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庭園·임효경>벚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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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배움의 庭園·임효경>벚꽃이 피었습니다
임효경 완도중 교장
  • 입력 : 2024. 04.10(수) 15:22
임효경 교장
완도 청해진 바다가, 온 세상이 안개로 가득하네요. 올해 봄은 왜 이러는 걸까요? 4월이 되었는데, 줄곧 내리는 비에 늘 기분이 우울해 있는 듯한 흐린 하늘. 봄의 전령인 그 찬란한 햇빛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날들입니다. 참으로 난감한 날씨입니다. 그 와중에도 벚꽃은 온 세상에 온 거리마다 팝콘 터지듯 여기저기 뭉텅뭉텅 피었습니다.

완도중 친목회 회장과 총무가 교직원 꽃 나들이를 야심 차게 준비하는데, 이렇게 날씨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방과 후 완도타워 옆 남파랑길 숲길을 오르며 벚꽃 노래를 부르고 사진도 찍자고. 그래서 드레스코드 발령까지 냈는데 말입니다. 분홍색, 하양 혹은 노란색으로. 3월 내내 혈기 왕성 부잡한 남학생들과 부대끼느라 텁텁해진 목에 돼지 삼겹살 기름칠 한번 하자고 그렇게 계획을 짜보건만. 야속한 날씨입니다.

우리 선생님들 3월 한 달 내내 진짜 애썼거든요. 잠깐 따뜻했다가 다시 쌀쌀해지는, 칙칙한 회색빛 바다 날씨랑 싸우느라 고운 얼굴들이 초췌해졌어요. 3월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 5시에 학부모 대상 학교교육과정 설명회가 있었어요. 사전 조사에 120명의 부모님들이 참석 희망을 하셨답니다. 삼분의 일을 넘는 부모님들의 수입니다. 우린 바짝 긴장해야 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학교교육과정 설명자료 및 학부모교육 자료 제작과 학부모와의 상담 준비하느라 밤 10시까지 초과근무 견뎌냈고요, 벚꽃은 온 천지에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말이죠.

신규 선생님들이 대부분인 우리 학교. 3월 마지막 한 주 동안 이루어지는 교내 동료장학 수업공개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가장 핵심입니다. 우리 선생님들 얼마나 긴장했을까요. 그래도 씩씩하고 담대하게 역시 임용고시 출신답게 수업을 공개하는데 거침이 없었습니다. 긴장한 듯 하지만 느긋하게, 자신의 수업 기량을 맘껏 펼치는 모습이 젊음의 향연이었습니다. 요즘 SNS 동영상을 보고 자란 세대들은 교탁을 무대처럼, 수업 공개 참관하고 있는 교장과 교사들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연예인처럼 익숙하게 수업을 진행합니다. 또 일타강사처럼 수업내용 전달에 막힘이 없고 아이들과 이야기도 맛깔나게 합니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대단합니다. 참 귀한 재원(財源)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기적과 같은 경제 번영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교육 현장의 교사들의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고서 어떻게 우리 민족이 세계 방방곡곡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겠습니까?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의 교사들은 어떤 개정 교육과정이 주어지더라도 그 어렵고 비현실적인 과정들을 다 흡수하고, 적응하고, 교육 현장에서 실행해 내면서 어떻게든 해 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가 학교 의존도가 높아지고 학교에 요구하는 것이 점점 많아지는 것 아닐까요? 교육의 영역을 넘어서 돌봄의 영역까지 다 감당하느라 우리 학교도 참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다시 일어나 헤쳐 나아가는 우리 선생님들 보면 장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마치 작년에도 벚꽃은 피었고 올해에도 벚꽃이 피어난 것처럼, 오히려 더 굵고 더 단단한 가지를 지닌 벚꽃을 보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 완도중에는 벚꽃 나무가 없습니다. 비자나무, 소나무, 동백나무, 홍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같은 상록수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신입생들이 거친 야생화 습성을 내보이고 피어납니다. 저 거친 들판의 꽃과 풀들이 영역 다툼, 세력 다툼을 하는 것처럼. 완도 구도심에 있는 완도초 출신 학생들과 신도심에 있는 완도중앙초 출신 학생들 간의 묘한 상호 견제가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 선생님들은 금방 알아차리고, 어느새 조치를 다 했답니다. 어이~ 너희들 스포츠클럽 축구반에 들어오고 싶어? 아니야? 한마디면 된답니다. 그렇게 열망하는 축구팀에 끼어들어 가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체육과 학생부장님 눈에 벗어나는 짓을 하면 안 되거든요. 우리 선생님들은 심리학 박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심리학 석사들입니다. 아이들의 심리를 어쩌면 저렇게 잘 알까요? 벚꽃 나무는 한 그루도 없지만 우리 학교는 벚꽃 향기처럼 싱그럽고 담백한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올해 어느 봄날, 전남대 홍매화를 찍으러 갔습니다. 나는 열심히 내 키 높이에 있는 아름다운 꽃잎을 찍어 대는데, 옆에 계신 전문 사진작가님은 카메라를 땅에 두고 매화나무 가지를 주인공으로 찍으시는 겁니다. 아, 깨달았습니다. 홍매화의 저 아름다운 꽃 색깔은 붉고 검은 저 매화 가지를 배경으로 하니 더 돋보이는 것이었구나. 벚꽃도 오래된 나무일수록 아름다운 이유가 검고 웅장한 가지를 지녔기 때문이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이 저렇게 활기차고 신나게 기개를 펼칠 수 있는 것도 저들을 지탱해 주는 든든한 배경들, 우리 선생님들과 교직원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벚꽃이 온 천지를 뒤덮은 날에 불러 보는 벚꽃 엔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