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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27> 귀국하는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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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27> 귀국하는 시간들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게재 2020-05-21 13:11:07
27-1. 나와 함께 했던 45리터 배낭
27-1. 나와 함께 했던 45리터 배낭

※ 편집자 주 :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28회'부터는 터키에서 한국으로 직항하는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어야 했던, 2020년 겨울 동안 이스탄불을 베이스캠프 삼아 터키를 여행했던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 한국보다 7배나 넓은 그곳은 지형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축복 받은 나라였다. 축복 받은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느리게 가기만 하는 시간

돌아갈 나라가 있어서, 짐을 풀 집이 있어서 여행이 더 좋다. 돌아갈 그곳이 좀 더 안락하고 안전하며 건강한 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은 그들의 나라가 부유하고 자유로우면 자신감에 넘쳐 보였다.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도 나라가 든든하게 버텨주지 못하면 제 능력을 펼칠 기회도 얻지 못한 경우도 봤다.

귀국할 날이 다가오자 나는 조금 센티해졌다. 이스라엘의 사실상 수도이며 행정 도시인 텔아비브 해안가에서 그 고운 모래에 I Miss my country, 라고 쓰기도 했다.

나는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에 있는 숙소로 옮긴 뒤로 매일 야파를 거쳐 해안가로 걸어갔다. 잘 가꾸어진 야자수 가로수 길을 걸었고 노인들이 담소를 나누는 공원을 지났다. 군데군데 노랗게 빛나는 주유소를 봤다. 해안가에 도착해서는 담 그늘에 앉아 책을 읽었다. 간혹 고개를 들어 수영을 하거나 서핑을 즐기거나 오일을 바르고 살을 태우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산책 삼아 모래사장을 걷기도 했는데 발바닥과 발등을 감싸는 부드러운 모래의 촉감은 곧 그리움으로 바뀌었다. 시간은 해치워야할 숙제처럼 느리게만 갔다. 드디어 출국날짜가 되자 나는 다시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설레어서 4시간이나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생각지 못한 수난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잠정적 테러리스트가 되다

나는 이스라엘에 오기 전에 이집트와 요르단을 들렀다 왔다. 그곳에서 누구보다 더 현지인들과 소통하며 여행을 했다. 티켓팅을 하기 전 보안 요원이 이렇게 물었다. …그곳에서 현지인들과 접촉했나요, 그들이 준 물건을 받은 적이 있나요, 얼마나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나요…

'예스 맨'이 된 나는 그만 잠정적인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눈으로 봐도 니캅 입은 여자 등 무슬림들만 기다리고 있는 보안 검색대 앞에 섰다. 나는 따로 짐을 부치지 않았다. 45리터 배낭을 메고 작은 크로스 가방을 어깨에 둘렀을 뿐이다. 기내에 들고 갈 만큼의 짐이었다. 하지만 얼마나 꽉꽉 눌러서 쌌는지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한 시간이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고생깨나 하며 쌌던 배낭을 엑스레이 검색대 위에 올려놓았다. 일일이 다 꺼내서 그 긴 막대(폭발물 탐지 막대)로 칫솔질하듯 문질러 대는 것이 아닌가. 담당 직원의 이마와 뺨에 땀이 흘러내렸다. 내가 정말 테러리스트가 된 것 같았다. 만났던 누군가가 폭발물을 몰래 넣어뒀을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진지했고 분위기가 삼엄했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검색해봐라 장난감 종이 화약 하나 나오나, 라며 테러리스타가 된 나를 즐겼다(언제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드디어 모든 수속을 다 밟았다고 생각했을 때 턱 하니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안면 인식기였다. 나는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얼굴 촬영을 했다. 촬영된 내 얼굴과 여권에 붙어 있는 사진과 대조하는 듯했다. 양쪽 귀가 다 보이도록 머리를 귀 뒤로 넘겼지만 실물보다 여권 사진은 훨씬 예뻤다. 설마 70% 이상 다르다고 나오지는 않겠지? 사진은 내 걱정과 달리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이 모든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나자 진이 빠져버렸다. 공항에 도착해서 우즈베키스탄 보따리 장사 아줌마들 틈에서 어렵게 티켓팅을 시작으로 해서 장장 4시간 동안 꼼짝없이 서 있었다.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륙 시간이 겨우 10분 남았다. 탑승구로 향해 뛰었다. 파라다이스 같은 면세점이 내 앞으로 펼쳐져 있었지만 커피 한 잔 마실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자 악담을 퍼부었다. "다시는 이스라엘 오는가 봐라."

비행기와 얽힌 이야기들

어렵게 탄 우즈베키스탄 비행기는 한 시간 늦게 이륙했다(알았다면 면세점에서 현지 통화를 다 사용했을 텐데…). 인상적인 것은 아무도 짜증을 내지 않는다는 거였다(우즈베키스탄의 낙천적인 국민성을 보았다고나 할까). 타슈켄트에 무사히 도착하자 승객들은 기장을 향해서 박수를 쳐주었다(얼마 전에 추락 사고가 있었다고 하던데, 그런 이유일까). 마음 졸이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30분 안에 환승 수속을 마치고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실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어떻게 그 시간에 보안 수속이며 티켓팅 등을 다 할 수 있단 말인가. 기내를 서둘러 나가자 공항 직원이 환승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 보안 수속만 밟을 수 있도록 안내했다. 우즈베키스탄이 나를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환승을 빈번하게 하는 나는 공항과 얽힌 에피소드가 많다. 이스라엘에서 귀국할 때도 그렇지만 베이징 공항에서 공안에 잡혀(?) 억류된 적도 있었다. 중국은 24시간만 머무르면 비자가 필요 없다. 인천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가는 길에 청도와 베이징을 잠깐 거쳤다. 두 공항에 머문 총 시간은 23시간이었는데 공안이 하루가 지난 것으로 착각해서 나를 따로 관리했던 거였다.

유럽에서 주로 이용했던 라이언에어 탑승 후기도 만만치 않다. 기차보다 가격이 싼 라이언에어. 기내에 들고 갈 가방 무게와 크기를 "무섭게" 재고는 조금이라도 오버되면 "무섭게" 돈을 받아낸다. 체코에서 부다페스트로 갈 때였다. 제대로 담당 직원과 중국 여인이 붙었다. 화가 난 중국 여인은 돈을 내는 대신 빈 캐리어를 버렸다.

나는 비교적 최근의 일도 말해야 할 것 같다. 이번 겨울에 한 달 정도 터키에 머물렀다. 그곳에 갈 때에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바이러스19가 창궐했지만 우리나라 확진자 숫자는 미미했다. 터키는 청정 국가였다. 엄격하게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켰다.

귀국 날짜를 열흘 앞두고 있을 때 신천지 집단 코로나바이러스19 확진자가 쏟아졌다. 내가 숙소로 사용하고 있던 아파트 호스트가 돈을 받지 않을 테니 잠잠해질 때까지 머물러도 된다고 했다. 괜스레 의기소침해진 나는 귀국 날짜를 4일 앞당겼다.

2월 28일 오후 5시 20분 아시아나 항공기를 타고 3월 1일 8시 50분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수화물을 찾고 있을 때 지인이 전화를 해왔다.

"네가 예정대로 일찍 귀국한 것은 신의 한 수였어."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광주로 가는 리무진 버스 안에서 기사를 검색했을 때 알았다. 3월 1일부터 터키 정부가 일방적으로 한국으로 가는 하늘 길을 막아버렸다는 것을.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27-2. 텔아비브 해변에서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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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I miss my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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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이스라엘을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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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 하늘에서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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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터키에 도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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