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후보가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노동운동가 출신의 정치인인 김 후보는 1970∼1980년대를 이끈 ‘노동운동 1세대’로, 반세기가 지난 2025년 ‘아스팔트 우파’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정치권에서도 흔치 않은 궤적 변화다.
국민의힘 전신 정당 소속으로 3선 국회의원과 재선 경기도지사 등을 지낸 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야인’ 생활을 거쳐 윤석열 정부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장,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영입된 뒤 ‘12·3 비상계엄’ 정국을 거치며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다.
●판자촌서 자라 서울대 진학, 두 번 제적 두 번 구속…노동운동계 ‘전설’로
김 후보는 1951년 9월 경북 영천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고, 판자촌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1970년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1971년 전국학생시위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두 차례 제적됐고, 대학 졸업장은 1994년에야 받았다.
제적 이후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재단보조공으로 근무했고,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노동운동에 깊숙이 뛰어들었다. 1980년대 대학생들의 ‘위장취업 노동운동’의 시초 격이 김 후보였던 셈이다.
1980년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시절과 1986년 인천 5·3 민주항쟁 과정에서 두 차례 구속됐고, 그 과정에서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김 후보는 당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서 전국적으로 상당한 존재감을 떨쳤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생전에 김 후보를 “내 아들”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당시 운동권에서는 김 후보의 연설 필사본을 돌려보기도 했다고 한다.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는 “동지로 지내던 시절의 김문수는 전설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노동운동가’에서 ‘보수정치인’으로…3선 의원·재선 도지사까지 승승장구
김 후보의 인생은 1990년대 초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탈바꿈했다. ‘노동운동가 김문수’가 ‘보수 정치인 김문수’로 변신했다.
김 후보는 이재오·장기표 전 의원 등과 1990년 창당한 민중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1994년 김영삼 당시 민주자유당 총재의 권유로 전격 입당, 15대부터 17대까지 신한국당·한나라당 등 후신 보수정당을 거치며 경기 부천 소사에서 내리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에 당선된 데 이어 2010년 재선에 성공하며 행정가로 경험을 더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기획, 수도권 통합 요금제, 경기순환버스 등이 이 시절 대표적 업적으로 꼽힌다.
2011년 119에 전화해 자신이 도지사임을 밝혔으나, 장난전화로 착각해 대응하지 않으려던 소방관들에게 집요하게 ‘관등성명’을 요구하고 이후 징계성 인사 조처를 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했던 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선거 연패·막말 논란 ‘암흑기’…아스팔트 위에서 짙어진 강성 보수 색채
2012년 18대 대선 때 새누리당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밀려 2위를 기록하며 김 후보 정치 인생의 ‘암흑기’가 찾아온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지만, 이번에는 김부겸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패했다. 서울 등 ‘험지’에 출마해달라는 당의 요구를 거부하고 선거에 나섰다가 민주당에 ‘보수 텃밭’을 내어준 것이다.
이를 계기로 당내에서 그의 정치적 위상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10년 가까이 사실상 야인으로 지내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 속에 열린 2018년 지방선거에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지만 패배했다.
김 후보가 점차 ‘강성 보수’의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며 박 전 대통령 탄핵 반대 활동을 벌였고, 유튜브 개인 방송을 시작하며 진보 진영을 거칠게 비난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총살감”이라는 말을 해 논란이 있었다. 2019년에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함께 기독자유통일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尹정부서 노동부 장관 맡아…계엄·탄핵 정국 거치며 대선 후보로
아스팔트 보수로 활동하던 그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정치 무대에 다시 올랐다. 정권 출범 첫해부터 대통령 자문기구인 경사노위원장을 지냈고, 지난해 8월에는 노동부 장관에 임명됐다.
김 후보는 국무위원 임기 중에도 강성 발언으로 이목을 끌었다.
경사노위원장 시절 국정감사에서 문 전 대통령에 대해 “김일성주의자”라고 한다든가,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 파업을 두고 “노동자들이 손배소를 가장 두려워한다”고 말해 당시 야권과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그랬던 그는 ‘12·3 비상계엄’ 정국을 거치며 보수 진영의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 11일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민주당 의원이 계엄 선포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요구,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들이 일어나 90도로 고개를 숙이는 와중에 홀로 거부한 채 자리를 지켰다.
이후 연초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보수 대권 주자로 급부상했고, 이날 경선에서 56.53%의 득표율로 한동훈 후보를 누르고 당 후보로 선출됐다. 김 후보는 줄곧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다만 본선에서도 이같은 성향이 강점으로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김 후보를 포함한 보수 진영의 지지율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범보수 빅텐트’ 논의가 당에서 기대하는 만큼 얼마나 강력한 시너지를 내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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