잡은 귀향 선배들의 도움도 한 몫했다"고 말했다.

귀향선배는 '청춘작당'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팜앤디 협동조합이다. 김수빈씨는 "곡성에 먼저 정착한 선배들이 일자리나 청년지원 제도를 그때그때 알려줬다"며 "청춘작당 100일은 곡성에 비빌 언덕을 만들었던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김수빈씨는 과거 사진관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을 살려 현재 곡성에서 사진관 창업을 앞두고 있다. 곡성군청에서 사업비를 따내 창업지원금도 받을 수 있었다. 김수빈씨는 아무 연고도 없는 곡성에서 혜택을 받은 만큼 곡성군민들과도 나눌 준비를 하고 있다. 김수빈씨는 "고객이 사진을 한 장 찍으면, 곡성에 사는 할아버지·할머니 장수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는 재능기부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춘작당을 통해 곡성 곳곳을 둘러 본 1기 참여자들.

신지원씨도 팜앤디 협동조합에서 일자리를 연계받아 곡성에 남을 수 있었다. 주거문제는 곡성에서 주거 지원정책으로 운영 중인 청년셰어하우스를 통해 해결했다. 신지원씨는 "팜앤디에서 일자리를 연계해줘 곡성군청 공신 유튜브, 블로그, 인스타그램을 관리하는 일을 하게됐다"며 "부모님께서는 시골에 정착한 나를 보며 의아해한다. 가끔 지인이 놀러와 곡성의 풍경에 반하고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지역에서도 주거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이들은 "운좋게 일자리를 구했지만, 지역에는 사람 자체가 없다보니 주거·문화 등 활동 인프라가 부족하다. 서울로 인구가 몰리는 이유다"고 설명했다.

청춘작당 마무리 전시회.

곡성=박철규 기자 cg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