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알바로 역의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과 레오노라 역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
2024년 스페인 Liceu 극장에서 열린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공연 장면. 출처 Antonio Bofill |
1850년경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운명의 힘>은 주역인 젊은 세 사람이 비극적 운명으로 얽혀 젊은 모두 파멸한다는 처절한 비극이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스페인의 귀족 칼라트라바 후작의 딸 레오노라와 잉카 제국 왕가 혈통인 돈 알바로는 사랑하는 연인 사이로 이 둘의 사랑을 반대하는 후작 가문을 피해 몰래 도망갈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는 후작에게 발각되고 이어 알바로의 총기 오발로 후작을 죽게 만드는데 후작은 자신의 딸을 저주하며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둘은 헤어져 도망자 신세가 된다. 분노한 레오노라의 오빠인 돈 카를로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변장을 하고 이 둘의 행방을 쫓는다. 레오노라는 먼 친척인 수도원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여 은신하고 알바로는 전쟁터에서 이름을 바꾼 카를로를 만나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체 우정을 맹세하고 친구가 된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총을 맞고 중상을 입은 알바로가 수술 전 카를로에게 자신의 상자를 맡기게 되는데 묘한 기운을 느낀 카를로가 편지 상자를 열어 동생 레오노라의 초상화를 발견하며 둘 사이의 악연이 밝혀진다. 이에 카를로는 알바로에게 결투를 신청하지만, 곧 제지되고, 알바로는 삶의 깊은 회의를 느끼며 군대를 떠나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5년의 세월이 지나고 수도원의 수사가 되어있는 알바로를 카를로는 끈질긴 추적 끝에 다시 찾아내 결투를 신청한다. 둘은 결투를 위해 바위 동굴 앞으로 가는데,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레오노라가 은신하고 있는 곳이다. 결투에서 알바로에게 찔린 카를로는 죽어가면서 알바로에게 종부성사를 간청하고, 알바로는 동굴 안에 사는 수사에게 다급하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레오노라는 알바로와 죽어가는 오빠 카를로를 함께 발견하게 되는데 레오노라를 알아본 카를로는 저주를 퍼부으며 마지막 힘을 다해 여동생을 칼로 찌른다. 이때 달려온 과르디아노 신부와 알바로에게 레오노라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내 피로 오빠의 복수가 이루어졌다고 말하며 알바로에게 먼저 하늘나라에 가 있겠다고 말한다. 자신의 너무나도 잔인한 운명을 저주하는 알바로에게 과르디아노 신부는 알바로를 타이르며 세상을 떠나는 영혼을 위해 함께 위로의 기도를 올리라 주문하고 레오노라가 조용히 숨을 거두며 이 작품은 막을 내리게 된다.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공연 장면.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
줄거리를 보면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지극히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이 많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베르디는 운명이라는 메타포를 주장했으며, 그의 음악 또한 참담함을 겪는 당사자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잘 표현했기 때문에, 극의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것이다.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에서 알바로 역의 테너 카루소와 레오노라 역의 퐁셀레가 연기를 펼치고 있다. |
<운명의 힘>은 서곡뿐만 아니라, 레오노라의 아리아 “주님, 제게 평화를 주소서 Pace, pace mio Dio”, 알바로와 카를로의 2중창 등 수려한 레퍼토리로 가득차 있는 작품이다. 동영상으로 전편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명가수의 음원을 통해 작품을 오로지 귀로 이해해 보는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을 한껏 느끼는 방법이라고 사료된다.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
오페라 ‘운명의 힘’ 포스터. 출처 위키피디아 |
음악 박사 이용숙은 다음과 같이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을 설명하였다. “이 오페라는 어떤 장면보다도 서곡이 유명합니다. 금관악기가 운명의 타격을 표현하는 듯한 장중한 음으로 곡을 열면, 현악기들이 휘몰아치는 운명의 소용돌이를 그려내고, 뒤이어 목관악기가 남자주인공 돈 알바로의 구슬픈 테마를 연주합니다. 그에 이어지는 현악기의 트레몰로는 여주인공 레오노라의 간절한 기도와 비극적 운명을 나타냅니다. 후반부로 가면서 곡은 점점 박진감이 넘치고 팀파니와 심벌즈 등의 타악기까지 가세해 밝고 힘찬 분위기로 전진해가지만, 결국 이 모든 역동성과 파워는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운명의 힘의 승리를 말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