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광주 동구 전남대학교병원 로비에서 환자들이 진료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윤준명 기자 |
의료공백이 반년 이상 지속되며 지역 의료 시스템 붕괴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광주지역 상급종합병원인 전남대학교·조선대학교병원에서도 진료가 제한되거나 미뤄지는 경우가 잦아 환자들은 피로감과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전 찾은 광주 동구 전남대학교병원에는 이른 아침부터 환자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병원을 찾은 외래 환자들은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할까 초조해했고, 입원 중인 환자들도 의료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병원 측으로부터 일방적인 퇴원 통보를 받게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를 보였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정부와 의사들 간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반년 째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김모(72)씨는 “환자들이 너무 몰려 진료가 오래 걸렸다. 오늘은 그래도 날짜가 밀리지 않고 진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의료공백이 심화하면 앞으로는 상황이 어떻게 변해갈지 모른다”며 “현 시점에서 크게 아프거나 다치면 손도 제대로 못 써보고 죽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중환자와 응급환자들의 고통은 더욱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지인의 병문안을 위해 병원을 찾은 이모(42)씨도 “정부와 의사들의 강대강 대치가 지속되면서 지켜보는 국민들은 피로감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며 “적절한 타협없이 각자의 입장만 관철하는 양측 모두에게 실망스럽다. 국민들이 계속해서 죽어나가더라도 상관 없다는 것인가”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지난달 29일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로비에서 환자들이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윤준명 기자 |
이날 전국보건의료노조 조선대병원지부가 총파업에 돌입해 1층 원무과 앞 로비에는 노조의 농성장이 들어섰고 병원 곳곳에는 총파업 안내문이 내걸렸다. 환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파업 안내문을 살펴봤다.
병원 내부는 농성하는 의료인들과 병원을 찾은 시민들로 온통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의사에 이어 간호사 등 일선 의료현장을 지켜온 의료인들의 파업에 환자들은 불안감을 내비쳤다.
진료를 기다리던 환자들은 연신 한숨을 내쉬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유방암 투병을 하고 있다고 밝힌 채모(63)씨는 “거주지인 장흥의 병원에서 암 확진판정을 받고 대형 병원인 화순 전남대학교병원으로 전원을 갔다”며 “전남대학교병원에서는 당장 암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동이 없어 입원이 불가하다고 하더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래서 광주 기독병원을 찾아 갔는데 거기서는 방사선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수차례 장흥과 광주를 오가며 당장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다가 조선대학교병원에 왔다”며 “암과 같은 중증환자들은 의료공백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기분이다. 상황이 악화되거나 장기화되면 제때 치료를 못받게 될까봐 너무 두렵다”고 하소연했다.
심방세동과 호흡기 질환을 앓아 외래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정준호(71)씨도 “의정갈등 장기화에 따른 인력 부족 현상 등으로 의료 현장의 상황이 어렵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하지만 아픈 사람들을 생각하면 의료인의 파업은 어떤 경우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정씨는 “조건이 맞지 않더라도 의료인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현장을 지키면서 목소리를 내줘야 하는 것이 옳다. 의사고 간호사고 모두 병원을 떠나면 환자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이다”고 호소했다.
일부 시민들은 의료공백과 함께 다가오는 추석 연휴 동네 병원의 휴무로 대형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려 응급실 대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다.
강선미(18)양은 “의료대란이 현실화하는 것 같아 불안이 크다. 결국 가장 큰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이 껴안는 셈”이라며 “언제까지 시민들이 불안에 시달려야 하나”며 불만을 드러냈다.
강양은 “동네 병원이 휴진하는 추석연휴에는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몰리고 일반 진료도 받지 않아 응급실 대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며 “의료 셧다운에 대비해 정부와 병원 측은 확실한 대안을 마련해야만 한다”고 요구했다.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