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반란은 무죄… 위기 속 새로운 길 모색하는 동네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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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서점의 반란은 무죄… 위기 속 새로운 길 모색하는 동네책방
광주·전남 동네책방 20년사이 절반 문 닫아||이색 콘텐츠로 활로 모색하는 동네책방 '눈길'||
  • 입력 : 2019. 11.06(수) 17:06
  • 김진영 기자
광주시 북구 용봉동에 있는 연지책방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무인책방'이다.
동네책방이 위태롭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이 시장을 휩쓸면서 줄도산을 면치 못하고 있다. 불과 20년 사이 절반이 넘는 동네책방이 문을 닫은 현실이다. 2000년대 초반 254곳이었던 광주의 동네책방은 2017년 기준 91곳으로 60%가 문을 닫았다. 전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999년 170개였던 동네책방은 이제 불과 80여곳 밖에 남지 않았다.

한때 골목 어귀마다 존재했던 동네 책방이 급격하게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아직 동네책방은 끝나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이들도 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대형서점이 따라 하기 힘든 '이색적인 변화'를 도입한 곳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 문학을 사유하는 특별한 공간

광주시 동구 서석동에 있는 '검은책방흰책방'.

책을 파는 곳이라기보다, '문학을 사유하는 곳'에 가깝다. 소설가 남편 김종호(49)씨와 시인 아내 이은경(48)씨가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가게에 빼곡이 쌓인 책은 책방지기들의 취향이 듬뿍 담긴 시와 소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책방은 책을 파는 공간이라는 편견을 넘어섰다. 오히려, 고객들이 책을 읽기 편하도록 간단한 음료까지 제공한다. 매주 개최되는 독서모임과 책 낭독회, 작가 초청강연 등 독자와 작가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은경씨는 "굳이 여기서 책을 구매하지 않아도 이곳에 마련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책방에 오면 꼭 책을 구매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않고, 책을 사이에 두고 서로 생각을 공유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 도심속 나만의 서고 '무인서점'

음료제공을 넘어 아예 독자들이 눈치를 보지 않도록 사람까지 없애 버린 곳도 있다. 광주시 북구 용봉동에 있는 연지책방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무인책방'이다.

책을 읽는 것도 마음에 드는 책을 구매하는 것도 모두 자유다.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책방은 마치 나만을 위한 개인서고처럼 느껴진다. 문을 여는 것조차도 예사롭지 않다.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아, 회원 로그인을 하면 굳게 잠긴 책방의 비밀번호를 알 수 있다.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3년 만에 가입자 1600여 명을 넘어섰다.

이곳에 전시된 120여 건의 서적은 모두 1인 출판사에서 제작한 '독립출판물'이다. 독립출판사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민승원(28)씨의 철학이 담겼다.

민승원씨는 "대형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만 진열된 것이 안타까워 '골목 어귀마다 작은 서점이 생기면 독자들도 책을 쉽게 접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연지책방의 문을 열게 됐다"며 "독자들도 편하게 책을 접할 수 있고 인건비도 절약될 것 같아 사람이 없는 책방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한다.

일반적인 책방에서는 보기 힘든 다양한 컨텐츠도 특징이다.

작가의 글 한 편을 실어 우편으로 발송하는 '연지레터', 편지를 부치면 1년뒤에 도착하는 '느린편지' 등 다양한 컨텐츠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 그림책 보며 맥주 한 잔 어때요

아예 특별한 컨텐츠를 '전문분야'로 내세우는 동네책방도 있다.

광주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예지책방은 '그림책'만을 취급한다.

어린이집 교사로 활동하던 차예지(28)씨는 지난해 책방을 열었다. 주로 초등학교나 유치원 교사들과 아이 어머니들이 많이 찾지만, 아이들만 그림책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세계 맥주를 마시며 그 나라와 연관된 그림책을 함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SNS를 통해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작가와 만남을 진행하고 있고, 쉽게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그림책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 동네책방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이색적인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새로운 컨텐츠를 모색하는 것이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민승원씨는 "매체의 발달로 오늘날 책은 독자들에게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며 "책방은 단순히 책을 사고 파는 공간이 아닌 동네의 복합문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경씨는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동네책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탁월한 기획력이 필요하다"며 "골목문화의 중심지인 동네책방의 생존을 위해 행정기관에서도 함께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어 동네책방을 위한 쿠폰을 발행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동네책방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시각도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차예지씨는 "종이 책에는 컴퓨터나 전자매체가 넘볼 수 없는 진한 감수성이 담겨 있다"며 "단순히 동네책방을 책을 사고 파는 공간으로 볼 것이 아니라 출판사와 골목을 잇는 특별한 공간으로서 소중하게 여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진영 기자 jinyo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