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63-2> '동포'라지만… 고려인마을은 '선거 밖 세상'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일주이슈
일주이슈 63-2> '동포'라지만… 고려인마을은 '선거 밖 세상'
●광주 고려인마을 가보니||유세 차량·선거벽보 없이 ‘조용’||“문화·언어 달라… 정책도 실종”||"투표권 없다면 정책 참여라도"
  • 입력 : 2022. 05.22(일) 18:49
  • 김해나 기자
6·1지방선거를 11일 앞둔 지난 21일 광주 광산구 고려인마을 내 공원이 유세 운동 등이 없어 조용한 모습이다.
6·1전국동시지방선거가 9일 남은 가운데 광주 고려인 마을은 '다른 세상'인 듯했다.

지난 21일 찾은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 마을 내 공원에는 남녀노소가 모여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공원'은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은 곳이라 후보자들이 명함을 돌리고 인사를 하는 등 활발하게 유세 운동을 하는 장소지만, 이곳은 선거와 동떨어진 분위기를 보였다.

공원에서 200여m만 밖으로 나와도 여기저기에 선거벽보가 붙어 있고 유세 차량의 스피커 소리에 시끌벅적했지만, 공원에는 선거와 관련 없는 코로나19 유의사항, 불법체류자 신고 등의 현수막만 휘날리며 조용했다.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정치 이야기'는 고려인마을 내 공원, 카페, 식당 등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동포'라고 불리는 고려인들은 선거철이면 늘 아쉬운 마음을 표한다. 마을 내에 7000여명 이상이 살고 있지만, 이들 모두 투표권이 없어서다.

고려인 서이리나씨는 "마을에 정착한 지 5년 정도 됐다. 어느 골목에 들어가도 어떤 곳인지 잘 알 만큼 지역민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투표를 하지 못해 지역민이 아닌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씨는 "고려인에게 투표권이 없어서 그런지 이번 선거에서 고려인을 위한 정책이 없어 아쉽다"며 "정책을 만들기 위해 광주시와 (마을이 있는) 광산구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한다. 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다른 고려인 박실바씨는 "한국에 오니 나라에서 우리를 받아주고, 일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너무 좋았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고 싶은데 투표권이 없으니 아쉬움이 있다"며 "고려인들은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차별받아 왔다. 한국에 와서도 우리의 정체성을 알 수 없었다. 성(姓)도 김·이·박 등으로 같은데,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었다. 인정받고 투표에 참여하고 싶다"고 성토했다.

투표권을 가진 다문화가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관위 차원에서 모의 투표 체험 등 교육 과정을 진행하고 있지만, 언어에 익숙하지 않고 투표 과정 등에도 서툴러 여전히 '투표 취약계층'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투표권이 있는 내국인으로 분류된 다문화 여성은 광주 3623명, 전남 1만2884명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투표권이 없는 이들이 최소한의 이주민 정책 발굴 등 정치권 내의 정책 참여라도 이뤄지도록 법적인 제도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헌권 광주 광산구 인권보장및증진위원회 위원장은 "선거철이면 항상 느끼지만, 양로원 등은 후보들이 많이 찾아간다. 하지만 '표가 되지 않는' 어린이, 외국인, 다문화 가정 등은 거들떠보지 않는다"며 "정치인들이 '표를 먹고 사는 사람'이라지만 선거마다 인간을 차별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치인들이 표만 의식하지 말고 인간 평등성·존엄성·존중성을 갖췄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이어 "고려인 등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지방의회나 국회에서 법적 제정을 통해 도움을 줘야 한다"며 "여성들이 노력 끝에 참정권을 행사하게 된 것처럼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닌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역민'으로서 기본권·평등권·자유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해나 기자 min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