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검은 화면 속 '나'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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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검은 화면 속 '나'를 찾아
  • 입력 : 2021. 09.16(목) 18:10
  • 곽지혜 기자
미국 10대들의 자해율과 자살률이 높아진 것은 소셜미디어를 활발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2007년부터라고 한다. 국내에서 역시 1990년 중반에 태어난 세대들에게 소셜미디어 활동은 중학교 때부터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공유하거나 관심사를 표출하고 사회에 의미 있는 의견들을 나누고자 소셜미디어를 활용한다. 간혹 남들과 공유하려는 목적보다는 '일기'처럼 나의 순간을 기록하기 위함이 목적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과연 묻고 싶다.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싶은 내용을 굳이 SNS를 통해 기록하는 이유가 있는지.



인간이 타인과 무언가 교류하거나 공감하고자 하는 욕구는 본능에 가깝다. 무리를 지어야 하는 습성 또한 마찬가지다. 남들이 대부분 하고 있는 것에 포함되지 않으면 뒤쳐지고 있다는 불안감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들에게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거나, 특정 분야에 내가 얼마나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지, 또 어떤 사회현상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지 표현하고 노출시키고 싶은 욕구 또한 '중2병'과 같은 성격적 결함이 아닌 본능에 더 가까운 부분이다.



소셜미디어는 인간의 이러한 본능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최첨단 과학보다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소셜미디어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제프 올롭스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소셜딜레마'에서 페이스북에 근무했던 저스틴 로젠슈타인은 "페이스북에 라이크 버튼을 만든 것은 세상에 긍정성과 사랑을 퍼트리는 게 목표였다. 오늘날의 10대가 '좋아요'를 덜 받아서 우울해하거나 정치적 분극화를 야기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저스틴의 말처럼 최초의 소셜미디어는 선을 위한 강력한 힘이었지만, 지금 우리는 그 안에서 끊임없이 타인을 의식하고 좋은 평점을 기대하고 좌절하는 경험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잘 표현한 영국의 SF 옴니버스 드라마 '블랙미러'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추락'에서는 소셜미디어의 평점에 따라 어떤 집에서 살 수 있는지, 어떤 직장을 가질 수 있는지 등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를 보여준다. 현실과 빗대면 매우 과장된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중국에서는 '소셜 크레딧 시스템'을 통해 사회적 신용 점수가 낮은 사람은 비행기 표를 구입하지 못하고, 비즈니스 클래스 기차표 또한 살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2억대에 달하는 CCTV와 스마트폰을 통해 얼굴을 인식하고 경로를 추적해 사실상 개인의 모든 생활이 기록되고 점수화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사회 신용 점수 시스템이 중국 내에서 큰 우려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도 높은 평점을 위해 그다지 친하지 않은 이웃과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나누고, 맛이 없는 쿠키에도 행복하다며 게시물을 올린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평가 때문에 싫은 소리도 못한다. '내가 어떻게 느끼냐' 보다는 상대방이 보는 나의 모습이 어떤가에 온 힘을 쏟는다. '진짜'가 아닌 '가짜'에 목을 매는 듯한 주인공의 모습이 즐거워 보일리 없다. 남들의 시선에 점철된 삶을 사는 주인공의 모습에는 현실의 우리가 투영돼 드라마를 보는 내내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주인공의 맹목적인 의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평점은 점점 하락해 최악으로 치닫는다. 말 그대로 '추락'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의 제목인 'Nosedive'는 보편적 의미로 '추락'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주가가 폭락하는 등 무언가 급하게 떨어지는 '급락'의 의미가 강하다. 코를 뜻하는 Nose와 떨어진다는 의미의 dive가 합쳐져 신체에서 가장 높고 앞쪽에 위치한 부분이 떨어지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단어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매몰되어 있을 때 '코를 박는다'는 관용구를 사용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코를 박고' 있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속 가상의 세계가 수많은 정보와 개인의 의견, 생각들을 주고받는 또 하나의 세상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그 세계에 매몰돼 진짜 관계를 형성하는 일을 잊게 되는 것은 우리가 분명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또 수많은 소셜미디어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소셜미디어를 통해 노출된 개인의 정보를 활용한 알고리즘에 끌려가질 않을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편리하다는 것은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과 같다.

손으로 할 수 있는 기술들이 기계로 대체되면서 속도와 정확성을 얻는 대신 그로부터 오는 즐거움과 만족감을 포기해야 했던 것처럼, 소셜 미디어 속 '나'를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왜 그렇게 높은 평점을 갖고 싶냐는 질문에 드라마 속 주인공은 '주변을 둘러보고 내 삶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싶어서. 그래서 마음 편하게 숨을 내쉬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소셜미디어 속 삶에 최선을 다하는가?

'남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이 '자의식'으로 정의된 시대에 살고 있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