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데스크칼럼>필리버스터의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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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전남일보]데스크칼럼>필리버스터의 그 남자
노병하 취재1부 정치부장
  • 입력 : 2024. 01.18(목) 16:25
노병하 정치부장
때는 국민의당 열풍이 광주·전남을 휩쓸던 2016년이었다.

그때 ‘그’는 컷오프를 통보 받고 국회의원 출마를 포기할 때였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테러방지법 반대를 위해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던 중이었고 ‘그’의 순서는 9번째였다. 단상에 오르자 사뭇 비장한 표정과 함께 어찌보면 감격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과거엔)필리버스터 같은 수단이 없으니까 점잖게 싸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자유롭게 토론할 기회가 있었더라면 국민으로부터 폭력 의원이라고 낙인 찍히지 않았을텐데…”라던 그는 잠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가 보여준 이미지에 비한다면 이미 충격적이었지만 필자에게 가장 오래 남은 기억의 장면은 그 다음이었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와 관련 없는 발언은 본회의에서 금지돼 있지만 그는 “제가 꼭 한 번 이 자리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입니다”라고 밝혔다. 놀랍게도 그의 말을 제지해야 할 정갑윤 당시 국회 부의장도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렇게 넓은 국회 본회의장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렸고, 노래를 마친 그는 조용히 단상을 내려왔다. 그런 그의 뒤로 당은 다르지만 12년 동안 함께 의정활동을 한 정 부의장은 “(필리버스터에) 나와줘서 고맙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때의 풍경과 그의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국회를 울리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장소에서의 노래보다 가슴에 와 닿았다.

시간이 지났다. 이제 그의 직함은 컷오프를 받고 고심하던 낙선 의원이 아니라 ‘광주광역시장’이다.

강기정 시장은 별명이 많다. 많이 알려진 것은 ‘날으는 강기정’, ‘돌아온 탕아’, ‘국k-1’이란 멸칭 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여야 국회의원간 몸싸움에서 항상 앞장서 있었고, 당시 민주당 계열의 행동대장이었다. 말이 안되는 소리에는 그 자리에서 호통을 쳤고, 이치에 맞지 않으면 몸싸움도 불사했다.

허나 한참 뒤 민주당 관계자에게 들은 것은 “국회의원간 싸움에서 앞에 나가 있는 의원들은 사실 선한 사람들이다. 아무도 앞에 가려 하지 않으니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고, 나섰으니 저지해야 할 의무도 짊어져야 했다”는 말이었다.

어찌됐던 그가 광주시장이 됐을 때 많은 이들이 불편해 했다. 기실 그는 다른 정치인처럼 그리 계산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옳고 그름의 선상에서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그 기준이 본인의 철학과 맞물리다 보니 타인에게 불쾌감 혹은 위협으로 다가올수 있었다.

묘하게도 2년여가 지난 지금 그와 대화해보면 그런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강 시장이 더욱 정치인이 됐는지는 알수 없지만, 그의 화법은 예전과 달리 어조는 강할지언정 직설적이지 않다.

민선 8기 절반이 지났다. 솔직히 그간 민선 8기가 무엇을 했냐고 물은다면 그리 많은 것을 답할순 없다. 대부분은 후반기를 위한 이른바 ‘빌드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실증사업’과 ‘통합돌봄’이다. 반면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하다.

민선 7기 최악의 사업으로 분류됐던 ‘중앙공원1지구 사업’도 여전히 답답하다. 오죽했으면 강 시장 스스로가 “저 같았으면 그런 협약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기자들 앞에서 말할 정도다. 그럼에도 풀어야 한다. 손에 흙 묻히지 않고 곡식을 거둘수 없는 이치와 같다.

다만 후학으로서 걱정어린 말씀 하나 드리자면 명심보감에 자왈 ‘무욕속무견소리(無欲速無見小利) 욕속즉부달(欲速則不達) 견소리즉대사불성(見小利則大事不成)”’이라는 말을 그가 새겼으면 한다.

빨리하려고 하면 목표는 달성하겠지만 충분하지 못하며, 작은 이익을 돌보게 되면 큰일을 달성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2년 밖에 안남았다 해서 급히 갈 것도 없고, 작은 성과를 부풀릴 이유도 없다. 그저 지금처럼 묵묵하게 앞으로만 나가도 광주를 위한 길이 된다.

덧붙여 그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왜 기억하냐면 그가 광주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화면 너머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아직도 그가 단상에 서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부디 ‘광주를 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앞으로 닥칠 많은 문제 앞에서 제 1번으로 생각해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