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고독사'… 낮은 자세로 슬픔 함께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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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쓸쓸한 고독사'… 낮은 자세로 슬픔 함께 나눈다
2020 희망을 나누는 사람들 ② 고독사 현장 청소부||‘단순 청소’ 아닌 유품정리 등 마지막 가는 길 배웅||30대 청년 고독사 증가… 현 사회 시대적 문제 직면
  • 입력 : 2020. 01.01(수) 17:06
  • 양가람 기자
청소 업체가 지난해 12월 광주 산월동 한 원룸에서 영양부족으로 고독사한 30대 청년의 유품을 정리하고 있다. 하늘119 제공
"작업의 고됨보다는 안타까운 사연으로 인한 후유증이 남아요. 가족, 지인들이 조금이라도 먼저 그들 손을 잡아주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도 들구요."

박봉철 하늘119특수청소 대표가 낮은 목소리로 털어놓은 고충이다.

'하늘119특수청소'는 고독사부터 자살, 강력범죄 현장을 청소하고 유품을 정리하는 업체다.

2년여 간 고독사 현장을 청소해 온 그는 수많은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그들만의 섬에 갇혔다가 외롭게 떠난 이들은 무거운 냄새를 남겼다. 박 대표는 그들의 삶도 죽음 못지 않게 '고독'했다고 말했다.

"고독사는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홀로 맞는 죽음입니다. 죽은 지 3일 정도 지나면 시신이 부패해 악취가 생기는데, 그 냄새를 맡은 이웃들의 신고로 죽음이 알려지는 거죠. 하지만 주변의 무관심으로 두세 달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경우도 있어요."

신고가 접수돼 검안을 마치면 집주인이나 유가족들이 업체에 의뢰한다. 업체는 해당 장소에 가서 유서나 계약서 등 유품을 정리해 유가족에게 전달한다. 이후 현장 청소를 시작한다. 시체의 악취가 밴 장판을 걷어내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등 오염된 현장을 특수약품으로 살균·청소한다. 이 과정이 대락 2~3일 정도 소요된다.

"유품을 보면 시대적 문제를 바로 알 수 있어요. 대표적인 게 취업난, 경제난, 건강이에요. 세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이게 현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고민이에요."

노년 고독사는 주로 주공 등 임대아파트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현장엔 약봉지가 한가득 쌓여 있다. 4·50대 중장년 고독사 현장은 주로 원룸으로, 술병과 담배꽁초가 많이 쌓여 있는 게 특징이다. 그리고 30대 청년 고독사 현장에는 '이력서'가 남겨져 있다.

박 대표는 전국적으로 30대 청년 고독사가 늘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과거엔 7·80대 영세 노인들의 고독사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엔 청년들의 고독사가 많아졌다. 그는 지난 12월 거의 매일 청년 고독사 현장을 찾았다.

그는 광주 산월동의 한 원룸 문을 열었을 때 받았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현장엔 쌀 한 톨 보이지 않았고, 텅텅 빈 냉장고와 생수통 만이 영양결핍에 시달리던 청년의 마지막 순간을 짐작케 했다. 이불 한 장과 옷가지 두어 개, 이력서 몇 장이 청년의 마지막 유품이었다.

"독거노인의 방 안에는 제공받은 쌀로 연명한 흔적이 남아 있지만, 중장년 그리고 청년의 방 안에는 밥을 지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본인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짐도 거의 없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작업이 쉽지 않아 직원들도 고되다.

"점심이나 저녁에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집 안의 냄새가 몸에 배어 식당을 갈 수 없어요.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죠. 또 냄새가 심해서 공중목욕탕에 갈 수도 없고요. 주민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문을 닫고 작업을 하는 데, 여름엔 더 힘들죠."

직원들은 유품 정리에서부터 청소작업, 유족들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에도 예를 다한다.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이 유품들을 모두 처리해달라고 부탁할 때에도 후에 의미있을 거라 여겨지는 것들을 따로 보관해 두기도 한다. 단순 청소 업무로 여겨질 때도 있지만, 직원들은 작업을 의미있는 일로 여긴다.

"이 일을 하면서 더 낮은 곳을 내려다 보는 겸손함을 배웠습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게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