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농 레스꼬 4막 공연 장면.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
수많은 오페라 여주인공 중 요부로 주목을 받은 대표적 인물로 비제 오페라 <카르멘>의 여주인공 카르멘과 함께 푸치니의 오페라 <마농 레스꼬>의 마농을 빼놓고 이야기 할수 없다. 이러한 오페라 마농의 이야기는 1731년 프랑스 소설가 아베 프레보(Abbe Prevost, 1697~1763)가 쓴 연애 소설 ‘마농 레스코와 기사 데 그리외 이야기, Histoire du Chevalier des Grieux, et de Manon Lescaut’가 원작으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당시 보수적인 프랑스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프레보가 쓴 파격적인 스토리는 제재의 대상으로 한때 출판 금지를 당하기까지 하였으나 그럼에도불구하고 프랑스 대중들에게 욕망덩어리로 점철된 이 이야기는 더욱 사랑을 받게 된다. 그리고 대중의 강력한 증쇄 요청으로 1753년에 작가 프레보는 원작에 더 자극적인 내용을 삽입해 개정판을 발표하고 이 마농의 이야기는 프랑스 문학 역사상 가장 많이 증판 된 작품으로 1731년부터 1981년까지 250번 이상의 판본이 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마농역의 크리스틴 오폴레와 데 그리외 역의 로베르토 알라냐.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2016년 공연 장면) |
마치 우리나라의 아침드라마처럼 요부나 바람둥이, 사기꾼 같은 주인공과 그를 통해 기생하는 인간들의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을 기막히게 묘사한 이 작품은 소설뿐만 아니라 공연예술인 영화, 연극, 오페라, 발레 등으로도 다수 작품이 제작되었다. 이번에 이야기할 푸치니의 오페라 <마농 레스꼬, Manon Lescaut, 1893> 역시 이 소설을 가져와 제작한 작품으로 푸치니가 <마농 레스꼬>의 오페라화를 생각하고 있을 때는 청년 작가로 실패를 맛보며 성장하고 있을 때였다. 이미 프랑스의 대 작곡가 마스네(Jules Emile Frederic Massenet, 1842~1912)의 오페라 <마농, Manon, 1884>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누리며 찬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푸치니의 이러한 생각은 주변인에게 우려를 안겨주었다. 신인 작곡가의 기존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작품을 향한 도전은 너무 무모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푸치니 생각은 완고했다. 이전 <요정빌리>와 <에드가르>의 실패가 대본의 문제였음을 인식한 푸치니는 레온까발로(Ruggero Leoncavalo), 올리바(Domenico Oliva) 등과 대본 작업을 했지만, 완성본을 본 푸치니는 불만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푸치니는 이 대본으로 작곡을 계속할 수 없어 이들과 결별하고 푸치니는 그와 함께 황금의 시기를 만든 대본가 자코자(Giuseppe Sacosa)와 일리카(Luigi Illica)의 대본 수정으로 만족하는 완성본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푸치니와 대본가 들은 될 수 있으면 마스네의 <마농>과 중첩을 회피하는 노력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회피 노력으로 인해 대본의 약점이 조금 드러나기도 했으나, 워낙 뛰어난 원작을 소재화했기 때문에 구조적인 측면은 이전 푸치니의 두 작품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대본이라 할 수 있었다.
푸치니는 <마농 레스꼬>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지휘자의 반열에 올라가게 되었다. 이후 제작된 <토스카>, <라 보엠>, <나비부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작품 안에는 마치 화려한 멋진 의복처럼, 푸치니의 수려한 선율로 수놓았으며, 음악의 사실적 묘사와 탄탄한 구조는 기품과 아름다움을 더하게 만들었다. 파격적인 소재일지라도 푸치니의 오페라는 이를 음악의 아름다움으로 바라보게 했다.
1막의 무대배경은 프랑스 북부 아미앙 시의 여관집 앞 광장이다. 마농은 그녀의 오빠 레스코와 함께 이곳에 도착했다. 기사 데 그리외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레스코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마농과 이야기를 나누고 둘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늙은 재무관 제롱트는 마농을 연모하고 있으며, 여관주인에게 마차를 빌려 마농을 납치하려는 계략을 세운다. 하지만 이를 데 그리외에게 알린 에드몬드의 도움으로 데 그리외와 마농은 준비해 둔 마차로 도망가고 사라진 마농을 찾기 위해 제롱트와 레스코는 파리로 간다.
마농 역의 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와 데 그리외역의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1980년 공연 장면) |
2막은 제롱트의 호화로운 집이다. 데 그리외와 사랑에 빠진 것도 잠시, 마농은 부유한 생활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 제롱트의 애첩이 되었다. 호사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는 이 화려한 집에서 마농은 데 그리외와 함께 살았던 허름하고 불편했지만, 행복했던 생활을 그리워한다. 제롱트가 파티를 위해 먼저 떠나고 데 그리외가 마농을 찾아온다. 사치와 허영심 때문에 데 그리외를 떠난 마농, 그럼에도불구하고 데 그리외는 다시 사랑을 호소하는 마농을 포옹한다. 이때 제롱트가 들어오고, 마농은 거울을 집어 들어 그의 늙고 흉한 얼굴을 조소한다. 제롱트는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고 데 그리외는 마농에게 빨리 도망치자고 말하지만, 그녀는 도망가기 전 보석과 재물을 챙기느라 방에 남아있다가 경찰에게 절도와 공공장소에서의 매춘이라는 죄명으로 체포당한다.
마농 레스꼬의 판권을 가진 리코르디사가 만든 공연 엽서. |
3막은 이른 아침의 르 아브르 항구의 부둣가이다. 마농은 다른 여자 죄수들과 함께 임시 감옥에서 미국행 배를 기다리고 있다. 해가 뜨기 전에 데 그리외와 레스코는 감옥에 갇혀 있는 마농을 구하기 위해 감옥 근처에서 기회를 엿보지만 삼엄한 경비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데 그리외는 몰래 감옥 창살을 통해 마농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지만 이도 경비에 들켜 할 수 없게 된다. 마농이 배에 탈 때, 데 그리외는 그녀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이어서 데 그리외는 선장에게 뱃사람으로 미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데 그리외의 간절하고 애틋한 눈물의 호소에 감동한 선장은 데 그리외의 승선을 허가하고 그는 마농과 함께 미국으로 간다.
4막은 미국의 남부 뉴올리언즈 주변의 황량한 사막이다.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켜 프랑스령에 있을 수 없는 마농과 데 그리외는 추적이 어려운 인적이 드문 황야를 헤매고 있다. 마농은 지쳐서 더이상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하고 잠시 기절한다. 데 그리외는 마농을 붙잡고 용기를 가지라 말하고, 마농은 의식을 되찾으며 목마르다고 말한다. 데 그리외는 물을 찾아 마농을 두고 황량한 벌판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오게 된다. 마농이 거의 숨을 거두려 하자 함께 죽고 싶다고 말하는 데 그리외를 말리며 마농은 마지막 키스를 나눈 후 서서히 죽어간다. 데 그리외는 계속해서 용기를 가지고 힘을 내라 절규하지만, 결국 그녀는 숨을 거두고 마농을 붙잡고 엎드려 통곡하는 데 그리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마농 레스꼬 4막 중 마농의 죽음에 한탄하는 데 그리외 역의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2016년 공연 장면) |
전형적인 팜므파탈 스토리에 기반을 둔 오페라 <마농 레스꼬>는 프레보의 원작 소설의 풍부한 묘사를 사실적으로 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원작을 읽고 <마농 레스꼬>를 관람한다면 실망스러울 수 있다. 원작 소설에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데 그리외와 요부 마농의 모습이 대비되며, 오페라에서 표현한 한없는 사랑보다 잘못된 만남으로 파괴되는 데 그리외 모습에 더 초점이 맞추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악의 축으로 마농의 오빠인 레스코와 제롱트란 배역의 사실적 묘사 역시 독자에게 흥미를 주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마농 레스꼬>는 풍부한 원작의 스토리를 어떻게 시 공간의 제약으로 유발되는 오페라 영역의 부조화를 극복해 낼까 많은 고민이 엿보인 작품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본가와 푸치니는 효율적인 편집으로 이뤄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참여한 여러 대본가는 이 멋진 스토리를 최선을 다해 탄탄하고 현실성 있는 구조로 만들어 냈으며 여기에 푸치니는 음악으로 영혼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작업은 이어 발표된 푸치니의 <라 보엠>, <토스카> 등을 세계 최정상에 올려놓는 밑거름이 되었다.
근래에는 과학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혁신적인 무대 기술의 변화가 이루어졌으며, 작품에 담긴 정심을 다양한 시각 안에서 재현하고 연출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융복합 예술인 오페라는 발전된 기술과 함께 이제 음악과 스토리가 지닌 한계를 허물고 더욱 세련되고 구조화된 공연예술로 관객에게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 Tip> 푸치니의 오페라 <마농 레스꼬> 중 4막 중 마농이 부르는 ‘Sola, perduta abbandonata-홀로 외로이 버려져’는 푸치니의 오페라 아리아 레퍼토리 중 꼭 들어야 하는 수작으로 꼽히는 곡이다. 이 곡은 도망자가 되어 그녀의 연인인 데 그리외와 황량한 사막에서 죽음을 앞두고 부르는 아리아로 자신의 운명을 곱씹고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내용을 담고 있다. 황량한 땅에서 길을 잃어버렸다는 탄식과 더불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당신을 너무 사랑한 것을 용서해주오”라고 끝을 맺는 마농의 아리아는 마지막 순간, 비탄과 절망, 그리고 사랑에 대한 회한을 강력하고 감동적으로 다룬 소프라노의 멋진 레퍼토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