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주년 광복절인 15일 오후 광주 동구 한 아파트. 수십 세대 중 한 세대에만 태극기가 게양돼 있다. 정상아 기자 |
제79주년 광복절인 15일 광주 동구의 한 아파트. 국경일인 이날 대부분의 세대에는 태극기가 내걸리지 않았다. 20층이 훌쩍 넘어가는 아파트임에도 태극기는 고작 한 개만 걸려 있었다.
인근 다른 아파트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반 가정집에서도 태극기를 쉽게 볼 수 있었던 예전의 국경일 풍경은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처럼 국경일에 순국선열을 기리는 태극기 게양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어 역사 계승의 퇴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특히 대부분의 시민이 태극기 판매처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홍보가 요구된다.
대한민국 국기법 제8조에 따르면 국기 게양일은 국경일인 삼일절(3월1일), 제헌절(7월17일), 광복절(8월15일), 개천절(10월3일), 한글날(10월9일)과 기념일인 현충일(6월6일), 국군의 날(10월1일), 국가장일 등이다.
태극기 게양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은 해당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해야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으로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광주 광산구 한 아파트 주민 최진명(57)씨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경일만 되면 장롱 속에 보관해 뒀던 태극기를 꺼내 집 앞이나 아파트 베란다에 내거는 것을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태극기 게양을 귀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2022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국기 게양 행태 및 태극기 이미지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75%는 ‘국경일이나 주요 기념일에는 집에 태극기를 걸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국경일 및 주요 기념일에 태극기를 건다’고 답한 응답자는 47%로 절반도 되지 않았다.
광복절에 태극기를 걸지 않은 이유로는 ‘집에 태극기가 없어서’와 ‘집에 태극기를 걸 곳이 마땅치 않아서’라고 답한 응답자가 각각 42%로 가장 많았다.
신축 아파트나 오피스텔의 경우 국기 꽂이가 별도로 마련되지 않은 점도 태극기가 걸린 곳을 찾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난간이 있는 경우 세대마다 국기봉을 꽂을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2021년 법 개정으로 각 동 지상 출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됐으며, 난간이 없고 통창으로 된 신축 아파트가 점차 늘면서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는 세대가 많아졌다.
광주 서구 한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김경민(23)씨는 “집에 태극기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며 “태극기를 달고 싶어도 집에 국기 꽂이가 따로 없다 보니 안 걸게 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시민이 태극기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다.
광주에서는 시청과 각 구청,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태극기를 판매하고 있으나 이를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장효정(30)씨는 “어렸을 때 부모님과 마트에서 태극기를 산 기억이 있다”며 “요즘엔 판매하는 곳이 없길래 온라인으로 구매해야 하는 줄 알았다.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구매가 가능하다는 건 처음 들어봤다”고 당황했다.
윤길주(55)씨는 “광복절이라 태극기를 걸어볼까 생각하긴 했지만 자주 가는 마트에서는 안 팔고 있더라.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결국 포기했다”고 토로했다.
광주 공공기관들은 태극기 게양 문화 확산으로 국경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적극 행정을 펼칠 계획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민원실 앞에 태극기를 판매한다는 안내문을 붙이는 방식으로 홍보하고 있다. 태극기 판매와 함께 훼손된 태극기 수거도 시청과 구청, 행정복지센터 등의 민원실에서 추진 중이다”며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상아 기자 sanga.je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