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인간의 내면'에 대한 가장 강렬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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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전남일보]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인간의 내면'에 대한 가장 강렬한 표현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
독일 그림 형제의 ‘독일 신화’서 영감
무지크드라마 양식… 장대한 스케일
‘니벨룽겐의 반지’ 최고 작곡가 반열
영화 ‘지옥의 묵시록’ 배경음악 사용
  • 입력 : 2023. 06.01(목) 10:39
최철
오페라 발퀴레에 사용되는 무대 세트. 출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뉴욕 유학 시절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은 필자에게 가장 신나는 놀이터였다. 당시 비디오테이프 등의 영상이나 CD 등 오디오로 접했던 세계 최고의 가수들이 출연하는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입석을 구매해 객석의 조명이 꺼지면 가끔 빈 좌석에 앉는 요행을 바라며 설레게 했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은 나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국내에서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유학 생활을 했던 이탈리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는 특히 후기 바그너 작품의 대표적인 양식이라 할 수 있는 무지크드라마(Musikdrama)의 특징을 살펴보면 아리아가 사라지고 극이 강조돼 기존의 이탈리아나 프랑스 오페라에 젖어있는 청자에게는 다소 어렵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너무 긴 공연 시간과 음악, 무대 연출 역시 장대한 스케일을 추구하는 공연이다 보니 특별한 기회가 아니면 바그너를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지그린데와 지그몬드의 2중창. 출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필자는 2011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바그너를 만나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두 작품을 만났는데 그중 ‘Die Walkure-발퀴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거장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미군들이 헬기를 타고 적진을 향해 날아가는 장면에서 시작되는 장대한 음악, ‘발퀴레의 기행’은 전장의 지배자로 등장하는 미군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상 매체의 드라마, 영화와 광고 음악으로 자주 쓰인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영화 포스터
바그너는 19세기 독일의 그림 형제의 ‘독일 신화’를 읽고, 깊은 영감을 받았다. 민족주의에 심취해 있는 그에게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신화 이야기는, 그의 저서 ‘미래의 예술작품’에서 주장했듯이 다양한 예술이 융합돼 인간의 내면을 ‘이상적인 극’을 통해 가장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소재로 보았다. 그리고 교감과 소통을 중시하는 바그너에게 독일 민중이 같이 공유하고 감상자와 민중의 일치라는 대의를 실현할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고 여겼다.

그가 구상한 이야기는 독일 북부에 살았다는 키가 작은 소수민족 ‘니벨룽’ 민족이 소유한 절대 반지에 관한 이야기다. 무한한 힘을 지닌 절대 반지를 소유하기 위해 신과 거인, 난쟁이와 인간, 용 등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1848년에 장대한 뜻을 품고 시작한 이 스토리는 약 30년 뒤인 1874년에 ‘니벨룽겐의 반지’라는 이름으로 완성이 된다. 이 이야기는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 등 네 작품으로 구성되며, 총 15시간이 넘는 연주 시간이 필요하다. 이 작품은 각각 하루씩, 4일에 걸쳐 바그너가 직접 설계한 대로 건축된 바이에른의 소도시 바이로이트의 ‘페스트슈필하우스’에서 초연됐고, 초연 이후로, 지금까지 여름마다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연주되고 있다.

지난 201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2010~2012년 시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이뤄진 장대한 ‘링 사이클’ 프로젝트에 필자는 ‘발퀴레’와 ‘지그프리트’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출연했던 금세기 최고의 테너 요하네스 카우프만과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베이스 바리톤 브라이언 터펠과의 조우는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같은 존재로 북유럽은 ‘오딘’, 게르만 민족은 ‘보탄’이라고 부르며 오딘과 보탄의 행적은 거의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보탄은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쟁에서 쓰러진 훌륭한 용사를 신들의 나라로 데려오기 위해 아홉 명의 ‘발퀴레’라는 여전사들을 파견한다. 보탄이 대지의 여신과 사이에 낳은, 발퀴레 중 보탄은 자신을 닮은 똑똑하고 자존심 강한 브륀힐데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 바람둥이 보탄은 인간 여성에게서 얻은 쌍둥이 남매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발퀴레를 보내려 하지만, 본처인 ‘프리카’ 반대로 수포가 된다. 하지만 보탄의 마음을 읽은 브륀힐데는 명을 어기고 그들을 구하러 나선다. 대의명분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신들의 왕 보탄은 브륀힐데에게 벌을 내려야만 하는 애석한 상황에 부닥치고, 자존심을 지키게 해달라는 딸의 청을 존중해 불의 원형장벽 안에 가둔다. 이 장벽은 무적의 용사가 나타나 불의 장벽을 뚫고 들어가 깨울 때까지 그 안에서 잠자게 만든 것이다. 이는 브륀힐데를 벌하는 동시에 보호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보탄은 스스로가 만든 대의명분 때문에 신들의 왕으로서 올바른 치정을 하겠다는 젊은 날의 꿈을 버리고 부와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현실과 타협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불의한 모습으로 보탄은 결국 점점 힘을 잃어간다는 스토리 전개로 ‘지그프리트’와 연계된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 중 배경음악으로 ‘발퀴레의 기행’이 사용되는 장면.
메트로폴리탄에서 만나는 바그너는 혁신이었다. 오페라에서 가수의 역량을 뽐내며 비르투오적인 모습에 환호했던 우리에게, 또 다른 음향과 연출이 주는 감동은 감상자들을 흥분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의 음악은 텍스트와 음향의 조화와 함께 구조적 측면에서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바그너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의 ‘니벨룽겐의 반지’는 최고의 작곡가 반열에 오르게 했으며, 독일인들에게는 영웅이자 긍지로 칭송됐다.

독일의 극음악처럼 광주의 오페라가 세상을 호령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융합예술로 시대정신을 올곧이 담는 지상 최대의 쇼 오페라를 통해 광주의 문화가 세계 속에 날아오르길 바란다. 2023년 올해도 절반이 지나갔다. 다음 절반의 비상을 꿈꾸며 ‘발퀴레의 비상’처럼 힘찬 발걸음을 독자들과 함께 내디디고 싶다. 최철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명곡소개: 발퀴레의 질주(Walkurenritt; Ride of the Valkyries) /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 제임스 레바인 지휘 / 3막이 오르면서 노도 광풍과 같은 ‘발퀴레의 기행’이라는 곡이 무대를 압도한다. 9명의 발퀴레가 하늘을 나는 말을 타고 아버지 보탄의 노여움을 피해 산 정상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