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모란과 풍뎅이의 춤’ 문선영 민화의 새로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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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모란과 풍뎅이의 춤’ 문선영 민화의 새로운 세계
399. 문선영의 모란 가로지르기
보길도의 윤슬, 잔바람에도 수 천 수 만의 문양을 지어내는 물비늘 같은 모란 풍뎅이 그림이 길어 올린 한국 민화의 현재, 나아가 웅숭깊은 미래를 시방 우리가 확인하는 중이다.
  • 입력 : 2024. 06.13(목) 17:23
문선영 작, 춤추는 모란 1.
문선영 작, 춤추는 모란 2.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제는 어린아이라도 알 만한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한 구절이다. 모란에 스며든 덧없음과 기다림을 노래한 시라고나 할까. 하지만 일반적인 꽃말을 찾아보면, ‘부귀’, ‘영화’, ‘왕자의 품격’, ‘행복한 결혼’ 등으로 나온다. 그래서 꽃 중의 왕이라 했을 것이다. 슬픔 따위는 스며들 여지가 없다. 영랑도 부귀와 영화가 시들어 버리는 것이 아쉬워 이리 노래했을 것이다. 영랑의 시를 떠올린 것은 문선영 작가의 주요 테마가 모란이기 때문이다. 민화계에서 가장 핫하다는 문선영의 작품들을 둘러보면서 느낀 감회다. 주지하듯이 모란은 민화뿐 아니라 각양의 전통예술에서 많이 다룬다. 예컨대 혼례식 때 대례병(大禮屛)으로 모란 병풍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경도잡지>에 보면 공적인 큰 잔치에 모란 병풍을 쓴다고 하였다. 고려청자 중에서도 모란무늬가 선호되었고 궁중에서도 모란무늬가 애호되었다. 심지어 상여에서도 사용되었다. 번영과 재생의 상징으로 중국과 공유하는 예술관이랄 수 있다. 모란으로 부귀를 암시하는 그림을 우의도(寓意圖)라고 한다. 모란과 만초(蔓草) 혹은 모란과 당초를 그리면 부귀만대(富貴萬代), 모란과 월계를 그리면 부귀장춘(富貴長春), 모란과 대 혹은 화병을 그리면 부귀평안(富貴平安), 모란과 고양이를 그리면 정오모란(正午牧丹), 장닭과 모란을 그리면 공명부귀(功名富貴), 봉황과 모란을 그리면 봉황희모란(鳳凰戱牧丹)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꽃의 제왕이라는 뜻의 화왕(花王), 백화왕, 부귀화, 부귀초, 천향국색, 낙양화, 상객, 귀객, 화신, 화사, 화사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 하나의 힌트, 모란은 늘 어떤 무엇과 함께 그려진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모란괴석도(牧丹怪石圖)이다. 부귀안락과 남녀화합을 상징하는 모란과 장수를 상징하는 괴석을 함께 그린 그림을 말한다.



문선영의 ‘모란 풍뎅이 그림’에 스민 물비늘 가락



그런데 문선영의 모란은 전통적인 격조와는 사뭇 다른 꽃이 되어 우리를 맞이한다. 모란이 일대 변신을 꾀한 셈이다. 꽃잎들은 마치 호랑이의 털처럼 섬세해지거나 고양이의 털처럼 가벼워져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파도에도 유동한다. 가느다란 호흡으로도, 살짝 스치고 지나는 손짓만으로도, 아니 옷깃만 스치는 어떤 마음만으로도 움직인다. 그림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유동의 진폭이 크다. 이것은 파동이자 울림이며 코드를 맞춘 주파수이자 저 깊은 횡격막에 가 닿는 진동이다. 그렇다고 세밀화처럼 정교한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분청사기의 귀얄문처럼 투박하기도 하고 일필휘지로 그어 내린 붓처럼 거칠다. 그래서다. 섬세와 투박이 서로를 보듬고 구르는 자진몰이 혹은 휘몰이 가락을 닮았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선녀들의 날개옷을 닮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어떤 인연이, 어떤 사연이, 어떤 슬픔 혹은 기쁨이 그림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일까. 나는 이 모란 시리즈들을 보며 남농 허건의 소나무를 떠올렸다. 남농이 먹빛의 농담을 이용해 대범하고 거칠게 그러나 기운 생동하는 운필감으로 소나무를 그렸다면, 문선영은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꽃잎들을 살아 숨 쉬게 해준다. 민화가 그간 모작(模作)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십여 년 사이, 천지개벽이라도 한 듯 일취월장해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보아하니 문선영의 모란 연대기가 깊다. 초기작부터 모란을 그린 것은 아니다. 예컨대 작품 <종이학>은 기왕의 민화 작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일종의 방작(倣作)의 단계다. 전통적인 모란 그림에 자신의 색깔을 덧입혔다. 연대기를 거슬러 오르면 베갯모 시리즈가 등장한다. 민화 작가로 데뷔하는 초기 패턴일 것이다. 왜 베갯모에 작가의 관심이 꽂혔는가에 대해서는 차차 분석한다. 주목하는 것은 베갯모 이전으로 거슬러 오르다 보니 놀랍게도 바다와 바람과 숲과 놀이터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물론 고향 보길도의 바닷가와 갯바람과 자갈 많은 해안가의 놀이터와 울창한 마을 숲과 또 어쩌면 외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유년의 이미저리일 것이다. 윤동주는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서시, 자화상, 별 헤는 밤 등 결 고운 노래들을 남긴 바 있다. 문선영은 그의 모란 시리즈에서 바다와 바람과 숲과 놀이터를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후기 작품들로 올수록 배경에 배치된 물상들이 모란과 더불어 덩달아 숨 쉬고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비와 매미와 혹은 몇 마리의 새들, 특히 고래와 상어와 혹은 이름 모를 다양한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등장한다. 때때로 로봇 등 아이들의 장난감이 등장하기도 하고, 입을 벌린 물고기들이 코믹하게 장난을 치기도 한다. 바다와 바람만 있는게 아니다. 하늘은 바다와 구별되지 않고 숲은 마을과 구별되지 않는다. 하늘이 바다이고 바다가 하늘이며 숲과 나무가 마을이고 놀이터다. 적어도 문선영이 그리는 자연은 물아일체, 자타의 구분이 없이 통합되어 있다. 특히 모란과 함께 늘 등장하는 장수풍뎅이가 주목의 대상이다. 나는 이것이 전통적인 모란괴석도(牡丹怪石圖)의 괴석을 대치했다고 보고 있다. 왜 괴석 대신 장수풍뎅이로 바꾼 것일까? 생동하는 가락 때문이다. 갯바람 불어 자진모리로 휘모리로 휘날리며 생동하는데 어찌 괴석을 그대로 둘 수 있겠는가. 괴석을 아예 장수풍뎅이로 바꾸어 살아 숨 쉬게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문선영의 시리즈에 “모란 풍뎅이 그림”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보길도의 윤슬, 잔바람에도 수 천 수 만의 문양을 지어내는 물비늘 같은 모란 풍뎅이 그림이 길어 올린 한국 민화의 현재, 나아가 웅숭깊은 미래를 시방 우리가 확인하는 중이다.



남도인문학팁

완도가 낳은 딸, 세계 민화계가 주목하는 문선영 작가



현재 한국 민화계에 가장 핫하다는 문선영 작가는 완도 보길도 출신이다. 어렸을 때부터 바닷가에서 조개 잡고 놀면서 자랐다. 집안이 가난하여 제때 놀지 못하였기에 민화를 놀이터로 여긴다고 말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모란과 장수풍뎅이의 대칭, 보색의 대칭 외에 컨텍스트를 이루는 세계가 사실은 하늘이고 바다며 숲이고 놀이터다. 그림이 기운생동하는 것은 필경 보길도의 바람과 파도 때문이다. 지난 인사동 갤러리은 오프닝 초대 전시 도록의 초대말을 쓴 정병모는 “모란의 파도, 열정의 화신”이라고 제목을 뽑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모란 파도는 이전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바다의 상상력이다. 그의 작품을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바다를 나타냈다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뜨거운 열망으로 설계된 점이다. 그의 모란은 점차 꿈틀꿈틀 움직인다. 바람에 휘날리는 모란에서 격정적인 모란으로 변해간다. 열정의 화신이 춤을 춘다.” 그래서 그의 모란이 전통적인 모란의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새로운 기폭제가 되고 있다고 결론 짓는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탠다. 바로 보길도의 갯바람과 후박나무숲, 동백나무숲이 지어낸 노래와 가락들이다. 문선영에게 물었다. 무엇이 가장 인상에 남아있나? 바로 대답이 돌아온다. 보길도의 노래다. 보길도의 민요다. 멀리서라도 전통적인 노래를 들으면 심쿵한다. 가슴이 뛴다. 나는 비로소 알아차렸다. 베갯모를 넘어서고 이미 모란꽃도 넘어선 그의 예술세계가 펼칠 미래 말이다. 수년간 싱가포르와 미국 등 해외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며 민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데서 민화 그림의 힘, 문화의 저력을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문선영 개인을 넘어 한국 민화의 미래이자 어쩌면 고향 완도의 미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