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의병의 발원지이면서 호남의병 전쟁의 격전지였던 어등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호남의병은 1907년 전후부터 1909년까지 반일의병전쟁을 이끌었다. 1909년에는 전국에서의 일본 군·경과의 전투 1738회 중 47.3%인 820회가 광주를 비롯한 호남에서 벌어졌다. 어등산에서 산화한 김태원, 김율, 조경환, 김원범, 양동환 등 5의병장을 비롯해 기우만, 최익현, 임병찬, 기삼연 등 90여 명의 의병장과 박처인 의병장의 4형제까지 싸움에 참가한 의병도 2만 3155명으로 전국 의병의 60.1%를 차지한다.
특히 전라도 출신 의병장들은 임란 당시 9만여 명의 일본군이 몰려드는 제2차 진주성전투에 참여해 혁혁한 공을 세운 뒤 모두 전사하는 비극을 겪었다. 당시 진주성 전투를 끝까지 지휘하다 전사한 창의사 김천일, 그와 함께 전사한 경상우병사 최경회, 복수의병장 고종후, 도탄의병장 강희보 등도 전남을 무대로 활동하던 의병장들이었다. 진주성 전투 참여했던 관군 등 5800여 명 중 전라도에서 진주까지 달려가 순국한 호남 의병도 1800명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한말 호남 의병은 우리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서훈을 받은 인원도 10%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호남 의병 활동에 대한 연구도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번 행사가 의향 광주·전남의 정신적 바탕이 된 호남 의병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도 나라와 겨레를 위해 자신을 바친 그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