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비극적인 운명의 서사극…가냘픈 저항적 선율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비극적인 운명의 서사극…가냘픈 저항적 선율
<운명의 힘>
베르디, ‘돈 알바로’ 기초 4막 오페라
1850년 스페인·이탈리아 배경 작품
등장인물 감정, 음악적 기교로 표현
세계 유수 오페라극장 주요 레퍼토리
  • 입력 : 2025. 01.16(목) 17:43
2019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알바로 역의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과 레오노라 역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아리아’처럼 아리아처럼 대중들에게 오페라 작품보다 더 유명세를 치르는 오페라 서곡이 있으니 이는 베르디의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 1862> 서곡이다. 오페라에서 서곡은 오페라의 여러 테마를 연결하며 전개하는데 특히 베르디(G. Verdi,1813~1901) <운명의 힘> 서곡은 광고, 드라마, 영화 음악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레퍼토리이다. 특히 프랑스 영화 ‘마농의 샘’에 등장하여 강렬하게 관객에게 각인되었는데 영화의 주인공이 운명의 강력한 힘 앞에 나약하게 굴복하고 마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운명의 힘> 서곡의 멜로디는 성난 파도처럼 몰려와 모든 것을 부숴 버리는 운명과 거기에 대항하는 인간의 가냘픈 저항적 선율의 음악이 대비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2024년 스페인 Liceu 극장에서 열린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공연 장면. 출처 Antonio Bofill
오페라 <운명의 힘>은 러시아 궁정의 의뢰로 베르디가 작곡한 4막의 오페라다. 대본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가 스페인 작가 앙헬 페레스 데 사베드라의 희곡 ‘돈 알바로’를 기초로 썼으며, 186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그리고 이후 대본가의 안토니오 기슬란초니의 수정 대본으로 1869년 2월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근래까지 이 개정판이 세계 유수 오페라 극장에서 주요 레퍼토리로 올려지고 있다.

1850년경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운명의 힘>은 주역인 젊은 세 사람이 비극적 운명으로 얽혀 젊은 모두 파멸한다는 처절한 비극이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스페인의 귀족 칼라트라바 후작의 딸 레오노라와 잉카 제국 왕가 혈통인 돈 알바로는 사랑하는 연인 사이로 이 둘의 사랑을 반대하는 후작 가문을 피해 몰래 도망갈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는 후작에게 발각되고 이어 알바로의 총기 오발로 후작을 죽게 만드는데 후작은 자신의 딸을 저주하며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둘은 헤어져 도망자 신세가 된다. 분노한 레오노라의 오빠인 돈 카를로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변장을 하고 이 둘의 행방을 쫓는다. 레오노라는 먼 친척인 수도원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여 은신하고 알바로는 전쟁터에서 이름을 바꾼 카를로를 만나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체 우정을 맹세하고 친구가 된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총을 맞고 중상을 입은 알바로가 수술 전 카를로에게 자신의 상자를 맡기게 되는데 묘한 기운을 느낀 카를로가 편지 상자를 열어 동생 레오노라의 초상화를 발견하며 둘 사이의 악연이 밝혀진다. 이에 카를로는 알바로에게 결투를 신청하지만, 곧 제지되고, 알바로는 삶의 깊은 회의를 느끼며 군대를 떠나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5년의 세월이 지나고 수도원의 수사가 되어있는 알바로를 카를로는 끈질긴 추적 끝에 다시 찾아내 결투를 신청한다. 둘은 결투를 위해 바위 동굴 앞으로 가는데,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레오노라가 은신하고 있는 곳이다. 결투에서 알바로에게 찔린 카를로는 죽어가면서 알바로에게 종부성사를 간청하고, 알바로는 동굴 안에 사는 수사에게 다급하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레오노라는 알바로와 죽어가는 오빠 카를로를 함께 발견하게 되는데 레오노라를 알아본 카를로는 저주를 퍼부으며 마지막 힘을 다해 여동생을 칼로 찌른다. 이때 달려온 과르디아노 신부와 알바로에게 레오노라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내 피로 오빠의 복수가 이루어졌다고 말하며 알바로에게 먼저 하늘나라에 가 있겠다고 말한다. 자신의 너무나도 잔인한 운명을 저주하는 알바로에게 과르디아노 신부는 알바로를 타이르며 세상을 떠나는 영혼을 위해 함께 위로의 기도를 올리라 주문하고 레오노라가 조용히 숨을 거두며 이 작품은 막을 내리게 된다.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공연 장면.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개정판 <운명의 힘>의 결말은 카를로와 레오노라 남매의 두 주검을 볼 수 있지만, 개정되기 전 1862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초연 당시에는 세 주인공이 모두 죽는 결말이었다. 베르디는 당시 공연에 대하여 “무대 위에 죽음만 널려 있다”라고 푸념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에 대본가 기슬란초니가 비극적 결말에서 알바로를 구원해줬다고 한다.

줄거리를 보면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지극히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이 많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베르디는 운명이라는 메타포를 주장했으며, 그의 음악 또한 참담함을 겪는 당사자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잘 표현했기 때문에, 극의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것이다.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에서 알바로 역의 테너 카루소와 레오노라 역의 퐁셀레가 연기를 펼치고 있다.
<운명의 힘>에서 베르디는 거친 파도처럼 피할 수 없는 가혹한 운명과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탁월하고 원숙한 음악적 기교로 조합하였다. 이러한 기교로 만들어진 운명과 인간의 음악적 대비는 오페라 전체에 끊임없이 팽팽한 긴장감을 제공하고 있다. 웅장한 관현악 구성과 무거운 합창은 장대한 스케일로 표현되었으며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사실적인 아리아와 중창은 성악가들의 주요 레퍼토리로 애창될 만큼 수려함과 드라마틱함을 뽐내고 있다. 베르디의 대부분 오페라가 연기와 가수의 목소리를 함께 요구하거나 아니면 표현 측면에서 더 많은 연기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나 <운명의 힘>은 오로지 오페라 가수의 목소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운명의 힘>에서 요구하는 강력하고 드라마틱 가수의 소리가 없다면 이 작품의 진가를 맛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 성공한 <운명의 힘>의 레이블을 검색해보면 주역 가수의 면모가 드라마틱한 명가수들로 채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운명의 힘>은 서곡뿐만 아니라, 레오노라의 아리아 “주님, 제게 평화를 주소서 Pace, pace mio Dio”, 알바로와 카를로의 2중창 등 수려한 레퍼토리로 가득차 있는 작품이다. 동영상으로 전편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명가수의 음원을 통해 작품을 오로지 귀로 이해해 보는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을 한껏 느끼는 방법이라고 사료된다.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



오페라 ‘운명의 힘’ 포스터. 출처 위키피디아
추천 음반 : 레온타인 프라이스, 플라시도 도밍고, 셰릴 밀른스 등, 제임스 레바인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존 올디스 합창단, 1976년 녹음, BMG

음악 박사 이용숙은 다음과 같이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을 설명하였다. “이 오페라는 어떤 장면보다도 서곡이 유명합니다. 금관악기가 운명의 타격을 표현하는 듯한 장중한 음으로 곡을 열면, 현악기들이 휘몰아치는 운명의 소용돌이를 그려내고, 뒤이어 목관악기가 남자주인공 돈 알바로의 구슬픈 테마를 연주합니다. 그에 이어지는 현악기의 트레몰로는 여주인공 레오노라의 간절한 기도와 비극적 운명을 나타냅니다. 후반부로 가면서 곡은 점점 박진감이 넘치고 팀파니와 심벌즈 등의 타악기까지 가세해 밝고 힘찬 분위기로 전진해가지만, 결국 이 모든 역동성과 파워는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운명의 힘의 승리를 말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