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물·라벨 그대로…' 유명무실 페트병 분리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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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내용물·라벨 그대로…' 유명무실 페트병 분리배출
계도기간 종료 과태료 최대 30만원||라벨 안 뜯고 압축 X…적발은 0건||"일부 제외…모르는 경우도 태반"||"회수·보상·재활용 산업 보완 필요"
  • 입력 : 2022. 12.26(월) 16:49
  • 강주비 수습기자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의무화' 계도기간이 지난 25일로 종료됐지만 여전히 현장은 혼란스러운 모양새다. 시민들의 라벨 제거, 압축 등 규정 숙지가 미흡하고, 단독주택의 경우 대부분 분리수거함이 마련돼 있지 않아 분리배출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회수·지원 시스템 체계화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26일 광주시와 각 지자체 등에 따르면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의무화'는 투명 페트병을 일반 플라스틱과 따로 배출하도록 하는 제도다. 공동주택에는 지난 2020년 12월부터 적용됐으며 계도기간을 거쳐 지난해 6월 본격 단속이 시작됐다. 이어 지난해 12월 단독주택까지 범위가 확대됐고, 지난 25일에 계도기간이 종료됐다.

약 2년에 거쳐 홍보·계도가 이뤄진 만큼 이제는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돼야 할 시점이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광주 동구의 한 주택단지에 투명 페트병과 다른 재활용 쓰레기들이 뒤섞여 배출돼 있다. 강주비 수습기자

최근 광주 서구와 동구 일대 공동·단독주택 등을 2시간여 동안 돌아본 결과 투명 페트병이 규정에 따라 제대로 분리배출 돼 있는 곳은 단 4곳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모두 분리수거함이 제대로 갖춰져 있고 경비가 수시로 관리하는 아파트였고, 원룸이나 단독주택은 투명 페트병과 일반 플라스틱이 구분 없이 함께 버려진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날 광주 서구 한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한은순(75)씨는 열심히 비닐, 플라스틱 등을 분리수거하고 있었으나 정작 제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한씨는 "아파트에서 투명 페트병 분리 수거함을 따로 만들어놨길래 따로 내놓기는 하지만, 라벨을 떼는 것까지 의무인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한씨의 말처럼 '투명 페트병'이라고 적힌 수거함 안에는 라벨이 제거되지 않거나 압축되지 않은 채 버려진 페트병들이 다수였다.

광주 서구의 한 주택단지에 투명 페트병과 일반 플라스틱 쓰레기가 뒤섞여 배출돼 있다. 강주비 수습기자

원룸, 빌라촌 등은 더 심각했다. 투명 페트병 수거함이 별도로 마련되지 않은 곳이 많았고, 페트병과 음식물이 묻어있는 배달 용기, 일반 쓰레기 등이 뒤섞인 곳이 허다했다.

서구의 한 공동주택 관리자 정모(62)씨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원룸이나 빌라에 사는 사람들은 분리배출을 하지 않는다. 특히 혼자 사는 사람들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일이 많아 플라스틱도 어마어마하게 나오는데 나 혼자 일일이 라벨을 뜯고, 헹구고 할 수 없으니 그대로 버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동구 한 단독주택가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대문 앞에 놓인 파란색 봉투 안에는 유색 페트병과 투명 페트병, 종이상자 등이 혼재돼 있었다. 투명 페트병은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는 투명·반투명 봉투에 별도로 담아야 하지만 이 또한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50대 주민 조성희씨는 "아파트처럼 분리수거하는 곳이 없으니 현실적으로 분리 배출하기 어렵다. 특히 단독주택은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데 그분들은 쓰레기봉투 하나 사는 것도 부담으로 여기시는 분들이 많아 더욱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광주 서구의 한 주택단지에 투명 페트병과 다른 재활용 쓰레기들이 뒤섞여 배출돼 있다. 강주비 수습기자

광주시는 광고·홍보 캠페인과 더불어 올해 공동주택단지 580여 곳에 분리수거함 설치하고 재활용품 분리배출 거점시설인 '재활용 동네마당' 27개소 설치, 무인회수기 17개소 설치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 '재활용 동네마당'에는 전담 관리인을 둬 올바른 분리배출 유도와 제도 안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현장 단속은 전무한 실정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페트병 분리배출 의무화 위반 시 1차 10만원→2차 20만원→3차 3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각 자치구에 문의한 결과 제도 시행 이후 광주시 내 관련 단속·적발 건수는 0건이었다. 구 관계자는 "현장 점검을 위한 별도의 인력이 있지 않기 때문에 (단속은) 필요할 때 비정기적으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정착을 위해 회수·보상 시스템 마련, 재활용 산업 육성 등 다방면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종필 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환경 정책은 옛날처럼 국민성에 기대거나 시행 초반에만 바싹 열을 올리는 단속의 형태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재활용 시설을 단순히 늘리기만 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면서 "지자체에서는 투명 페트병 1개당 일정 수준의 포인트나 현금을 주는 등 보상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정부도 회수 후 처리를 위한 재활용 산업을 육성해 세밀하고 다양한 관련 제도들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주비 수습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