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19> 이집트 여행 하이라이트 사막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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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19> 이집트 여행 하이라이트 사막 투어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 입력 : 2020. 01.30(목) 12:56
  • 편집에디터

19-1. 헤이즈 온천. 생애 처음 오아시스에서 비키니 입기.

1. 뉴욕에서 온 나탈리아와 사막에서 비키니 입기

사막에서 하룻밤 꼭 자고 싶었다. 이집트를 떠나기 3일 전 숙소 리셉션에 신청했다. 로컬 가이드가 동행한다고 해서(다시 말하면 베두인 남자와 단 둘이 사막에서 비박을 한다고 해서)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혼자라 비쌌다.

이집트 5대 사막 중 한 군데인 바하리야(Bahariya Oasis). 카이로에서 다섯 시간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숙소로 데리러 왔다. 차문을 열었을 때에야 알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여자가 앉아있었다. 부스스한 곱슬머리에 가슴을 절반이나 드러 내놓고 있는, 막 침대에서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이지만 부모 때부터 뉴욕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무역 회사 비서이자 스페인 통역사였다.

동행이 누구냐에 따라 여행이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중동에서 노출을 즐기는 여자라니…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조금만 시각을 달리하니 편해졌다. 그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늘 비키니 세 벌을 가지고 다닐 정도였다고 하니… 그중 가장 작은 사이즈를 내게 빌려주었다.

생각해보라. 사막 오아시스에서 비키니를 입을 수 있는 그 짜릿함을? 생애 최초 비키니를 마흔이 넘어 그것도 사막에서 입어보다니… 몸의 해방감을 만끽했다고나 할까. 몸은 몸일 뿐이었다. 사회·문화·생물학적으로 판단하기 이전에 그저 자연의 일부분이었다. 내 몸을 사랑한다는 것에서는 수줍음이 필요 없었다(이것이 씨앗이 되었다. 요르단 와디무집에서 계곡 어드벤처에서 물속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귀국하자마자 수영을 배운 것이. 6개월 뒤 다합에서 스쿠버다이빙 다이브 마스터가 된 것이. 내 몸에 대한 자신감을 가졌기에 가능했다).

다섯 시간 달려서 바하리야에 도착했다. 현지인 가이드가 운전하는 지프에 몸을 실었다. 베두인 가이드 압두는 거칠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는 지프로 모래 언덕을 오르내렸다. 듄 배싱(Dune bashing). 용감한 두 여자는 환호성을 질렀다.

사막은 광활했다. 생크림을 잘 발라놓은 것처럼 다듬어진 모래 언덕에서 샌드 보딩을 즐겼는가 하면 흑사막, 백사막, 크리스털사막이라고 불리는 포인트에서는 머플러를 모래 바람에 날리며 춤을 추었다. 신발을 벗고 아예 누워 모래 촉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탈리아와 나는 죽이 잘 맞았다.

2. 사막에서의 밤

해는 뉘엿뉘엿 모래 언덕을 붉게 물들이고는 사라졌다. 밤에는 많은 사파리 투어들이 각자 구역을 정해서 야영을 했다. 압두도 우리를 이끌고 고요가 미리 점령하고 있는 하얀 사막에 이르렀다. 달빛이 모래 알갱이를 물들였다. 압두는 베두인 천막으로 바람벽을 만들었다. 모닥불을 피우고는 오랫동안 닭고기를 구웠다. 냄새를 맡은 사막여우가 어슬렁거리면서 주위를 맴돌았다.

저녁 식사 후에는 이웃 천막으로 놀러 갔다(이런 표현이 맞다면 말이다). 압두와 단짝인 다른 가이드가 대만 팀을 이끌었다. 그들은 댄스 강사들이었다.

이미 모닥불 주위로 자리를 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 어둠이 급습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불꽃을 날리며 타들어가는 모닥불. 심박동 패턴으로 반복되는 북장단. 무용수들의 리듬감 있고 탄력적인 엉덩이의 흔들림. 베두인 차는 뜨겁고 달콤했다. 그들은 습관적으로 차를 마셨다. 마침 그날 생일이었던 나탈리아를 위한 가이드들의 깜짝 생일파티가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축제를 즐겼다면 음악이 사라진, 우리들만의 안식처로 돌아와서는 느슨하게 누워서 고요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사막여우는 텐트 주위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모닥불 사위는 점점 사그라들고 숯 위에 놓여있는 차 주전자 주둥이에서는 김이 올라왔다. 설탕이 아닌 수수깡 진액을 넣는다는 베두인 차. 모닥불 주위에 깔아놓은 카펫에 눕거나 앉아서 연초를 피웠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하늘처럼 새까만 하늘에 박혀 있는 별들이 머리 위로 곧장 떨어질 것 같았다(스마트폰으로는 찍을 수 없었다). 30대 초반인 압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3. 베두인 압두

원래는 군인이었단다. 사막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가이드가 되었단다. 가이드가 된 것이 좋단다. 이곳에 있으면 전 세계 사람을 만날 수 있단다. 말은 끊은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 앨범에서 인상 깊었던 손님들을 보여주었다. 나탈리아가 물었다. 결혼은 했니? 어느 날 집에 가보니 어머니가 여자 한 명을 데리고 왔단다. 한 방에 그냥 넣더란다. 그것이 결혼하게 된 동기였단다. 사막의 주인이라는 베두인(Bedouin; 사막에 사는 사람들) 답게 압두는 사막의 밤을 장악하고 있었다.

중동 여행이 처음인 그때만도 베두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이집트 다음으로 간 요르단 페트라에서 만났던 작은 체구의 베두인. 사진 같이 찍자는 요구를 거절 못하고 사진을 찍고는 인터넷에는 올리지 말라고 부탁하던 노점상 베두인 여인. 그녀는 사진을 보면 남편이 자신을 죽일 거라고 했다. 남편은 소셜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었다. 다합에서는 호텔 옥상에서 근사한 건물을 가지고 있던 사업가 베두인도 만났다(호텔 건물과 옥상 건물 소유주가 달랐다). 내가 만난 베두인은 한결 강해 보였고 영리했다.

마른 몸과 까만 얼굴에 두 눈만은 별들을 가득 담고 있던 압두가 그동안 익힌 영어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사막여우 기척이 사라졌고 쏟아질 듯한 별들은 눈꺼풀 밖으로 밀려났다. 모닥불은 온기만 남았다. 압두가 미리 쳐놓은 작은 텐트 안으로 나탈리아와 나는 들어갔다. 바람이 소근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청했다. 일출을 보기 위해 다섯 시에 일어났을 때 지프 지붕이 침대인 압두는 꿈쩍도 안 했다. 우리는 숨바꼭질하듯 화장실을 찾아 주위를 한참 맴돌았다. 실은 모든 사막이 화장실이었다.

마침내 사막 지평선에서 해가 떠올랐다. 숨조차 쉴 수 없을 해무리가 퍼졌다. 붉은빛이 쌩쌩한 숨결을 사방 모래밭에 불어넣고 있을 때에야 긴 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그곳에 앉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생명의 기를 훔쳤다.

카이로로 돌아오는 길,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마른 산을 나는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이제 요르단 암만으로 향할 때다.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은 백지이다. 그 백지를 어떻게 채색하느냐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채도가 달라진다. 이집트의 말미는 별들이 쏟아지는 하얀 모래 위에 사막 여우가 발자국을 내었다. 그 뒤로 무지갯빛 이야기들이 따라갔다. 사막이 무지갯빛 풍경이 되었다, 내 여백에는.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19-2. 해가 뜨고 있다.

19-3. 샌드 보딩. 내려갈 때는 좋은데 올라오기가 힘들다.

19-4. 그녀는 동적이다.

19-5. 저녁 식탁에서의 압두.

19-6. 나탈리아의 깜짝 생일 파티.

19-7. 생크림 케이크처럼 잘 발라놓은 모래 언덕.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