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데스크칼럼> 이정효의 외인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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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전남일보]데스크칼럼> 이정효의 외인구단
최동환 문화체육부장
  • 입력 : 2023. 09.07(목) 18:34
최동환 부장
//난 니가 기뻐하는 일이라면/뭐든지 할 수 있어/난 니가 좋아하는 일이라면/뭐든지 할 수 있어//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화 한 1986년작 ‘이장호의 외인구단’의 주제곡인 정수라의 ‘난 너에게’ 첫 소절이다. 당시 이 노래는 KBS 가요톱텐의 1위 자리를 5주간 차지할 만큼 대중으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받았으나 영화는 그다지 흥행하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1983년 연재되기 시작한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당시 초ㆍ중ㆍ고교를 다니면서 만화책을 즐겨본 이들이라면 이 만화책을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만화는 한 달 또는 두 달에 한 권씩 출판됐는데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도 후속 편이 빨리 나오길 목이 빠져라 기다리면서 친구들과 함께 매 주말마다 동네 만화방을 찾아 주인아저씨에게 “나왔어요?”라고 여쭤봤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이 작품이 당시 대중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프로야구’라는 현실성있는 소재를 다룬 것도 있지만 버려지고 소외된 자들이 죽음과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우승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성공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야구 감독 손병호가 개인적인 결함으로 인해 야구계에서 소외된 선수들을 끌어모아 외인구단을 만들어 지옥훈련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작품 전개가 당시 민주화의 열망을 강탈당해 힘들고 지친 국민들에게 위안과 응원이 된 것이다.

최근 국내 프로축구계에서 ‘공포의 외인구단’을 떠오르게 하는 구단이 있다. K리그1 소속 광주FC다. 평균 연봉 1억5403만원(2022시즌 기준). 프로축구 K리그1 12개 구단 가운데 가장 적고 K리그 1ㆍ2 통틀어서도 낮은 수준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올해 ‘효버지’ 이정효 감독과 함께 K리그1 판도를 바꾸고 있다.

광주는 7일 기준 올시즌 K리그1에서 29경기 12승 9무 8패(승점 45)를 기록해 3위를 달리고 있다. K리그 최고 명문 4위 서울FC, 5위 전북 현대(이상 승점 43)를 2점 차로 제치고 한 계단 앞선 순위다.

광주는 지난 시즌 K리그2(2부 리그)에서 우승해 K리그1으로 승격된 팀이다. 때문에 올시즌 강등 1순위 후보로 거론됐다. 특히 시민구단 중에서도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못하고 눈에 띄는 전력 보강도 없었다. 게다가 훈련 환경도 좋지 못하다. 훈련할 수 있는 연습구장이 타 구단에 비해 적고 주훈련장으로 조성된 광주축구센터는 비가 오면 배수 불량으로 진흙탕이 돼 사용할 수조차 없다. 이로 인해 선수들은 제대로 훈련하지 못하고 좁은 복도에서 뛰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타 구단이 반드시 잡아야 하는 팀으로 광주를 꼽았다.

하지만 광주 선수들은 시즌 초반부터 주위의 평가를 뒤집으며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더니 여름들어 더 강해진 모습을 보이며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다. 지난 3일 울산 현대와의 원정 경기에서 2-0 완승을 거두며 2010년 창단 이후 1부리그 소속으로 최다 팀 승리를 기록했고 이대로 가면 아시아축구연맹(AFC) 주관대회 팀 사상 첫 출전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이정효 감독이 있다. 이 감독은 비시즌 기간 K리그1에서도 통할 수 있도록 선수들의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독하게 조련했다. 그러면서 선수들에게 왜 고통스러운 훈련을 소화해 내야 하는지를 이해시키면서 성공에 대한 믿음감을심어줬다.

공포의 외인구단 손병호 감독이 그랬듯이 이정효 감독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만들었고 공수 밸런스가 좋은 팀으로 바꿨다. 광주에는 스타 플레이어가 없지만 선수들이 골고루 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다.

또 강도 높은 압박을 앞세운 공격축구를 펼치면서 팬들을 경기장으로 끌어모았다. 이 감독의 공격 축구가 재미있다고 입소문 나고 성적도 좋아 광주축구전용경기장은 그 어느 때보다 관중이 많다. 최근에는 원정 응원하려는 팬들도 늘어났다.

꿈만 꿨던 일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비인기 팀이었던 광주가 이제 장기적으로 인기 팀이자 명문 팀으로 되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훈련 환경이 좋아져야 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좋은 성적을 일구는 선수들에 대한 보상을 구단주가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