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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창·조재호> 5·18과 시골 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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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창·조재호> 5·18과 시골 큰집

조재호 문흥초등학교 교사

게재 2020-05-24 16:31:03
조재호 문흥초등학교 교사
조재호 문흥초등학교 교사

맑은샘. 소원(疎遠) 했네요, 지면을 빌어 마음을 나누네요. 쌤은 오월이면 가슴이 뛰시나요? 저는 언제부터인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나는 시골 큰집이 싫어졌다/.....(중략)./대학을 나온 사촌형은 이 세상이 모두/싫어졌다 한다. 친구들에게서 온/편지를 뒤적이다 훌쩍 뛰쳐나가면/나는 안다 형은 또 마작으로/밤을 새우려는 게다..(신경림, 「시골 큰집」)

작년, 초등학교 학생자치 업무를 맡았지요. 학생회 임원들이 스스로 세월호 행사와 오일팔 행사를 준비하더군요. 중간놀이 시간에 학교 중앙에서 전교생들이 플랩쉬몹을 했습니다. 학부모님들도 주먹밥과 감자를 준비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엇인지 시큰둥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올해는 유독 심하네요.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해 온라인 수업과제로 오일팔을 준비하면서 답답함을 느낍니다. 동료 선생님께 "5·18에 대해 뭘 가르쳐야 하나요?" 물었습니다. 훌륭한 광주의 초등선생님들은 방탈출 프로그램을 비롯해 학생 눈높이에 맞춘 5·18 교육자료를 근사하게 만들어놓으셨는데 말이죠. 내 마음은 설레지 않습니다. 홍콩 민주화시위에서 울려 퍼지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중심으로 영상자료를 만들었어도 말이죠. 마치 묵묵히 어떤 행사를 치르는 관료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가 뭘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 광주에서는 80년에 도청앞 분수대에서 있던 '정치'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불편함 때문인 듯 해요.

5·18을 돌이켜 정리해보면 가장 극적인 순간중 하나가 매일 벌어진 분수대 집회였습니다. 시민들은 누구나 발언을 했고, 지도부는 이를 모았습니다. 신망 받는 '대표'를 선출해서 협상에도 이끌었구요. 공동체의 '정치'가 살아있었습니다. 전두환 신군부는 '정치'가 아니라 '땡크'와 '총칼'을 선택했습니다. 역사는 '정치'가 이겼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지금 광주는 어떤가요? 지난 4·15. 선거를 생각합니다. 선거는 '도청 분수대'처럼 축제가 되었어야 해요. 대표로 출마한 사람들에게 "당신은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된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돌봄과 교육이 섞여져 비정규직 생산공장이 된 공교육 학교현장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요?" "지방소멸론이 들리는데 광주를 살리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이런 물음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기회는 없었습니다. 다음 대통령이 우리 지역에서 나올 거란 희망과 극우세력에 대한 혐오만이 조용하게 흘렀습니다. 오일팔 정신이 그런게 아닌 것 같아요.

300일 이상, 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하는 '성평등과 배이상헌을 지키는 모임'을 생각합니다. 만일 오일팔 정신이 살아있었더라면, 이 사건은 어떻게 처리될까요? 우선 분수대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행정관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다 소신 있게 발언하겠지요. 정치가는 무조건 자기 이익만 챙긴다는 시장논리의 '혐오'가 사라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말이죠. A정당은 "학생들의 미투를 지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성평등'과 연관짓지 마세요"라고 주장합니다. B 정당은 이에 대해 "배이상헌 사건은 팩트 자체가 왜곡된 행정폭력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진보교육이 무엇이고, 광주교육이 학생과 교사의 관계를 어떻게 교육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중요한 사건입니다. 당장 직위해제를 거두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C단체는 "이 사건은 성평등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사건입니다. 공교육 현장에서 어떤 식의 성교육이 이루어지는지 점검하고 우리가 대책을 세웁시다"...이런 백가쟁명의 논쟁이 벌어집니다. 논쟁과 토론 속에서 팩트는 확인됩니다. 그리고 한 사건을 계기로 우리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한 타협과 '합의'를 이루어 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 상상일 뿐이네요. 거의 모든 '정치'를 다루는 정당들은 침묵합니다. 정치활동이 금지된 교사들은 표에도 도움이 안됩니다. 막강한 행정기관이자 '진보'적인 교육청과도 얼굴 붉어지면 '정치적'으로 도움이 안됩니다. 시민단체도 마찬가집니다. 배이상헌 사건을 언급하지 않는게 여러모로 '이득'이 됩니다. 지금 광주의 '정치'는 이런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마음이 불편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움터오는 뜨거운 민주적 가치를 말할 자격이 있나 스스로 묻네요. 그래서 신경림님의 <시골 큰집>이 이 오월에 웅얼대게 됩니다.

남의 땅이 돼버린 논뚝을 바라보며/짓무른 눈으로 한숨을 내쉬는 그/인자하던 할머리도 싫고/이제 나는 시골 큰집이 싫어졌다/

맑은쌤. 쌤은 어떠신지요? 저는 시골 큰집처럼 광주 오월을 안타깝게 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