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人이 佛法을 들고 찾아온 성스러운 포구 법성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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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聖人이 佛法을 들고 찾아온 성스러운 포구 법성포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차이 나는 남도-중국 인연자원⑨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아무포 ||고구려·신라 불교 전래 경로 시기 분명||백제는 마라난타 법성포 전래설만 구전||1998년 학술고증 통해 최초도래지 밝혀||삼국사기·삼국유사·해동고승전에도 기록||간다라유물관·주탑·부용루·사면대불상 등||영광군, 법성 진내리에 기념 성역 조성
  • 입력 : 2022. 10.19(수) 16:46
  • 최도철 기자

영광 백제불교최초도래지

'신령스런 빛의 고장' 영광은 백제 불교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백제 침류왕 원년에 인도 고승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백제에 불법을 전하기 위해 중국 동진을 거쳐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곳이 영광 법성포다. 법성포의 백제시대 지명은 '아무포(阿無浦)'로 '아미타불'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남도-중국 인연자원 시리즈 아홉 번째로 성인이 불법을 들고 찾아온 성스러운 포구 영광 법성포를 싣는다.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영광 법성포. 영광군 제공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언제일까? 여러 문헌들을 근거해 대체로 삼국시대로 추정한다. 삼국 가운데 고구려(소수림왕 2년 전진의왕 부견)와 신라(눌지마립간때 묵호자)의 경우는 불교의 전래 경로와 초전법륜지가 분명하나 이와 다르게 백제는 유입 경로와 최초도래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다만 인도의 명승 '마라난타' 존자가 영광의 내륙 깊숙이 바닷물이 닿는 법성포로 들어와 불법을 전하고 불갑사를 개창하여 백제 불교가 시작되었다고 구전되어 오다가, 지난 1998년 영광군의 학술고증(동국대학교)을 통해 영광땅이 백제불교의 최초 도래지라는 사실을 밝혀내게 되었다. 존자(尊者)는 학문과 덕행이 높은 부처의 제자를 높이는 말로 불제자에 대한 경칭이다.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 좌우두는 인도 간다라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하기 위해 실크로드인 둔황을 거쳐 중국 장안과 상해로 들어온 뒤 다시 해로를 통해 최초로 발을 디딘 곳이다. 법성포(法聖浦)의 옛 이름은 아무포(阿無浦)로 이 때가 서기 384년 백제 침류왕 원년이다.

아무포는 아미타불의 의미를 함축한 명칭으로 고려시대에는 연꽃을 상징하는 부용포(芙蓉浦)로도 불렸다.

이후 '성인이 불법을 들여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으로 법성포라고 다시 개칭했다. 부처님의 법륜을 초전하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역만리 백제까지 험난한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마라난타, 그 덕에 웅혼하고 찬란했던 백제 불교문화의 서막이 열리게 된 셈이다. 이를 미루어 법성포는 백제는 물론 한국의 불교문학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백제의 침류왕 원년에 법성포를 통해 도래했다는 사실은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외에도 고려의 고승 각훈(覺訓)이 1215년(고종 2)에 지은 한국 최고(最古)의 승전(僧傳)인 '해동고승전' 등에 기록되어 있다.

해동고승전에 의하면 '석 마라난타는 인도 출신 승려이다. 그는 신통한 힘을 지녀 온갖 일을 해내는데 그 능력을 헤아릴 수 없었다. 스님은 불교를 전파하는데 뜻을 두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교화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라난타의 교화에 힘입어 백제는 392년(아신왕 원년) 2월에 '불법을 숭상하고 복을 구하라'라고 하는 교서를 반포하게 된다. '삼국유사'에서는 마라난타라는 이름을 번역하면 '동학(童學)'이 된다고 했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기념 성역에 조성된 탑원. 탁트히바히 사원의 주탑원을 재현했다.

학술 고증을 통해 법성포가 백제불교 최초도래지라는 것을 밝혀낸 영광군은 법성포의 문화적 역사성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법성면 진내리에 최초도래지 기념 성역을 조성했다.

불교의 역사와 신앙의 정기가 흐르는 '영광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기념 성역'은 인도 간다라 건축 양식이 잘 드러나는 조형물과 건축물로 조성됐다.

먼저 형식은 전혀 다르지만 우리나라 사찰의 일주문 역할을 하는 간다라 양식 상징문이 눈에 띈다. 상징문을 지나 왼쪽으로 2~5세기경 간다라 불전도 부조 및 불상 등 진품유물을 전시해 간다라 불교 문화예술의 진수를 관람하고 느낄 수 있는 유물관이 있다.

유물관에 인접해 국내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형식의 탑원이 있다. 대승불교와 불교예술의 본 고장인 간다라 지역 사원 유구 가운데 가장 잘 보전되어 있는 탁트히바히 사원의 주탑원을 재현한 것이다.

간다라 사원 양식의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모습이다. 가운데 불탑이 있고 불상들을 모셔놓은 불당들이 두르고 있다. 벽돌과 조각 하나까지 세심하게 재현한 30여 개의 감실은 승려가 가부좌를 틀고 수행하는 공간인데, 이국적인 불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기념 성역 중앙에 위치한 만다라광장 계단으로 올라가면 부용루가 있다. 부용루는 참배와 서해 조망용 누각으로, 1층 석벽에는 석장 이재순 장인이 부처님의 전생과 일대기를 그린 부조 조각이 23면에 걸쳐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이것 또한 간다라 건축양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불상을 만들 때 단단한 화강암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통으로 조각한다. 하지만 간다라 지방에서는 돌의 강도기 약하기 때문에 벽면에 조각을 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부용루와 사면대불

부용루 뒤쪽으로는 사면대불상이 보인다. 사면대불상은 높이 23.7m의 불상으로 백제불교최초도래지의 상징적 조형물이다. 국내 최대 석불로 알려진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이 18.1m인데 비해 이 보다 5m나 더 높다.

불상은 인도의 사찰을 떠올리게 하는 이국적인 건축물들 사이로 법성포구를 굽어보고 있다.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모시고 관음·세지 보살을 좌우보처로, 그리고 마라난타 존자가 부처님을 받들고 있는 모습을 다른 한 면에 배치했다. 그래서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최도철 기자 docheol.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