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특집>"개구리 벗삼으니, 주민들 모이고 마을이 환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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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특집>"개구리 벗삼으니, 주민들 모이고 마을이 환해졌네"
•지속가능사회를 꿈꾸는 사람들(1) 일곡동 한새봉 두레||마을 뒷산 논 되살려 주민들 함께 11년째 농사 짓자||개구리·도롱뇽 등 돌아오고 주민들 간엔 담장 낮아져||도시농업 성공 사례 자리매김… 토종볍씨 보존 운동도
  • 입력 : 2019. 07.18(목) 10:24
  • 김정대 기자
한새봉 농업생태공원을 지키는 주민협의회 회원 가족과 지역주민 100여명이 지난 5월 광주 북구 일곡동 한새봉농업생태공원 개구리논에서 손모심기를 히고 있다. 회원들은 11년째 2644㎡ 논에 손모내기를 해오고 있다. 김양배 기자


"도시의 개구리들과 밥 한 그릇을 나눕니다."

광주 북구 일곡동 주민들이 만든 '한새봉 두레'의 소개 문구 중 하나다.

두레는 농번기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해 부락 단위로 만들어진 조직. 요즘 아파트촌이 들어선 도시에선 과거 농촌 공동체의 따뜻한 정(情)을 그리워하며 주민들 모임에 상징적으로 '두레' 이름을 붙이곤 하는데, 여기서는 이름 만이 아니라 정말로 농사를 짓는다.

그런데 밥 한 그릇 나누는 대상이 '개구리'다. 작물을 길러 사람들끼리 먹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개발로 사라진 옛 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생태환경을 보전해 동·식물과 '공생' 할 수 있는 터를 마련했다. 논 이름은 '개구리 논'이라 붙였다. 시간이 흐르며 숨어있던 개구리, 도롱뇽, 소금쟁이, 풍년새우, 물방개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마을 아이들은 틈만 나면 논 자락을 찾아 곤충 관찰 삼매경이다.

함께 논 농사를 짓다보니 이웃 간 담장도 낮아졌다. 주민들은 봄이면 모내기를 하고 가을이 오면 벼베기를 한다. 여유가 있을 때마다 논을 찾아와 피를 뽑는다. 일손이 모자랄 때는 서로 울력 요청도 한다. 지난 2008년 이후 11년간 이곳 주민들이 살아온 모습이다. 각박한 도시 삶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주 무대인 한새봉농업생태공원은 일곡동 자락 한새봉이라 이름 붙은 작은 산 아래 위치한다. 길 하나만 건너면 곧장 아파트와 주택촌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오랜 기간, 건실하게 유지되다 보니 광주에서의 지속가능발전을 얘기할 때 대표 사례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원래 이 일대는 비가 오면 계곡을 타고 흐른 물이 땅 속에 모였다가 마을 곳곳에 있던 샘으로 솟아나던 지형이었다. 논 농사 짓기에 적합해 부락민들은 농사꾼 일색이었지만, 도시화로 점차 모습을 잃어갔다. 여기 살던 노현채 옹 만이 겨우 농사를 이어갔다. 영영 자취를 감출 것 같았던 한새봉 논은 마을 주민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옛 모습을 지키고 있다.

한새봉 두레가 중심이 돼 생태환경 보존과 공동체 활동을 이어가자 지자체도 관심을 보였다. 논 습지와 농사를 유지하고 주변 숲의 생물다양성 확보를 위해 사유지였던 인근 땅을 매입, 지난 2015년 한새봉농업생태공원을 조성했다. '아이들에게 생태가 유지되는 도시환경을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현재 공원은 한새봉 두레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

일부 환경에 관심을 지닌 사람들로 시작된 한새봉 논 살리기는 이제 이곳 주민 모두의 공통된 관심사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공원 관리에 고심한다. 관정(管井) 하나를 파는 것을 두고도 생태환경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가 7년 간 논쟁이 이어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흔히 친환경이라 여기는 '우렁이 농법'도 습지 생태를 파괴할 수 있어 심사숙고 하고 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그 만큼 높다는 거다.

지난해부터는 토종 씨앗의 보존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개량을 거듭하며 상품화된 농작물의 씨앗을 지키고 유지하자는 취지다.

정은실 한새봉농업생태공원 센터장은 "씨앗은 본래 땅에 심긴것이 자라 여물면 작물을 거두고 다시 씨앗으로 쓰는 순환이 자연 상태의 모습이다. 개량을 거듭하며 작물만 거둘 수 있는 종자가 따로 생겨났다"면서 "토종씨앗을 어떻게 지키고 유지할 지가 최근 구성원들의 주된 관심사"라고 말했다.

공원 내 방문자센터에는 '한새봉 씨앗도서관'을 만들었다. 흑도, 다마금, 족제비찰, 멧돼지찰 등 토종 볍씨를 보관하며 이곳을 찾은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농사를 지어 또다시 씨앗을 수확하면 공유하면 된다. 씨앗을 서로 나눈다는 의미에서 씨앗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작년부터 2~3달에 한 번 꼴로 '도시농부장터'도 열고 있다. 농사를 지어 나온 농작물을 주민들끼리 사고 팔고 먹는 자리다. 초등학생 농부가 애지중지 기른 당근, 인근 장애인학교 학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키워낸 곡물들은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논 하나를 살리니, 주민들 간 교류가 높아지고 마을이 환해졌다.

정 센터장은 "지속가능발전은 사람들이 서로 돕고 끊임없이 대화하며 고쳐나갈 때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한새봉농업생태공원은 '농사'를 매개로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가고 있다. 미래 세대인 마을의 아이들도 함께 참여하는 길을 만들어 더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게 만들어 가려 한다"고 말했다.

김정대 기자 noma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