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불씨 하나가 6월항쟁으로 타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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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불씨 하나가 6월항쟁으로 타오르다”
신영일 평전
김형수 | 걷는사람 | 2만원
  • 입력 : 2023. 05.18(목) 16:04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신영일 평전.
신영일은 1980년대 ‘청년 정신’과 ‘광주 정신’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그는 들불야학을 설립, 운영하고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 이름 붙여진 ‘들불7열사’ 중 한명이다. 그는 전남대학교 국사교육과에 진학한 뒤 사회과학 서클 ‘독서잔디’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발을 들였다.

특히 가장 먼저 사회에 목소리를 냈던 사건은 5·18민주화운동이 있기 2년 전 발생했던 ‘우리의 교육지표’였다. 1978년 6월27일, 전남대 교수 11명은 유신독재가 내세운 ‘국민교육헌장’에 맞서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 박정희 정권을 정면 비판했는데, 여기에 함께 참여해 목소리를 내면서 운동가의 삶을 시작했다.

5·18 이듬해에 본격 저항의 시대를 열면서 발표한 ‘반제, 반파쇼 민족해방 투쟁 선언’은 1980년대 운동의 나침반이 되고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박관현과 전개한 40일간의 단식투쟁은 학살 이후 폐허가 된 광주를 다시 민주화의 성지로 되돌리는 반환점이 되었다. 이후 회복기에 건설한 ‘전청련(전남 민주주의 청년연합)’은 광주의 야전사령부가 되어서 신민당 개헌 현판식을 국민항쟁으로 승화시키며 5·3 투쟁과 ‘6월 항쟁’을 끌어낸다.

그렇게 5·18 이전에는 학생운동을 이끄는 비합법 지도자로서, 5·18 이후에는 민중운동을 주도하는 청년지도자로서, 투옥과 석방을 반복하면서 한국 민중운동이 마침내 6월 항생에 이르는 길을 개척했다. 신영일은 반복된 투옥과 과로로 1988년 5월9일 쓰러져 세상을 떠나 지금을 국립5·18민주묘지에 잠들어 있다.

이렇듯 평생 민주화 투쟁에 헌신한 신영일 열사의 궤적을 기록한 책이 출간됐다. 신영일 평전의 저자 김형수는 “내가 광주청년들의 위대한 물결로 그리고 싶었던 신영일의 시간을 함께 만들어 간 그의 선배들, 친구들, 또 후배들의 젊은 날에 경의를 표한다”고 이야기하며 이 책이 가지는 의의를 다시 한번 조명한다. 영원한 청년지도자 신영일과 그를 둘러싼 광주의 들불 같은 열기가 이 한권의 책에서 부단히 타오르고 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