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명장> "후대까지 전해질 공예품의 가치 전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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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반
명인·명장> "후대까지 전해질 공예품의 가치 전하고 싶어"
‘충장로의 보물’ 동구의 명인·명장을 찾아서||16>신경식 금속공예 명장||생활품 밀접 ‘대공’ 분야 맥 이어 ||은제 차도구 재현 대중화 이끌어 ||2015년 광주시 공예 명장 선정 ||에덴공방·충장공예갤러리 운영||“생활 속에서 공예 접할 수 있길”
  • 입력 : 2022. 07.28(목) 17:57
  • 곽지혜 기자

신경식 금속공예 명장은 "전통적인 가치를 계승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통해 후대에 의미 있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오래된 상처들로 투박해진 손, 작업 중 옻이 올라 팔이며 목덜미를 뒤덮은 울긋불긋한 자국까지. 그는 온몸으로 작품에 대한 진심을 뿜어내고 있었다.

신경식 금속공예 명장은 자신이 옻이 오르는 체질인지 알고 있다. 옻칠 작업을 할 때마다 같은 병원을 찾아 약을 지어 먹는다. 의사는 매번 그만 좀 하라며 타박하지만 그는 발진이 사그라들 무렵 또 옻칠을 위해 붓을 든다.

금속옻칠은 목공예품의 옻칠과는 다르다. 건조시키는 대신 열을 가해 구워내야 하기 때문에 그 훈기에서 올라오는 옻 성분은 더욱 강해진다. 방호복을 입고 작업을 해도 30분이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온다.

왜 괴롭지 않겠냐마는, 고통을 감수하고도 그가 옻칠을 하는 이유는 금속공예에서 옻칠에 대한 데이터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금속 옻칠 공예품을 만들기 시작했으니 본인이 만족하는 작품을 탄생시킬 때까지는 수백번 옻이 올라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켜나가는 것. 또 그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그는 공예인을 이렇게 표현한다.

후대까지 남을 작품을 만드는 일이 가장 큰 즐거움이자 보람이라는 신경식 금속공예 명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광주 동구 충장로5가에 위치한 에덴공방 작업실에서 신경식 금속공예 명장이 차도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열작업을 하고 있다.

● '은제 차도구' 상용화 앞장

'기술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1970년대 신경식 명장도 처음엔 직업으로 공방에서 금은세공기능사 보조업무를 시작했다.

기술을 배울수록 배움에 대한 갈증을 느껴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학력을 인정받고 1981년에야 당시 송원실업전문대 응용미술학과에서 실내 장식을 전공할 수 있었다.

장신구나 귀금속 등 세공 작품을 주로 다뤘던 신 명장은 대학 과정을 거치며 식기, 대접, 주전자, 잔, 수저 등 생활용품이나 장식품을 만드는 '대공가'로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대공가란 세공가와 비교되는 표현으로, 상대적으로 크기가 큰 공예품을 만드는 기술자를 일컫는다.

신 명장은 "당시 대공가들은 흔히 '오브제'라고 불리는 장식품들을 주로 만들었는데, 당시에 저는 그냥 놓고 보기만 하는 작품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것들에 매력을 더 느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특히 문헌을 통해 접한 선조들의 유물을 공부하며 국내 시장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던 은제 차도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때 유물들을 보고 은제 차도구를 전문적으로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으며 제 방향성이 설정됐다고 생각한다"며 "은제 차도구는 출토품이 아니라 고려시대부터 유일하게 전해져 내려온 유물인데, 자기나 목재 차도구는 흔히 사용하지만 은이나 동 등 금속으로 된 차도구는 쉽게 접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누군가 하지 않았던 것을 다시 복원시키고, 제품으로 만들어 상품화까지 한다는 것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 '신경식'하면 은제 차도구를 연상시킬 수 있도록 전문분야를 구축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신 명장은 차시, 다관, 거름망 등 차 도구용품으로 디자인 등록과 상표등록도 마치고 시장성을 확장해 왔으며 프랑스 메종 오브제와 오사까 향토박람회, 북경 차 박람회 등 해외 전시를 비롯해 서울 코엑스 공예페어, 광주 디자인비엔날레 등 국내 전시에서 선보여지며 국내 차도구의 우수성과 가치를 알려왔다.

신경식 금속공예 명장이 은제 향 도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후대에 길 열어주는 작품활동 전념"

자신만의 작품세계와 분야를 구축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신 명장은 2007년 전국 공예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 2015년에는 광주시 공예명장으로 선정되는 등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금속공예의 명맥을 잇고 있다.

그는 자신이 개척한 분야에서 차별화된 작품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를 통해 후대까지 공예품의 가치가 이어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 명장은 "광주시에서 공예문화상품을 알리기 위해 매년 우수 공예문화상품인 '오핸즈'를 지정하고 있는데 항상 차도구를 출품하고 있다"며 "명장으로서 우리 지역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대표적인 공예문화상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광주시에서 차도구를 하는 사람이 이 사람이다라는 각인을 주기 위해서 꾸준히 어필을 하는 것이고 저 또한 매번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차이를 계속 찾아내서 발전을 시키는 것"이라고 전했다.

대표적으로 차도구의 거름망이 단순히 찌꺼기를 걸러주는 용도만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닌, 거름망 자체가 하나의 연잎이나 매화 꽃잎이 되어 물이 빠지는 행위도 꽃잎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을 적용했다.

신 명장은 "단지 차만 우려내는, 찌꺼기만 걸러내는 도구로 쓸 게 아니라 찌꺼기를 걸러내면서도 뭔가 좀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렇게 작품을 만들고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면서 하나의 의미를 찾아냈을 때 그것을 축적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작품을 만드는 당시에는 활성화가 되지 않더라도 후대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는 의미다.

이와 함께 공예품의 가치에 대해서도 실용성을 가장 중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공예품에 대해 우리가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 무겁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 생활에서 사용하는 수공예품은 모름지기 공산품보다 더 사용하기 편해야 한다"며 "일단 기능에 충실하고 거기에 심미성이나 조형미를 갖춘 것이 좋은 것이지 멋지고 아름답다고 기능을 못한다면 그것은 공예품으로서 충실하지 않은 작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신경식 금속공예 명장은 "공예를 산업으로 생각하면 오랫동안 지켜나갈 수가 없다"며 "경제적인 부분 외에도 우리가 생활에서 쓰이는 부분, 더 나아가 지켜나가야 할 가치라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공예, 지켜나가야 할 가치"

신 명장은 현재 동구 충장로5가에서 에덴공방과 충장공예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지역향토명품육성사업의 은공예 전통기술자로 선정되면서 지난 2018년부터 충장공예갤러리를 통해 시·구민들을 위한 체험학습 등 맞춤형 공예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2층에서 칠보공예 체험을 진행하고 있는데 재료비만 지불하면 누구나 무료로 직접 작품을 만들어보고 칠보공예를 배울 수 있다"며 "우리 공예에 대해 최대한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진행하고 있지만, 사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신 명장은 우리가 전통 공예나 공예품을 왜 지켜나가야 하는지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도 제 자식들에게 공예를 좀 이어가 달라고 요청하고 싶다. 그런데 말을 못 한다. 그 친구도 살아가면서 본인이 이루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것이 있을 텐데 여전히 공예로는 실생활에서 안정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중국이나 일본 등의 가내수공업은 아무리 작은 가게라도 전통을 이어 나갈 의지를 주기 위해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는 등 국민들 자체가 그런 부분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후대까지 이어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준다"며 "그런 측면에서 아직 우리나라 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그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공예까지 경제적인 부분을 창출하기 위한 산업으로 엮어내는 분위기를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명장은 "공예를 산업으로 생각하면 오랫동안 지켜나갈 수가 없다. 경제적인 부분 외에도 우리가 생활에서 쓰이는 부분, 더 나아가 지켜나가야 할 가치라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지금 동구에 명인,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분들을 비롯해 정말 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오신 장인들까지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이웃들이 더욱 조명받고 그 가치를 알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