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인류와 존재물의 소리’…세가지 소리 유형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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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인류와 존재물의 소리’…세가지 소리 유형 구성
●광주비엔날레 본관 전시 소개
‘부딪힘·겹침·처음’ 등 3개 섹션
분쟁·탈식민·기후위기·소수자 등
공간 관련한 모든 사회문제 다뤄
  • 입력 : 2024. 09.08(일) 18:34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주말인 8일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린 제15회 광주비엔나레에서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기후변화 등으로 위기에 처한 지구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표현한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나건호 기자
판소리는 소리꾼과 관객, 마당이 어우러진 음악장르로 곧 ‘사람들이 모인 곳의 소리’를 의미한다. 지난 7일 개막한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전시에서는 ‘판소리’ 공간인 ‘판’을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판)의 의미를 담아 세밀하게 들여다봄으로써, 그 안에 담긴 인류와 존재물의 ‘소리’를 향유한다. 광주비엔날레 본관 전시는 세 가지 소리 유형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동선을 구성했다. 관객들은 ‘부딪침 소리’, ‘겹침 소리’, ‘처음 소리’라는 세 가지 소리 패턴이 바탕이 된 전시를 경험하며 인류세 변이를 목격하게 된다.

●제1, 2 전시실 ‘부딪침 소리’

관람객을 처음 맞이하는 것은 ‘부딪침 소리(feedback effect)’ 섹션이다. ‘부딪침 소리’는 수신기가 가까울 때 발생하는 독특한 소리를 뜻한다. 즉 인간 활동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사람 간, 종간 관계는 더욱 고밀도화되고, 이 밀도 높은 공간을 음성 이미지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공간 부족으로 인해 벌어지는 지구의 불협화음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전시의 첫 문을 여는 작품은 나이지리아의 역동적인 도시 라고스 거리에서 녹음한 소리를 바탕으로 작업한 에메카 오그보의 작품 ‘Oju 2.0’이다.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걸으며 듣는 도시의 소음만으로 라고스라는 도시의 성격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산업화와 세계화, 팬데믹, 기후변화로 혼란을 겪은 인간은 환경과 불협화음을 내며 살고 있다.

피터 부겐후트의 작품은 동물의 털이나 피 같은 유기물, 플라스틱과 고철 같은 합성물 등 흔히 폐기물로 분류되는 재료로 만들어졌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이는 ‘맹인을 인도하는 맹인’ 시리즈는 작품의 재료로 쓰인 낡고 해진 폐기물의 어두운 색감으로 단순히 우울함이나 암담한 미래만을 표현하지 않는다. 자연에서 노화와 쇠락은 오히려 생성과 변화와 연결되는 중요한 지점임을 암시한다.

노엘 W. 앤더슨은 영화 ‘블루스 브라더스’에서 목사 역으로 분한 제임스 브라운이 설교를 하는 장면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태피스트리에 사운드 설치를 결합한 세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사운드는 판소리와 제임스 브라운의 노래가 섞여 흘러나오는데, 판소리가 서민의 음악이었던 것처럼 백인 우월주의 속 흑인의 존재와 투쟁을 상징하는 제임스 브라운의 노래가 교차하며 소리의 연대를 이룬다.

안드리스우스 아루티우니안의 ‘아래’는 석유 추출의 부산물인 천연 역청이 실용적 목적과 제의적 목적을 오가는 재료라는 것에 주목하고 역청이 지표면으로 올라올 때 발생하는 소리를 활용한 사운드 설치 작품을 제작했다. 신화와 현대를 오가는 물성의 유동성과 정지된 형태감이 저주파 신호음과 어우러져 매혹적인 재료의 특성을 강조한다.

●제3전시실 ‘겹침 소리’

‘겹침 소리(polyphony)’ 섹션에는 여러 초점을 가진 다층적 세계관에 주목하는 작가들의 작업이 전시된 가운데 필립 자흐의 ‘부드러운 폐허’로 시작된다. 작가가 산책하다 본 부화된 고치로 가득한 실크 거미줄이 공원의 나무들을 에워싸고 있는 장면과 옷을 공개적으로 교환하는 도시 문화인 프리 파일에 착안한 작품이다. 인간과 비인간, 폐기된 외피, 물질과 비물질을 관통하며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미국 출신의 맥스 후퍼 슈나이더의 ‘용해의 들판’은 분해된 유기 요소나 주운 물건, 합성 폐기물에 혁신적인 재료 기술을 결합한 설치 작품으로 동식물과 비인간 개체가 공존하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든다. 생태학적 역동성을 탐구하는 슈나이더의 대형 설치작업은 인류세 이후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4, 5 전시실 ‘처음 소리’

‘처음 소리(Primordial sound)’ 섹션에서 작가들은 비인간적 세계와 이산화탄소, 최루탄 가스, 환경호르몬, 비말, 바이러스가 역사의 주체가 되는 분자와 우주를 탐구한다. 포화상태의 세계에서 예술가들은 비로소 대안적 세계를 탐구한다.

바닷물의 화학반응을 이용해 일상적인 사물과 장면에 미시감을 부여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출신 비앙카 봉디의 ‘길고 어두운 헤엄’은 하얀 소금 사막과 식물, 의자 등 몽환적 풍경과 일상적 물건이 배치되면서 관객들이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작품에 빠져들며 공간에 대한 초감각적 경험을 유도한다.

봉디 작품의 뒤편에 널따랗게 걸린 도미니크 놀스의 대형 회화 작품 ‘모든 계절에 내 사랑하는 삶에게 어울리는 엄숙하고 품위 있는 장례식’은 작가의 개인사에서 비롯된 말이 작품 중심 소재로 등장한다. 선사시대에 사용하는 빨강, 주황, 황토색의 색감을 사용하여 캔버스를 가로지는 말의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그려내 인간과 말의 관계로 비롯되는 다종간의 우정을 담아낸다.
주말인 8일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린 제15회 광주비엔나레에서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기후변화 등으로 위기에 처한 지구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표현한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나건호 기자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