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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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어른의 책무
노병하 사회부장
  • 입력 : 2023. 03.23(목) 15:26
노병하 부장
“저희도 할 만큼 했습니다. 만약 기사에 저희 병원을 지목하는 단어들이 명시되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취재를 했던 기자로부터 해당 병원의 입장을 들었을 때, 화가 나기보다는 안쓰러웠다. 그들이 아등바등하며 이끌어 온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월이었다. 사회부원 한명이 “정신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학생들이 모인 병원에서 대안학교를 운영 중인데, 더 이상 운영하지 않게 됐다”고 보고했다.

호기심이 들어 세부 보고를 받았다. 정리하자면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병원에서 공부를 하는데, 관계기관의 지원이 부족했다. 그래서 병원도 오랜 고민 끝에 더 이상 위탁교육을 안하기로 한 것이다.

몇 명이냐고 물었더니 30여명이라고 했다. 솔직히 가성비 없는 취재였다. 비리나 사고, 사망 등의 내용도 아닌데다 다수가 피해를 본 사안도 아니다. 심지어 이런 대안학교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공통의 관심사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취재는 신중하고도 시간이 걸렸다. 아픈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고, 위탁교육을 해지하는 병원의 협조도 당연히 얻을 수 없었다. 협조는 고사하고 소송 이야기를 꺼낼 정도로 그들도 지쳐 있었다.

어렵고 품은 많이 드는데, 파장은 예측할수 없다. ‘과연 이 기사를 쓰게 해야 하나’ 담당 부장으로서 고민이 생길수 밖에 없다.

상황은 갈수록 급박했다. 아이들은 곧 병원에서 나가야 했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광주시교육청은 다급해졌다. 지역의 큰 병원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결국 고민 끝에 취재를 허락했다. 두명의 기자가 투입됐고 그들은 훈련 받은데로 신중하고 신속히 움직였다. 또 단톡방을 따로 만들어 해당 사항에 대한 보고를 수시로 받았다. 매일매일 여러 이야기가 올라왔다. 그렇게 이주일이 흘렀다. 두명의 부원이 매달리다 보니 다른 부원들의 하중이 커졌다.

한 부원이 물었다.

“시리즈로 가실 건가요?”

“아니”

“사회면 톱 하나에 이주일은 너무 가성비 없는데요.”

“안다.”

이런 결정을 왜 했을까? 그것은 우리 모두 ‘어른’이기 때문이다.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어떤 이유(왕따, 가정폭력, 성폭력)로 정신적 질환을 앓게 되는 아이들이 모여 서로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곳이 있었다. 어느 날 그곳이 갑자기 사라진다. 더욱이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려 한다.

이런 사실을 사회부 기자가 알았다. 그렇다면 가성비고 무엇이고 간에 ‘적어도 어른들이 아이들은 지켜야 하지 않나’라는 당연한 명제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아이들을 지키는 것. 아이들이 돌아갈 곳을 만들도록 촉구하는 것 말이다.

다행히 편집국장은 보고를 듣고 1면, 2면, 3면에 게재하는 대형 기획인 ‘일주이슈’로 가자고 했다. 솔직히 그 순간 눈물나게 고마웠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과감하게 지시한 선배에게 감사를 표하며 부원들에게도 알렸다. 모두들 ‘캔슬’ 될 줄 알았는데 ‘판’이 커지자 환호했다.

오래 준비한 만큼 기사는 수월하게 나왔다. 아이들의 이야기, 병원의 이야기, 시교육청의 이야기, 타 지역의 해법 등. 내놓을수 있는 것은 다 내놓았다.

그리고 기적이 발생했다.

광주성요한병원이 지역 내 정신건강 위기학생들을 품어주겠다는 뜻을 시교육청에 전해 온 것이다. 광주기독병원도 새로운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이 되어주겠다고 나섰다. 또 지난 14일 광주시의회에서 광주와 전남지역 내 정신건강위기 학생을 치료·교육해 줄 ‘병원형 위(Wee)센터’ 관련 대안교육 민간위탁 동의안이 가결됐다.

이귀순 시의원은 “대안교육 위탁기관의 계약 해지 통보로 인해 (교육청 관계자들이) 많이 고생했다”며 “다만 공백기간이 없이 바로 새로운 기관이 나타나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또 병원형 위센터가 접근성이 높은 서부 쪽에 추가로 더 문을 열 수 있는 방안이 고려됐으면 한다. 필요하다면 의원들도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그래,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닌 내용이다. 그냥 어른들이 아픈 아이들을 지켜낸 것, 그게 이 이야기의 전부다. 그럼에도 이리 길게 풀어 말하는 것은 그 아이들이 취재기자에게 했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어서다.

“여기 친구들과 다시 또 만날 수 있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