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클로스 작 ‘자화상’. 이선 제공 |
사진이 처음 등장한 20세기 미술계의 모더니즘 경향에 정면으로 대치되며 현대미술이 발전하게 되는데, 대중들에게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극사실주의 작품들을 더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와 달리 미술계 사람들에게 회의적 시선이 많았다. 일단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을 만든다는 목적에서는 현상을 그대로 찍은 사진을 찍는 게 극사실적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훨씬 더 비용면에서 효율적이고 간편하다. 형이상학적인 개념인 예술가의 공력(노력과 작가의 예술혼)이 들어갔기 때문에 사진과는 차별화된다는 주장도 있고, 시각적인 일반측면에서 사진이나 극사실주의나 동일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분분하다.
이 극사실주의 즉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은 ‘리얼리즘 이상의 리얼리즘’이란 뜻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술의 한 경향을 나타낸다.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미술경향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그려내는 기법이다.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과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 프랑스 철학자, 대중과 문화 미디어와 소비사회에 대한 시뮬라크르 이론을 내놓았다)철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미술 경향이다. 사진이나 실물처럼 극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취한다. 확대하면 흐려지거나 깨지는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화풍을 추구할 때도 있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시간과 실력을 요구한다. 작가마다 사용하는 재료가 다르며 실물, 상상, 생각으로 그리기도 하지만 대개 사진을 레퍼런스 삼아 그린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빛의 방향이 달라지거나 한다면 그리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극사실주의와 사진은 ‘사실적인’ 그림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긴 하지만 결국 그 사실감이란 것은 작가의 주관이 들어간 것. 물체를 있는 그대로 찍는다는 사진 역시, 실제로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조명과 셔터 타이밍만으로도 수없이 다른 결과와 느낌을 줄 수 있으며, 사실적이라는 그림 역시 ‘사실성’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주관이 들어가 있다.
척 클로스 작 ‘Roy II’. 이선 제공 |
“나는 영감을 기다리는 시간에 작업을 한다. 나는 영감을 기다리지 않는다”
극사실주 작가인 그의 대학진학 후 초기 작업은 정반대의 추상 작품이었다. 당시 그는 추상표현주의 작가인 ‘윌렘 드 쿠닝(20세기 네덜란드 화가, Willem de Kooning, 1904~1997)’의 영향을 받았지만, 예일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당시의 예일 대학교의 교육 목표는 스스로가 무한한 상상력과 의지에 따른 창조적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워싱턴 대학과 예일 대학을 졸업한 척 클로스는 수여받은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이후 빈 예술대학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사진의 방식을 이용해 작업하는 특유의 작업 제작 기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67년 뉴욕시티로 이주한 클로스는 자신의 유명한 흑백 초상화들을 선보였다. 1969년 열린 현대 미국회화의 연례 전시는 그의 첫 번째 미술관 전시가 되었다. 이듬해 그는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했고, 포토리얼리즘 혹은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알려진 미술 운동의 중심인물로 급속히 입지를 굳혀갔다. 환경의 영향인지 그의 탁월한 소묘 능력과 색채감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는 자신의 재능에 대해 불안해하며 만족하지 못했고, 익숙한 방식보다는 늘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좌절하며 작업을 이루어 냈다고 한다. 이후 1988년 척추혈관 손상 후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에 의존하며 작업해왔다. 그리고 그는 작업의 모델이자 제자였던 여성들의 성희롱 폭로로 뉴욕 타임즈와 인터뷰를 통해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척 클로스는 클린턴 대통령을 그려 유명세를 타면서 국립 예술훈장을 받았고 미국 예술 문화아카데미의 회원으로 활동했었다.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뒤 정식적인 작업이 어려워졌고, 2021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작가는 오직 한 가지 주제, 즉 인간 형상(얼굴)을 이용해 작업 했었다. 캔버스 안의 사람의 사실적인 얼굴들은 주변의 동료 화가와 친구·가족 등 지극히 개인적 인물들을 그린 것이다. 대상의 얼굴 사진을 참고한 작가는 그림의 한쪽 모서리에서 시작해 반대쪽을 향해 작업하는 체계적 작업방식을 이용한다. 이때 그림을 이루는 각각의 분리 요소들은 마치 하나의 테세라(tessera, 모자이크용 각석)처럼 전체를 위해 기여하는 개별자로 기능하게 된다.
척 클로스 작 ‘엠마’. 이선 제공 |
척 클로스 ‘자화상’. 이선 제공 |
척 클로스는 인간의 한계이자 신체장애의 한계를 뛰어넘은 불굴의 예술가로 많은 예술가들에게 알려져 있다. 그런 신체적인 스트레스와 압박을 어쩌면 자신보다 약한 여성 모델들을 상대로 외모와 신체를 평가하고 부정적인 성적 발언을 하여 미투 운동(Me Too Movement) 논란도 잊을 수 없다. 당시 명성을 가진 많은 미국의 남성 화가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였을지라도, 자신 작업의 진실성을 폭발적으로 그려내는 창작자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논란이기도 하였다.
결국 시대의 창작자는 자신이 살아가며 느낀 생각과 기억을 사실과 감정의 경계에서 독자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사진과 그림 사이, 일상과 예술 그 넘어 무엇을 캔버스 안에 가득 채우는지가 아닌 어떤 사유와 메시지를 보이지 않게 담아낼지 분명한 이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