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93-2> 여순사건 ‘피해 사실확인’ 9% 그쳐 …더딘 진상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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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93-2> 여순사건 ‘피해 사실확인’ 9% 그쳐 …더딘 진상규명
6838건 중 670건만 중앙심의 통과
조사중 873건… 조사관 전국 9명뿐
75년지나 증언조사 많아 절차 복잡
고령의 희생자… 신고 기피 현상도
  • 입력 : 2023. 04.02(일) 16:09
  • 최황지 기자
지난해 10월19일 광양시 광양시민공원에서 여순10·19사건 제74주기 합동추념식이 열리고 있다. 식전 공연에 오른 광양시립합창단이 ‘부용산’을 합창하고 있다. 뉴시스
#1948년 갓난 아기 시절, 여수·순천 10·19사건으로 아버지를 여읜 성모씨는 여순사건 희생자 신고 소식에 어머니를 설득, 지난해 11월 유족신고를 했다. 아버지를 찾아 돌아다니다 경찰서에서 옥고를 치른 어머니의 증언을 녹음하고,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고모의 증언도 확보해 서류를 제출한 뒤 600번대의 접수번호를 받았다. 서류제출 후 5개월이 지났고 기약없는 기다림은 길어지고 있다.

2일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까지 여수·순천 10·19사건 신고접수 건수는 6838건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 중 여순사건 중앙위원회를 통해 사실확인이 이뤄진 통과건수는 9%인 670건에 불과했다.

현재 신고 접수한 91%(6168명)의 희생자가 사실확인 조사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신고접수 이후 사실확인 절차에 많은 시간·인력이 투입되면서 당장 내년 10월5일까지 진행하는 진상조사 법적 기한까지 마무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여순사건 희생자 및 유족들이 신고접수를 하면, 전문조사관과 사실조사원이 여순사건 피해자들의 진술과 증거를 바탕으로 사실확인 조사를 진행하게 되는데 인력난이 극심하다. 현재 사실조사는 각 시·군→전남도→여순사건중앙위원회 순으로 심의가 이뤄진다. 그러나 일선에서 피해자들의 증언을 확보하는 사실조사원은 전남도 3명, 동부권(여수·순천·광양·고흥·보성·구례) 6개 시·군에 34명이 있다.

사실조사원의 자료를 검토하고 판단하는 조사관의 수는 더욱 부족하다. 전남도에선 3명, 여수·순천 각 1명, 중앙위 4명으로 총 9명이 사실상 모든 데이터를 검토하고 심의해야 하는 구조다.

사실확인 절차는 공적증빙과 신고인 면담으로 이뤄지지만 사건 발생이 74년이 지난만큼 사실확인이 명확한 공적증빙(판결문·수용자 명부·재판기록 등)보다 피해자와 유가족의 증언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다수의 추가 보증인의 증언이 필수적이어서 심의와 절차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이 인력으로는 한달 평균 50명꼴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결국 기다리고 있는 신고인들을 모두 조사한다면 앞으로 10년(120개월)이란 시간이 더 필요하다.

앞으로 전남도는 조사관의 수를 2명 더 채용할 예정이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에선 인력 충원 목소리가 거듭 나오고 있다. 전남도의 한 조사관은 “각 시·군에서 조사한 내용을 도가 한 번 더 검토하는 상황이고 이 내용을 중앙위원회가 최종 검토하는 절차다”며 “올해 초에 중앙위 심의를 통과한 희생자들은 심의부터 통과까지 최소 1년 정도 걸렸다. 진술이 부합하는지, 사실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검토 절차가 필수적인데 건수가 많아 인력확충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조사관 확충과 일선 조사원의 전문성 강화로 조사 시간 단축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 조사관은 “조사체계를 효율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현재는 조사관들이 시·군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다시 작성하는데 시간을 많이 쓰고 있다. 조사관이 각 시·군으로 내려가 사실조사 방법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조사원 전문성을 향상시키고 하고, 전남도와 중앙위에서는 해당 검토보고서를 형식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여순사건 신고접수는 올해 12월31일까지다. 그러나 여전히 희생자들의 신고접수는 더디다. 지난해 1월21일부터 1년간 6794건의 희생자 및 유족 신고가 진행됐는데 이후 추가로 받은 신고건수는 44건에 불과하다. 전남도는 여순사건 희생자를 1만11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최근 전남도의회는 여순사건 희생자에게 매월 생활보조비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여순사건 희생자 유족 생활보조비 지원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조례안은 진상조사가 끝나는 내년 10월6일부터 시행된다.

철저한 진상조사 이후 희생자 지원까지 나아가기 위해선 발걸음이 바쁘다. 사실조사에 대한 인력 확충, 그리고 고령의 여순사건 희생자들이 적극적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의 고민도 절실하다.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순천·광양·곡성·구례갑)은 “유족분들이 신고를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순사건이 발생한 전남과 전북, 경남 일부 지역 등에서 여순사건에 대한 이념적인 족쇄와 피해의식이 뿌리깊게 자리 잡혀 있는 이유다”며 “여순사건 희생자·유족, 지역에서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으로 역사적인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여순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황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